맷돌


-주인석-


눈이 보살이다. 친정 뒷마당 응달에 측은하게 머리를 박고 있는 맷돌을 발견했다. 박박 얽은 피부에는 집 밖에 산 고생의 흔적으로 이끼가 군데군데나 있다. 음식 한 번 제대로 못 얻어먹어 그런지 아가리에는 백태처럼 흙이 끼었다.

몰골은 엉망이었지만 아랫돌과 웃돌이 껴안고 있는 모습이 왠지 사람 같아 가엾기 그지없다. 비가 올 때마다 튀어 오른 흙덩이가 곰보 자국에 붙었고 거기에서도 행복 할 수 있다고 이끼가 뿌리를 내렸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전을 폈다. 편리한 믹서기를 두고 쓸데없는 짓 한다며 어머니는 잔사설이 많았지만 그런 소리보다 내 마음이 더 앞섰다. 어머니는 구경만 하시라 큰소리치며 옛날 기억을 떠올려 남편과 나는 어설픈 두부 만들기에 들어갔다.

어린 시절에 맷돌로 곡물 가는 것을 봤다. 그중에서도 콩을 갈아 만든 두부는 일품이다. 두부 맛이란 암 맷돌과 숫 맷돌의 수많은 충돌과 마찰이 만들어낸 화해의 맛이다. 부대끼며 돌아가는 맷돌에서 여유와 인정을 볼 수 있다.

어머니는 불린 콩을 맷돌 옆으로 가져다 놓는다. 큰 함지박 위에 가지 벌어진 나무를 걸치고 숫 맷돌을 놓고 숫쇠에 잘 맞추어 암 맷돌을 끼운다. 준비가 끝나면 암 맷돌의 아가리로 콩을 한 줌씩 넣고 갈기 시작한다.

맷돌을 가운데 두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마주 앉아 어처구니를 잡고 돌리신다. 마치 암 맷돌과 숫 맷돌이 안고 돌듯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맷돌을 사이에 두고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여덟 식구가 먹을 콩을 다 갈 때까지 주거니 받거니 하신다. 부모님의 이야기가 도란도란거리면 맷돌은 드르륵 드르륵 장단을 맞춘다.

맷돌을 가만히 보면 아래쪽의 숫 맷돌은 고정된 상태로 앉아 있다. 숫 맷돌의 뾰족 튀어나온 숫쇠에 암 맷돌은 걸려서 빙빙 돌아간다. 맷돌과 부모님은 참 많이 닮았다. 가만히 앉아 계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 주는 아버지는 아랫돌 같고 말 많고 싹싹한 어머니는 웃돌 같다.

콩을 갈면서도 주로 어머니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어버지는 느긋하게 들어주는 쪽이었다. 맷돌의 아가리로 콩이 들어가 빙빙 돌면서 비벼갈아내는 것과 같다.

부모님의 맷돌은 콩만 가는 것이 아니다. 콩도 갈고 당신들의 삶도 조곤조곤 갈아 내셨다. 한해에도 수차례 곡물을 갈아 내며 당신들의 애환과 갈등도 가셨던 것이다. 딱딱한 덩어리들이 암 맷돌의 아가리를 통해 들어가면 숫 맷돌은 묵묵히 받아 주었다.

어쩌다 삶이 삐거덕거릴 때 어머니의 잔소리가 종일 계속 되어도 아버지는 가만히 받아 들이셨다. 그러다가 아가리를 통해 들어온 콩이 덜 갈리고 함지박에 빠지듯 부모님도 한 번씩 심하게 다투셨다. 그때마다 다시 콩을 주워 아가리에 담아 주는 자식들이 있었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맷돌을 돌렸을 것이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여섯 자식을 키우면서 얼마나 갈아 낼 것이 많았을까. 말이 없는 아버지와 잔정 많아 말도 많은 어머니 사이엔 갈 것이 또 얼마나 많았을까. 물에 물 탄 듯 싱거운 아버지와 여간 짭짤하지 않은 어머니가 안고 돌아가면서 수도 없이 덜커덩거렸을 것이다.

갈기가 끝나면 가마솥에다 걸쭉한 콩 액을 넣고 푹 끓인다. 솥에서 술술 나는 구수한 냄새와 맛은 마찰이 주는 선물이고 걸쭉한 국물은 당신들이 일구어 낸 끈적끄넉한 삶의 모습인 것이다.

남편과 나는 부모님처럼 도란도란이 아니라 왁자그르르하다. 서로 잘 한다고 혼자서 어처구니를 돌리려하는 것이며 갈리기도 전에 콩을 넣어 엉멍진창이 되고 말았다. 옆에서 보다 못한 어머니가 도와서 겨우 흉내만 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아직까지 우리는 이가 잘 맞지 않는 맷돌이다. 안고 같이 돌기보다는 각각 돌아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러니 부대낌에서 화해로 가기보다 공회전으로 힘만 뺄 때가 더 많다. 마음을 맞추고 나면 갈아 낼 것이 지천일 게다.

날마다 머리 굵어지고 영악해져가는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는 일, 위 아래로 눌린 중년의 어깨에 얹힌 짐을 함께 들어주는 일이나 각박해진 세상인심에도 따뜻하게 살아가려면 둘이 안고 돌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딱딱한 콩을 걸쭉한 국물로 만들어 부드러운 두부로 내기까지 마찰이라는 통과의례를 수도 없이 거쳐 왔던 부모님처럼 우리도 그러해야 하리라.

맷돌이 돌면서 마찰을 일으켜야 제 기능을 하는 것처럼 사람도 사람들끼리 가정과 사회 속에서 비비면서 살 때 사람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 충돌이야 없지 않겠지만 후에 돌아보면 그것이 사람 사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평생을 끌어안고 슬근대며 산 부모님은 아직도 갈 것이 남았을까. 아흔의 나이에도 한 번씩 톡탁거리다 화해한다. 당신들의 삶을 보면 우리네 삶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속에는 행복의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갈 것 없어 조용한 빈 맷돌보다 콩이 이리 튀고 저리 튀어도 날마다 드르륵거리는 맷돌이 보기에 좋다. 단번에 갈아버리는 믹스기보다 맷돌로 슬근슬근 갈아낸 것이 훨씬 구수한 맛이 난다. 우리 삶도 이와 같으리.



<심사평>

제1회 신춘문예에 비해 수필장르는 응모자와 작품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 해와 비견하여 작품수준도 뛰어나 영주 신춘문예에 대한 경향 각지 문학도들의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오른 작품들은 주인석의 '맷돌', 김 은정의 '하수', 안 정혜의 '초원의 세레나데', 채정순의 '양파', 윤 미애의 '풍구'등 다섯 편이었다.

모두가 자신들의 신산했던 삶의 이력에서 건져올린 소중한 의미에 문학적 여과를 가해 수필이란 이름에 걸맞는 수작들을 수확하고 있어 반갑고 행복했다.

다만 옥에 티처럼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작품들이 회고조에 감상에 침잠한 나머지 관조의 미학이라는 수필의 품격을 확연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적확한 어휘들에 대한 탐색이 소홀하고 문맥에 맞게 다듬어지지 않은 것들이 적지않아 여유의 미학이라는 수필 특유의 그윽한 예술적 방향을 풍기지 못한다는 것들이다.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주 인석의 '맷돌'을 골랏다.

맷돌은 암수맷돌처럼 평생을 함께 하며 백수의 나이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아름다운 세월을 담담하게 반추하며 믹서기보다 맷돌로 콩을 갈고 두부를 만드는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삶을 지향하고 있다. 문장의 전개도 자연스럽고 어휘에 대한 고심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있다.

앞으로 치열한 삶에서 우러나는 감동과 효과적인 글의 얼개짜기, 그리고 어휘 하나하나에 대한 절차탁마로 우리 수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가가 되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 고권일>




<당선소감>

전화를 받는 순간 아득히 제주의 파란 바다가 떠올랐습니다. 지난 2년간 글과 옆지기에게 양다리 걸치며 살았던 난처했던 시간들이 잠시 스쳐갑니다. 밤늦도록 애태우며 기다리던 그에게도 이제 조금은 면목이 설 것 같습니다. 어미를 대신하여 수도없이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공부 시간까지 빼앗겼는데도 투정없이 반듯하게 자라준 아들딸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 옵니다.

아무리 갈아도 또 새로운 덩어리가 생기는 것이 삶이지요. 그런 제게 동리목월문학관의 문예창작대학은 맷돌과 같았습니다. 그곳에서 제 삶을 돌아보았고 지나온 날들을 글로 승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힘써 주신 장윤익 학장님을 비롯한 관계자님들과, 제게 수필에의 첫사랑을 가르쳐 주신 곽흥렬, 홍억선 두 분 교수님 그리고 여러 문우님들의 지극한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늘 토닥토닥 싸워서 걱정하게 만든 아픈 막내 손가락임에도 끝없이 이뻐해 주신 부모님, 사랑합니다.

우리말 ‘고맙습니다’가 이렇게 빼빼 마른 말인 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로만 모든 분들을 대하기에 너무나 송구스럽습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몇 밤을 세울 것 같습니다.

초름한 글임에도 날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님, 고맙습니다. 뉴스제주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연락처:010-3313-3088, 052-975-3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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