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내가 어렸을 때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자들은 어느 정도 한문을 읽을 줄 알았지만, 부녀자들은 거의 한글도 읽지 못했으니 문맹자라고 불렀다.

젊은 청년들은 문맹퇴치운동을 한답시고 동네마다 야학을 개설하여 한글을 가르쳤으나, 주로 처녀아이들이 야학에 잠시 나오곤 하였고 주부들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한글조차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는 주부들은 객지에 나가 있는 가족, 특히 일본 식민지 시절 일본에 건너가 사는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어도 글을 몰라 편지조차 보내지 못했었다.

내가 학교에서 글을 깨우치고 나서는 어머니가 일본에 가 있는 동생들, 주로 외숙과 이모들에게 친정소식 특히 외할아버지의 건당상태나 가사내용을 알리려하면 나를 시켜서 대필해 오곤 했다.

내가 어머니 편지를 대신 써주는 것을 알게 된 이웃 아주머니들이 솔째기(남몰래)찾아와 일본에 가 있는 남편에게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했다.

남을 빌어서 쓰는 편지였기에 부부간의 애정표현은 전혀 없었고, 주로 가사문제, 기제사 문제, 친척집 혼사에 부조하는 문제, 누가 돌아가셨다는 부고 등 매우 사무적인 내용들이 전부였다.

제주시내에는 읍사무소 앞에 행정대서소가 여럿 있었다.

그들은 읍사무소에 제출할 혼인신고, 출생신고 등 행정서류 외에도 찾아온 사람의 개인 편지들도 대서해 주곤 했다.

오늘날은 행정대서소라는 간판 자체를 찾아볼 수가 없으니 한글 모르는 사람은 없어졌다고 보아도 되겠다.

그러나 이제는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붙이는 『컴맹』이라는 단어가 새로 생겨났다.

내가 현역세서 은회할 무렵, 컴퓨터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너도 나도 컴퓨터에 매달리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별로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나니 내가 문맹자 취급받는 컴맹자가 되고 말았다.

더구나 핸드폰의 발전으로 사진도 찍고, 문자 메시지도 주고 받는 젊은 사람들, 특히 손주녀석들의 재빠른 손놀림을 보면서 어느새 내가 시대의 낙오자가 되고 말았는지 어리둥절해진다.

내가 쓰는 글, 내가 운영하는 김유비 장학회의 사업계획서, 예산서, 결산 고고서 등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딸에게 사정하여 컴퓨터로 뽑아내고 있으니 이렇게 초라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딸은 고급 비서를 두었다고 여기시라고 위로랍시고 한다.)

이제라도 컴퓨터를 배우면 되겠지만, 눈도 어둡고 여생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 포기하고 만다.

하지만 이 글을 접하는 다른 분들은 늦게라도 꼭 컴퓨터를 배워서 시대에 뒤처지는 일이 없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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