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칼럼] 박길홍의 마스터피스

▲전국 1500여 개의 스크린을 독점한 김한민 감독의 <명량>

이순신 일대기를 조명한 김한민 감독의 <명량>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이들이 지난 8월 19일 기준으로 1500만 명을 넘어섰다.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영화 중 역대 흥행 1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명량>은 현재까지도 상영 중이며 1600만, 1700만 고지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명량>이 역대 흥행 기록을 갱신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현상을 달갑게 여기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면에는 스크린 독점이라는 적폐가 잔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량>을 포함해 우리나라에서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모두 12편에 이른다. 관객 수 별로 나열해 보면 <명량>에 이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가 1362만 명을 동원했고, 그 뒤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1301만 명,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이 1298만 명, 이환경 감독의 <7번방의 선물>이 1281만 명,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231만 명을 동원했다.

이어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가 1230만 명,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가 1174만 명,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가 1145만 명,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이 1137만 명,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가 1108만 명, 크리스 벅·제니퍼 리 감독의 <겨울왕국>이 1029만 명을 동원했다. 1천 만 관객 돌파 영화들이 그랬듯 <명량> 역시 스크린 독점이라는 비난에서 비껴가지 못했다.

<명량>은 한산도대첩과 노량대첩 사이에 있었던 명량대첩(명량해전)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명량대첩 당시 전투 상황을 묘사하는데 있어 런닝타임의 절반을 할애할 정도로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이 영화의 전투장면은 해외 블록버스터 영화 못지않은 규모를 과시한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영화 외적인 수치와 비교해 보면 다소 실망스런 수준이다. 일단 작품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이 영화가 지닌 객관적인 수치는 분명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우선 이 영화가 새롭게 쓴 기록들을 살펴보면 <명량>은 개봉 첫날 전국 68만 명을 동원하면서 오프닝 기록을 갱신했다. 이후 개봉한 지 10일 만에 800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들였다. 1천 만 명을 돌파하기 까지 걸린 기간은 단 12일에 불과했다. 실로 놀라운 속도다.

<명량>은 또 단 하루만에 125만 명을 스크린으로 모으는 등 역대 일일 동원 기록도 갈아치웠다. 게다가 국내 역대 최고 흥행 기록 1위를 5년 간 굳건히 지켰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를 멀찌감치 따돌리며 현재까지도 독주하고 있다.

이처럼 <명량>이 기존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개봉 당시 전국 1115개 스크린으로 출발했던 <명량>은 이후 개봉 단 5일 만에 471개의 스크린으로 그 수를 늘리면서 총 1586개의 스크린으로 확대 상영했다.

전국적으로 스크린 수가 2584개인 점을 감안하면 절반 이상의 스크린을 <명량>이 점유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다 교차상영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명량>은 어떻게 해서 다수의 스크린을 독점할 수 있었을까.

이유는 이렇다. 국내에는 330여 개의 극장이 있다. 이 가운데 3대 멀티플렉스 극장이라 불리우는 CGV(116개), 롯데시네마(96개), 메가박스(58개)는 우리나라 극장에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그 규모가 크다.

<명량>의 배급사는 CJ그룹의 자회사인 CJ엔터테인먼트다. CGV 역시 CJ그룹의 자회사다. CJ그룹은 영화의 제작에서부터 투자, 배급에 이르기까지 CJ엔터테인먼트와 CGV를 기반으로 영화산업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대기업이다.

<명량>이 국내 다수의 스크린을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은 대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횡포’라고 지적한다. 롯데그룹의 자회사인 롯데시네마도 같은 구조라고 보면 된다.

1500여 개의 스크린을 독점한 <명량> 보다 많은 스크린을 독점했던 영화도 있었다. 지난 6월 개봉한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는 전국 1600여 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1600개 이상의 스크린을 독점했던 영화는 현재까지도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가 유일하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트랜스포머>의 국내 배급사를 찾아봤더니 역시 <명량>과 같은 CJ엔터테인먼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스크린 독점을 제재할 만한 제도는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없다. 미국의 경우 특정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30% 이상 점유할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규제나 제도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특정 영화가 다수의 스크린을 독점할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영화들의 제작사와 배급사들이 스크린을 확보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다름 아니다.

▲ ▲ 제주도내 스크린 45%를 독점한 김한민 감독의 <명량>

제주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필자가 <명량>을 관람한 롯데시네마 서귀포의 경우 총 8개관 중 3개관에서 <명량>을 상영하고 있었다. 제주도내 다른 극장들도 최소 2개관에서 많게는 4개관까지 <명량>을 상영하고 있었다.

롯데시네마 제주의 경우 6개관 중 2개관에서 CGV 제주는 8개관 중 4개관(프리미엄관 포함)에서 메가박스 제주는 6개관 중 2개관에서 메가박스 아라점은 5개관 중 4개관(교차상영 포함)에서 각각 <명량>을 상영하고 있었다.

제주도내 총 스크린 수 33개관(5개 극장) 중 무려 15개관(45%)을 <명량>이 독점하고 있었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해당 수치는 2014년 8월 19일 기준으로 측정했으며 <명량>은 1500만 명 돌파 이후 전국적으로 스크린 수가 축소되고 있다)

이렇듯 <명량>이 전국에 걸쳐 다수의 스크린을 점유하면서 소규모 영화들이 제주에서 개봉되지 못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14일 개봉한 테리 길리엄의 신작 <제로법칙의 비밀>은 제주도내 그 어떤 극장에도 상영되지 못했다. 비단 이 뿐만이 아니다.

<제로법칙의 비밀>을 포함해 제주도에서 상영되지 못한 영화들은 부지기수에 이른다. 최근 운명을 달리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유작 <모스트 원티드 맨>을 포함해 로랑 티라르 감독의 <꼬마 니콜라의 여름방학>도 제주도 극장에서 관람이 불가능하다.

외화뿐만이 아닌 자국 영화도 마찬가지다. 우문기 감독의 <족구왕>, 이동삼 감독의 <왓니껴>, 한윤선 감독의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 다큐멘터리 <바세코의 아이들>, 국내 애니메이션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등도 제주도에서 스크린을 잡지 못했다.

물론 스크린 점유율과 좌석 점유율은 서로 비례하지 않듯 스크린을 다수 점유했다고 해서 흥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명량>이 승승장구 할수록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영화들, 이를테면 저예산영화, 독립영화들은 점차 그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사실 스크린 독점에 대한 논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스크린 독점에 대한 규제나 제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명량>과 같은 기현상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뉴스제주 - 박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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