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는 음력 8월 초하루가 되면 섬 전체가 벌초행렬 이어져...육지는 물론 외국에서도 벌초행렬에 동참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조상묘의 벌초를 안하는 것은 ‘불효 중에 가장 큰 불효’로 여겨진다. 그만큼 제주의 벌초문화는 국내 어느 지역과 비교해봐도 독특하다. 오히려 종교보다 각별하다는 느낌을 들 정도다.

심지어 도외, 더 나아가 외국에 살고 있어도 도 벌초 또는 모듬벌초(문중에 있는 조상의 묘를 관계 친척 모두가 찾아가서 묘를 정리하고 제를 지내는 것)시 추석이나 설 등 명절에 오지 못하여도 이 시기의 벌초는 반드시 참가하는 것이 제주도 모든 집안에 불문율처럼 전해지고 있을 정도다.

▲ 제주도의 벌초문화는 서울에 있든, 외국에 있든지 간에 8월 초하루에는 모든 친척들이 모여서 조상의 묘를 벌초한다. - (뉴스제주 D/B)
음력 8월 초하루가 되는 그 주 주말에는 비가오나 바람이 불어도 벌초는 꼭 가야한다. 아니 가지 않으면 좁은 지역 사회에서 살수가 없을 정도가 된다.

그래서 그날만큼은 한라산을 비릇한 중산간 지역에 고급차부터 화물차까지 어느 차종을 가리지 않고 제주시 모든 길가 주변에 가득 세워져 있다.

또한, 평소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개인이나 법인의 사유지 혹은 목장지대에서도 이날만큼은 벌초 도민들에게 전면 개방한다.

목장지대에 조상묘지가 있어 ‘벌초하려니 문 열어 달라’면 목장 주인도 아무말없이 열어준다. 단지, 소나 말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목장 문만 잘 닫아주라는 말만하고, 더 이상 할말도 해줄 말도 없다.
이들은 벌초라는 문화를 뇌리속이 아닌 가슴속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랜 풍습으로 이어진 제주 벌초 문화다.

그리고 제주도의 벌초는 남자와 여자간의 성차별이 없다는 것 또한 독특한 문화다.

예전 4.3사건과 6.25 등 많은 제주도내 남자들이 희생으로 여자들이 가문을 위하여 벌초를 해왔고, 현재 참여하는 여성들의 숫지난 다소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일부 문중에서는 여성들이 벌초에 나선다.

벌초 때 가장 나이 많은 집안 어르신이 나이어린 후손들에게 문종 비석을 가리키며 이묘가 몇 대손 조상님이시고, 어떤 분이시고, 무엇을 하였는지 집안의 가풍과 역사를 이야기 해준다.

그러는 사이 중, 장년 친척들이 벌초를 마치면 모든 친척들이 다 같이 조상묘에 절을 하고 제를 지낸다. 그리고 조상님에게 올려졌던 음식물을 벌초해 깔끔하게 정리된 자리에 앉아 다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의 시간’을 가진다.

그 시간에 떨어져서 서로 간에 나누지 못한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친척 간에 정을 돈독하게 다지는 시간을 가진다.

차가 많이 없었던 예전에는 새벽 4시에 출발하여 밤11시에 마무리 할 정도로 힘든 행사지만, 요즘은 도로사정도 좋아지고, 기계를 이용함으로 인하여 그나마 시간 단축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제주도의 묘들은 조상의 은덕을 기르고, 후손들의 번창을 위하여 한라산 중턱이나 가파른 오름 등 자칭 ‘명당자리’를 고집하였기에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벌초는 여전히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이어진 행사이고, 우리 후손들이 가져야 할 의무이고 책임이기에, 그리고 그 대를 이어 다시 후손들에게 넘겨 주어야할 사항이기에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풍습을 그대로 행하여 이어져 나아간다.

벌초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제사는 지내지 않아도 남이 모르지만, 벌초는 안하면 금방 남의 눈에 드러난다’라는 제주속담이 있을 정도로 제주도에서의 벌초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요즘 시대가 많이 흐르고, 간편함을 추구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납골묘, 납골당이 어느덧 제주도 장묘문화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벌초의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자녀 1명 혹은 많으면 2명인 핵가족이 대부분이 현재 벌초를 할 사람이 없어 사람을 빌려서 하기도 하고, 이것도 벅차서 결국 납골묘를 만들어 제만 지내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벌초는 힘들지만 오랜만에 친척들 간에 친목을 도모하고, 벌초 후에 집에와서는 몸은 천근, 만근이 되어도 마음만은 깃털같이 가볍고 뿌듯한 느낌을 우리 후손들은 모를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필자의 마음은 미어져 온다.

▲ 묘 주변을 기점으로 묘안에서의 작업은 벌초경력이 많은 사람이, 묘 밖의 작업은 벌초경력이 적은 사람으로 구분한다. - (뉴스제주 D/B)
‘제주벌초문화’

조상과 후손들간의 교감을 가지는, 정말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습이지만 이것도 시대의 흐름에 변화를 받아야만 하는 것에 인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무척 아쉽다.

제주 벌초 문화가 우리 후손들에게 이어지는 가운데 언제가는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이 제주벌초문화만의 내면적 상징성은 꼭 우리들, 더 나아가 우리 후손들의 가슴에 이어져 나갔으면 하는 조그마한 바람을 가져본다.

음력 8월 초하루, 필자도 조상의 묘 앞에서 끈끈한 핏줄의 교감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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