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 보고 듣고 느낀대로

 

 1970년대 중반 천주교 제주교구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장을 맡고 있을 때, 중양에서 교회사 연구를 전담하고 있는 최석우 신부님을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최 신부님은 『황사영 백서』오 유명한 황사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연구에서 풀리지 않는 점이 많다며 분명히 제주도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황사영 알렉시오(1775~1801)는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사위로 15세의 어린 나이로 진사시험에 장원급제하여 정조임금의 초애를 받았던 천재였다.

그러나 그는 관직으로 출사하지 않고 천주교를 믿고 백성들에게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며 지내다 1801년 신유박해가 발생하자, 충청도 배론의 작은 토굴에 숨어 그 유명한 백서를 작성하였다.

백서는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조선에서 일어난 박해상황을 알리고 로마 교황청까지 보고하려 했는데 이 모든 것이 발각되어 그해 음력 11월 5일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당하여 수교하였다.

황사영의 모친 이윤혜는 거제도로, 부인 정난주 마리아는 제주도 대정골로 유배되었다는 것 까지는 알고 있으나, 정난주 마리아가 제주의 어디에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또한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그저 답답하다는 것이다.

이에 제주에서도 최 신부님과 서로 도우며 정난주 마리아의 행적을 찾기로 하고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어느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의 이런 말을 들은 대정읍 출신이며 남제주군 군수를 역임한 제주축산진흥원장으로 계시는 김서연(당시는 천주교 신자가 아님)씨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 집안에서 섣도, 이름도 모르는 그냥 『서울 할머니』라고만 부르는 분의 묘를 관리하고 있는데 그게 이상하네, 조상 대대로 할머니 묘 벌초관리를 하고 있주게(있다네.)“ 하는 말이었다.

중요한 힌트를 얻은 나는 모슬포성당 김병준 신부님과 연락하여 확인한 끝에 최 신부님에게 보고했고, 최 신부님은 그 길로 한달음에 내려와 조사에 착수했다.

이게 계기가 되어 정난주 마리아가 제주로 유배 올 때 탔던 풍선이 추자도를 넘어올 때 어린 아기를 족보아 함께 포대기에 싸서 바위 위에 올려놓고 왔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지기로는 정난주 마리아가 두 살 된 아이를 추자도 부이 위에 두고 왔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조사 딩시네는 정난주 마리아가 임신 만삭이었는데 제주도 해역에 이르러 파도가 높아지자 풍선에서 멀미가 심하여 조산했고, 그 갓난아기를 제주로 데리고 오면 황사영의 아들이라고 관아에서 죽여버릴 것을 두려훠한 나머지 선원을 매수하여 추자에 일시 정박하게 하고 아기를 족보화 함께 포대기로 싸서 바위 위에 올려 놓고 온 것으로 결론을 내렷다.

추자도에 가서 황씨의 내력을 조사했더니 정난주 마리아가 놓고 온 아기는 고기잡고 귀항허던 어부 오씨에게 발견되어 구출되었고, 오씨는 그를 키워 도사리(머슴)로 데리고 살며 같이 고기잡이를 하러 다녔다.

하루는 바다에서 돌아와 보니 집에 불이 나서 황씨 족보는 불타 버렸지만 그래도 오씨는 그의 황씨성을 지켜 주었고, 황경한이라는 그 아이는 훗날 아들 삼형제를 낳아 보통사람으로 여생을 보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대정골에 뷰배온 정난주 마리아는 죽을 때까지 추자도에 두고 온 아기에 대하여 말한 바 없고,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 아기가 황사영의 자식임이 알려지면 죽음을 당할가 두려워 침묵헌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추자도의 황씨 자손들은 자신들이 황사영의 후손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황씨 대종회와도 전혀 연결되지 못한 채 살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천주교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고, 생활도 넉넉지 못해 가난한 어부로만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생활도 넉넉지 못해 가난한 어부로만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황사영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정골에 정난주 마리아 할머니의 무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주교 제주교구에서 대정골의 정난주 마리아 묘를 성지로 성역화하는 행사때 황사영의 후손들을 초대했는데 그들은 천주교를 알지 못하는 관계로 어디둥절해 하였다.

하루 빨리 그들이 천주교를 알아 순교자의 후예다눈 삶을 살게 되고, 더 나아가 황사영 알렉시오 할아버지와 마리아 할머니가 200여년 전 피의 박해로 세상이 암흑에 빠질 때, 얼마나 중요한 노력을 하였던 고귀한 인물이었는지를 깊이 깨달아 자랑스러운 선조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고 살아가게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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