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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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 터키쪽으로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님 일행과 성지술례 여행을 떠났다.

여행안내서에 시나이산에 갈 때 필요하니 손전등을 지참하라고 되어 있어 의ㅎ아해 하면서도 준비를 했다.

시나이산은 신교. 구교 신자를 가리지 않고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어하는 성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탈출하는, 즉 구약성경 탈출기에서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10계명을 받은 곳이 시나이산이기 때문이다.

새벽 1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시나이산을 오른다 하기에 가이드에게 “멀쩡한 대낮을 놔두고 하필 오밤중에 고생을 하는가?” 하고 물었다.

“지금 말씀드리는 것보다 산에서 내려올 때 설명드리겠습니다.” 하고 그는 미소지었다.

여행서비스에서 내려 손전등을 밝히고 자갈길을 올라가는데 길가에서 “10달라!, 10달라!” 하며 현지인들이 우리말로 낙타타기를 흥정했다. 가이드는 절대로 낙타를 타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줬다.

비탈진 산길에서 흔들리는 낙타를 탔다가 떨어져 부사당하는 일이 워낙 많고, 보험처리도 되지 않는 사고이니 절대로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풀 한 포기 안 보이는 자갈길을 걷자니, 물만 마시고 싶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곳으로 끌고 들어와 원성을 많이 샀을 것이라 생각하니 당시 상황이 가히 짐작이 되었다.

우리가 새벽 1시에 출발한 이유는 시나이산 정상에서 해 뜨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정상에 오르자 해가 떠올랐고 산으로 올라올 때의 고생은 어딘가로 사라진 채, 희열과 환희속에 “야호!”하고 소리쳤다.

정상 근처에 조그마한 판잣집이 하나 있었고, 갖고 간 컵라면에 더운 물을 공급해 주면서 1달러씩 요금을 받았다.

컵라면을 안주삼아 갖고 간 한라산 소주를 한 잔씩 마시자 세상이 활홀해졌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이 얼마나 많이 시나이산에 올랐느지 짐작할 만한 증거물이 보였다. 판잣집 벽과 천장에 온통 시커멓게 한글로 낙서가 가득했다.

판잣집에서 장사하는 남자분도 웬만한 우리말을 다 알아들었고, 우리말로 인사도 했다.

등산이 끝나고 내려오는데 아침햇살인데도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노라니 가이드가 웃으며 “이제야 새벽 1시에 출발한 이유를 아시겠지요? 하산하는 길인데도 이렇게 더운데, 오르는 길이라면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나는 그제서야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평소 나는 우리 고향 들판에는 쓸데없는 잡초가 너무 많아 자란다고 불만스러워했는데 시나이산에는 한 포기의 풀도 없으니, 우리 나라 잡초가 새삼스레 고마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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