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두들겨놓고 적임자라 발표하는 도의회의 아이러니
인사청문회 무용론, 1라운드 셀프 TKO... 이런 황망함이!

▲ 왼쪽부터 김병립 제주시장, 손정미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대표이사, 이성구 제주에너지공사 사장. 세 명 모두 인사청문회로부터 사실상 ‘부적격’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각 자리에 임명됐다. ⓒ뉴스제주

깁병립 전 제주시장이 다시 제주시장 자리에 앉았다.
김 시장은 지난 16일 인사청문회를 거쳐 도의회 인사특위로부터 ‘적격’ 판정을 받았다. 결과만 보고 인사청문회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정치에 관심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해도 된다.

이미 인사청문회가 뻔한 요식행위로 전락했다는 비난은 이성구 제주에너지공사 사장 임명 강행 때부터 일기 시작했다. 손정미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대표이사 임명 강행 땐 아예 표면으로 드러났다. 이번 김병립 시장의 임명은 인사청문회에 카운터 펀치를 날린 셈이다.

인사청문회가 올해 첫 실시된 것이니 1라운드에서 3번 다운, TKO 넉 아웃(Knock Out, 완패)이다. 그런데 황망하게도 마지막 카운터 펀치는 자기 주먹으로 스스로를 가격했다. 이런 맙소사, 이럴수가(외국영화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Oh, my God. Damn it)!

앞의 두 경우는 도의회가 사실상 ‘부적격’에 가까운 평가로 내렸지만, 원희룡 지사가 도의회의 의견을 무시하고 임명을 강행했던 사례라 이번 김병립 시장의 임명과는 조금 다르다. 김 시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제주도의회 인사특별위원회가 아예 대놓고 원희룡 지사에게 “적절한 인물이 아니지만 그래도 임명하라”고 사인을 내 준 경우다.

인사특위는 김 시장에 대한 청문보고서에서 “고위 공직자가 갖춰야할 중요한 덕목인 도덕성이 부족하고 정책결정의 과오도 있었다”고 명시했다. 게다가 과거 행정대집행 사례를 두고서도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과잉 행위”라고 평가했다.

특히,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김 시장은 예전 이지훈 전 제주시장을 낙마하게 만든 사례였던 ‘불법건축물’이 김 시장에게도 악재로 작용했다. 농지원부를 부당하게 등재한 것도 적발됐다. 이를 지적한 인사특위 도의원은 “이건 명백히 고발감”이라고까지 힐난하며 김 시장을 코너로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그래놓고서는 청문보고서 마지막 단락에 “(김 시장이)개선의지를 밝히고 있다”며 “풍부한 경험이 있으니 제주시를 조속히 안정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앞뒤 문맥이 전혀 맞지 않는 이상한 보고서가 돼 버렸다.

명백히 ‘부적격’ 판단으로 보이지만 보고서에 사실상 ‘적격’이라고 명기한 것을 보면 인사청문회는 그 스스로 필요성을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보란 듯이 파헤치고 두들겨 놓고선 “적합하다”고 할 것이라면 인사청문회를 할 필요가 없다. 인사청문회가 이러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엔 일부 도의원들도 동의하고 있다. “뻔한 요식행위로 전락했다”는 지적에 A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것 같다”고 응수했다.

이번 김병립 시장의 인사청문회의 결과를 보더라도 도의회 스스로가 인사청문회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한 셈이나 다름없다. 완연한 자가당착에 빠졌다.

아이러니한 건 인사청문회는 먼저 제주도의회가 제주도정에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며 주장한 제도라는 점이다. 의원 발의로 인사청문회 실시 조례안이 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제주도가 재의요구로 거부하면서까지 인사청문회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결국 우여곡절 끝에 제주도가 이를 수락했다. 당장은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니지만 “그래도 해야한다”는 당위성에 두 기관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해서 이뤄진 것이다.

▲ 인사청문회. ⓒ뉴스제주

김 시장의 인사청문회와 달리, 이성구 사장과 손정미 대표이사의 경우엔 의회가 집행부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인사청문보고서에 명백히 ‘부적격’이라고 명시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부적격’에 가까운 표현들을 적시해 가며 적합하지 않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원희룡 지사가 이 두 명을 임명했으니 책임은 원 지사에게 있다고 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희룡 지사가 인사특위의 결정에 따르지 않고 임명을 강행했다고 해서 도의원들이 비판할 순 있지만 임명 여부를 강제할 수는 없다.

이 부분을 두고 원 지사는 지난 12일 JIBS <신윤경의 뉴스토크 왜?>에 출연해 “인사청문서 거부됐다고 임명 못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원 지사의 임명 강행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 인사청문회가 임명권에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아서다. 단, 제주도감사위원장의 경우엔 구속력을 갖는다. 제주도감사위원회는 제주도나 의회로부터 독립된 기구여야 하기 때문에 양 기관이 서로 동의해야만 지사가 임명할 수 있다.

원 지사는 "그래서 다른 지차제의 경우엔 개인 신상에 대한 청문은 첫날 비공개로 하고 본격적인 공개청문회 자리에서 정책과 업무능률에 대해서만 한다"며 "신상 들추기 식으로 가다보면 지역 인재 등용에 있어 거꾸로 입지를 좁히는 결과로 작용됐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거쳐 그리 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제주도 이러한 인사절차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원 지사는 인사청문회 도입과 관련해선 "의회에서 엄격한 잣대를 제기하고 있어 앞으로는 모든 공직 인사들의 수준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전반적으로 수준을 높이는 강제효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제주시장 2번, 정무부지사, 제주도감사위원장, 제주도개발공사 사장, 제주발전연구원장, 제주에너지공사 사장,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대표이사 등 인사청문회를 처음 도입한 제주도는 이제까지 총 8번을 치뤘다. 이제 도감사위원장 한 번만을 남겨두고 있다.

김 시장의 경우처럼, 도감사위원회도 장기간 공석으로 인한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어떤 지적이 쏟아지던 상관없이 그대로 ‘통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정이나 의회 모두 인사청문회를 이제껏 해본 적 없으니 올해는 그냥 시범적으로 맛만 본 것이라 치고, 그냥 ‘없던 일’로 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안 그래도 도정과 예산 전쟁을 벌여야 하는 도의회의 살인적인 강행군 일정에 인사청문회는 부담요소로 작용될 뿐이다. [뉴스제주 - 김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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