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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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김유비 장학회 이사장은 현경대 전 국회의원이지만 실무는 내가 책임지고 운영하고 있다.

재일교포 김유비 할머니가 6억원을 출연하여 설립한 장학재단이어서 그 분의 이름을 붙여 재단법인 김유비장학회라고 한 것이다.

김유비 할머니가 처음 만나는 나에게 6억원을 주면서 아무도 모르게 장학재단을 만들어 달라고 말한 일이 생각난다.

가까운 조카들은 이미 섭섭지 않을 정도로 도와줬으니 대놓고 불평하지 않겠지만, 내가 장학회를 만든다고 나서면 어렵게 사는 친족들이 자기들은 도와주지 않고 장학회 만들려 한다고 고깝게 생각할 수도 있고, 나아가 장학회를 만들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도 있으니 아무도 모르게 재단설립을 해 달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장학회를 만든다고 하면 자식들과 친족들에게 알리고 자랑스럽게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좋을 듯 싶은데도 남 모르게 하려는 데에는 깊은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호적등본을 보았더니 아들 셋, 딸 넷 7남매가 있었다.

그래도 자식들과는 상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되어 할머니께 여쭈었더니 "아들, 딸 모두 필요없다.!“ 며 단박에 역정을 내셨다.

그리곤 다음과 같은 사연을 들려 주셨다. “내가 남원읍 시골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배불리 먹어보지도 못했고, 배우지도 못하고 자라나 열여덟 되던 해에 시집가 일본으로 건너간 거야. 일본에서는 일본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면서 쓰레기를 줍고, 돼지를 키우면서 악착같이 살았지. 자네도 생각해 보게나. 오사가 큰 도시 한복판에서 돼지를 키우다 보면 주변에서 가만히 있겠나. 돼지 똥 냄새난다고 덩어 치우라고 날마다 아우성이었지.

그래도 나는 그들과 싸우면서 악착같이 돼지를 키웠어. 그러자니 나는 이웃들과 맨날 싸움질이나 하는 『욕쟁이』가 되어 버린 거야.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큰 아들이 일본 여자와 결혼해서 손자가 태어나고 호적에 올리려고 했더니, 아들놈이 자기 아이들을 『조센징』만들지 않겠다며 호적에 못 올리게 하는 거야. 그 뒤로 아들, 딸들이 모두 일본 사람들과 결혼했는데, 하나같이 『조센징』운운하며 자기 아이들을 호적에 못 올리게 하는 것 아닌가. 더욱 가관인 것은 어머니인 내가 오사카 한복판에서 돼지 키우며 이웃들과 자주 싸우고 욕쟁이가 되다 보니 창피해서 못살겠다며 나와는 아예 상종도 하지 않는거야. 내가 돼지는 왜 키웠고, 싸움은 왜 했는데.... 내 새끼들 잘 키우고, 잘 먹고, 잘 살려는 노력뿐이었다구.

그래서 나는 아들, 딸 모두 필요없고 재산도 물려줄 생각이 없으니, 고향의 가난한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장학회를 만들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나 같이 못 배우고 가난하여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믿고 돈을 밑길 사람을 찾다 보니, 주변에서 모두 자네를 추천하길래 자네에게 이렇게 부탁하게 된 것이야. 아무도 모르게 장학회를 만들어 주게.“

김유비 할머니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야말로 밑바닥 인생을 살면서 악착같이 모은 전 재산 6억원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장학회를 만들어 고향의 불우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고 뜻깊은 일이라 생각되었다.

미력한 힘이나마 할머니의 뜻에 동참하고자 장학회를 만들었고, 할머니가 떠나신 오늘 현재까지도 알뜰하게 운영하여 수 많은 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하고 있음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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