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한 119소방관, 경보기 빼놓고 철수 “자체 점검이 원칙”
소방시설관리업체 주먹구구식 운영, 불나면 ‘속수무책’

▲ 지난 25일 밤 화재경보기 오작동으로 대피소동이 벌어진 제주시 연동의 한 건물. 119소방대원이 빼놓은 화재경보기가 아무런 조치 없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뉴스제주

지난 25일 밤 9시40분께 제주시 연동의 10층짜리 아파트에 화재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이모(34)씨는 불현듯 뉴스에서 본 대형 화재를 떠올리고 황급히 복도로 뛰쳐나갔다.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대피한 이씨는 서성이는 주민 10여명 틈에 끼여 119를 기다렸다. 한 중년 여성은 잠옷을 급하게 추스르고 나와 몸을 웅크렸다. 책가방을 매고 나온 한 여학생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경보기는 10여분 동안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신고 8분 만에 도착한 119소방대원 2명은 화재수신기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수신기에서 빨간 불이 가리키는 곳은 7층이었다.

소방대원은 7층 복도 끝에서 문제의 경보기를 찾았다. 이내 경보기를 손으로 돌려 빼더니 바닥에 내려놓고는 “단순한 오작동인 것 같다. 일단 빼놓고 나중에 건물 소방관리자에게 전화해 고쳐달라고 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관리사무소는 연락도 잘 안 되고 안전문제에 관심이 없다”며 “최근에 큰 화재사고가 많이 나서 옥상 문을 개방하자고 건의했지만 열어주지도 않는다. 이러다가 아래층에서 불나면 우리는 다 죽는 거 아니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주민들이 참아왔던 불안감을 터뜨리자 소방대원은 “원래 공동주택이나 아파트는 건물주가 지정한 소방관리자가 관리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내일 전화해서 조치하라고 하겠다”는 말을 남긴 뒤 철수했다.

그러나 대피 소동이 있은 뒤 4일이 지나도록 해당 경보기는 빠진 채로 방치돼 있는 상황이다.

<뉴스제주>는 해당 건물의 관리사무소의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 민간에 맡긴 소방시설 자체 점검 시스템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면서 주민들이 각종 안전사고에 노출되고 있다. ⓒ뉴스제주

민간에 맡긴 화재관리 주먹구구식 운영

민간에 맡긴 소방시설 자체 점검 시스템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면서 주민들이 각종 안전사고에 노출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2년 소방당국이 하던 소방시설 점검을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소방특별조사’ 체제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제주도소방안전본부는 전체 건물에 대해 직접 점검을 실시하던 이전과 달리 6개월마다 한 차례 특별조사선정위원회를 개최해 전체 건물의 5~10%에 대해서만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나머지 건물은 건물주나 소방시설관리업체의 자체 점검에 맡기는 구조다.

소방 관계자는 “자체 점검이 형식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올해부터는 민간업체가 실시한 점검 보고서나 기록부 등을 제출하도록 규정을 바꿨다”며 “보고서 등에 문제가 있을 경우 소방당국은 시정·보완 명령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행 화재관리 시스템이 관리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임채현(44) 제주국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건물주가 소방관리업체에 대금을 지불한다는 것"이라며 "부적합 보고서를 제출하게 되면 건물주가 시정명령을 받기 때문에 돈을 받는 용역업체의 입장에서는 소신껏 안전문제를 거론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안일한 안전의식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임 교수는 "많은 건물주들이 안전점검을 일종의 요식행위로 여기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저가에 점검을 맡기려고 한다"며 "업체들은 가격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결국 적절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허술한 관리로 이어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한편 경보장치·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 오작동으로 제주도내 소방관서가 출동한 건수는 2012년도 228건, 2013년도 130건, 2014년 147건에 이어 올해 1월 기준 12건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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