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 ⓒ뉴스제주
지금 추세대로라면 『편지』라는 단어도 없어질 것 같고, 편지쓰는 행위 자체도 사라질 것 같다.

휴대폰이 문자메시지를 보내주고, 멀리있는 사람에게 즉시 전화로 통화할 수 있는데, 뭐하러 시간걸리고 거추장스럽게 편지쓰느냐 하는 식이다

지난 여름 김유비 장학회로 한 장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장학생이 장학금 받는 것에 감사편지를 보내 오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 일년에 한 두 건에 불과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편지를 펼쳐보니 밑도 끝도 없이 “말재주가 없어서 표현을 못하겠네요. 죄송합니다.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느 고등학교 3학년, 아무개.“ 라고 간단히 씌여 있었다. 아무리 학교에서 편지 쓰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 다고 해도 고등학교 3학년이나 되는 학생이 간단한 인사와 고맙다는 뜻을 쓸줄 몰라 편지를 그 모양으로 적었다는 것이 너무나 한심스러웠다.

아마도 담임 선생님께서 장학회에 감사편지를 보내는 게 어떠냐고 권했기 때문에 마지못해 편지를 쓴다는 게 그 모양인 것 같다.

핸드폰으로 친구들과 주고받는 문자메시지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눌러대고 있을 텐데, 예의를 갖추어 작성해야 하는 편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나의 이런 경험담을 듣던 전직 모 고등학교 Y 교장은 “현직에 있을 때 교외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을 집합시켜, 고마움을 전하는 감사편지를 써 보내라고 했더니 편지에다 ‘학교에서 편지 써 보내는 않으면 기합 주겠다 해서 할 수 없이 씁니다.’라고 써 보내 버려 해당 장학회로부터 항의전화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라고 난처한 입장에 처했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고 3 학생이 이 편지를 받은 얼마 후 대학생 장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2012년도 장학생 선발에 참고하고자 군 입대 여부, 학교 휴학 여부, 장학금 수령을 계속할 EMt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어느 대학 1학년 학생에게 “계속 장학금 받고 싶은가? 그럼 장학회로 편지라도 한 장 써 보내게.” 하고 말했다. 그 학생 대답이 기가 막혔다.

“편지가 뭐에요?”

“자네, 편지가 뭔지도 모르는가?”

“네. 모르겠는데요.”

“자네,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 보내지? 그걸 종이에다 써서 보내는 것이 편지야.”

“아하! 그래요? 알겠습니다.”

이런 저급한 수준의 대화를 하고 보니, 좀전에 보내온 고 3 학생의 편지는 아주 높은 수준의 문장이었던 것이다.

내가 장학회 일을 맡아 본 지도 15년이 넘었고, 그 동안 1,000여 명의 학생에게 넉넉지는 못했지만 장학금을 지급했는데, 고마운 편지를 보내온 학생은 불과 몇 명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공부를 장하기 때문에 따낸 전리품’, 혹은 ‘이 장학금 아니면, 더 좋은 조건의 다른 장학금을 받을텐데....’ 하는 생각을 가진 학생들도 있는 것 같다.

파격적인 조건으로 지급되는 장학금에 비하면, 우리 장학금이 넉넉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고 받는 거래의 관계를 떠나서, 작게나마 고마움의 표현 사회의 큰 인물이라는 덕담의 소리 등 정감어린 장학회의 운영이 필요하지 않겠나, 장학금 몇 푼 준다고 유세떠는 것처럼 보일까봐 이제 더 이상 편지 보내 달라는 소리도 못하겠고..... 멀리 않은 미래에 『편지』라는 단어도 사라지고 『편지쓰기』란 문화도 없어질 것 같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