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늦은 오후 제주시 건입동의 한 골목.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오래된 집들 사이로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어 흉물이 된 녹색 대문이 눈에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대문을 조심스레 열고 비좁은 마당을 지나 격자무늬의 미닫이문을 두드리자 이내 한 할머니가 활짝 웃으며 필자를 반겼다.

▲ 강모(85) 할머니와 제주시 독거노인원스톱지원센터 관계자 ⓒ뉴스제주

강모(85) 할머니의 고향은 제주가 아니다. 제주에 내려오기 전까지 전라남도 해남에서 평생을 살았다. 80년 넘게 해남에서 살다가 제주에 온 지 이제 갓 1년.

처음 강 할머니에게 제주는 낯설고 무서운 동네였다. 제주의 인심이 야박해서가 아니라 딸과 사위를 제외하면 제주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온 종일 TV를 보며 지내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 집에만 있었어. 이 곳 지리도 모르고 해서 잘 못 나갔다가는 길을 잃을 것 같아 집 밖으로 나가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지"

성인 2명이 누우면 꽉 들어찰 크기의 좁은 방에는 TV와 이불 등 최소한에 세간살이만 갖춰져 있었다. 강 할머니는 자식들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서 제외됐다.

강 할머니의 한 달 생활비는 매달 받는 고령연금 20만원이 전부다. 이 돈으로 쌀이며, 반찬을 사고나면 남는게 없다. 아니 턱 없이 부족하다. 이따금 딸이 들러서 주고 가는 용돈이 있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못하다.

"내 사위가 지금 이 방을 구해줬어. TV며 이불도 사위가 해줬지. 딸네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는데..."

"아들이 3명이나 있지만 지금 제주에는 없어. 큰 아들은 서울에서 살고, 둘째와 셋째 아들은 고향(해남)에 있어. 내가 해남에 있을 때 아들하고 같이 지내고 싶었지만 며느리가 싫어하는 것 같아 쭉 혼자 살았었지"

▲ 녹록치 않은 제주살이 2년 차인 강 할머니 ⓒ뉴스제주

사위의 종용으로 제주에 온 강 할머니에게 사위는 아들보다 더 아들 같았던 자식이었다.

"딸하고 사위가 제주에 내려가서 같이 살자고 그랬어. 혼자 사는 내가 적적해 보였는지 같이 내려가 살재. 사위가 그랬어 제주에는 먹고 살만한 일들이 제법 있어서 살만하다고. 딸하고, 사위 따라 제주에 온거야"

"내가 복이 없어서 그런거야......" 할머니는 이내 말끝을 흐렸다. 할머니는 어느새 그렁그렁해진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 사위는 작년에 소나무 베다가 쓰러지는 나무에 맞아 죽었어. 마음씨가 너무 착한 사위였는데 그 이후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네..."

강 할머니의 사위는 지난해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작업 도중 쓰러지는 나무에 부딪쳐 숨진 인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내가 복이 없기 때문에 사위가 죽은 거야. 이제 죽어야 할 때 가 된 것 같아. 자식들이 편히 살려면 내가 죽어야 해. 내가 사는 동안 자식들에게 짐만 되지......"

 

강 할머니처럼 혼자 사는 제주도내 독거노인은 1만여 명이 넘는다. 문제는 이들의 사회적 고립이 꾀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데 있다. 이들 가운데 이웃 또는 가족과 자주 만나지 않는 비율은 각각 1930명(17.7%), 2470명(22.7%)으로 전국평균 13%, 16%보다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시 독거노인원스톱지원센터 관계자는 "혼자 사시는 어르신은 많은데 도움의 손길은 부족하다. 물질적인 지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관심"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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