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지사의 생각과 말은 그럴싸한데 정작 손발은 따로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2156번지 일대에 조성하려는 관광지 개발사업 때문에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큰 난관에 부딪혔다.

자칫 잘못하다간 자신의 정치 이력에 큰 오점으로 남길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로 비화될 수 있어서다. 원 지사는 도지사 취임 때부터 누누이 ‘제주 자연환경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겠다며 제주 중산간 일대 개발을 반대해왔다. 만일 상가리 개발사업이 진행되면 이를 정면으로 위반한다. 한 입으로 두 말한 ‘거짓말쟁이’가 돼 버린다.

▲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2156번지 일대. 상가리 마을 주민들이 공동목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 추진될 상가리 관광지 개발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최근 통과했다. ⓒ뉴스제주

상가리 개발사업에 대한 논란은 이미 지난 2013년 7월께부터 제기돼왔다. 사업추진은 민선 5기 우근민 전 도정 때부터다. 논란이 된 이유는 이곳 사업부지 중 80% 이상이 해발 500m가 넘는 대지이기 때문이다. 제1산록도로에서 한라산 방면에 위치해 있다. 게다가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애기뿔소똥구리가 서식하고 있는 지역이라 생태계보전지구 등급 기준 상 1등급으로 지정돼야 할 곳이다. 하지만 도정은 보전지구 지정엔 관심이 없다. 이미 이곳은 지난 2010년에 개발진흥지구로 지정돼 있어서다.

개발진흥지구로 지정돼 있으니 사업신청 요구가 들어 왔다. ‘중산간 난개발’이라는 난제 앞에 도는 개발사업 허가 전 단계 중 하나인 환경영향평가 심의를 3차례나 진행했다. 환경 파괴 우려를 이유로 ‘재심의’ 결정을 내렸지만 3번의 두드림 끝에 문이 열렸다. 지난 4월 17일, 환경영향평가 심의위원회는 조건부 동의로 상가리 관광지 개발사업을 통과시켰다.

동의 조건은 ▲목장 부지 주민들과 합의 ▲애기뿔소똥구리 보호대책 ▲대체 서식지 확보와 별도의 보호방안 강구 등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의 초점인 ‘중산간 난개발’에 따른 보호조치는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도내 시민사회단체들은 “중산간 난개발이 웬 말이냐”며 “사업 허가는 있을 수 없다”고 강력히 성토했다.

상가리 개발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는 심의위원 15명 중 14명이 참석한 가운데, 11명이 찬성 손을 들었다. 11명 중 3명은 원안 동의였고 8명은 보완 동의로 이뤄졌다. 나머지 3명은 재심의를 결정했지만 찬성이 워낙 많아 소용이 없었다.

▲ 상가리 관광지 개발사업 예정부지. 전체 44만 3703㎡. ⓒ뉴스제주

이를 두고서도 문제가 많다.
환경영향평가에는 ‘원안 동의’와 ‘조건부 동의’, ‘재심의’ 3가지의 결정유형만 존재한다. ‘부동의’가 없다. 그러니 사업자는 동의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 줄기차게 신청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도내 시민사회 단체들과 일부 도의회 의원들은 “심의위원들이 부동의 결정을 내려 사업허가 신청을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하나 어처구니 없는 것은 당시 심의위원회 회의 현장에서 도청 실국장이 공공연히 통과해 줄 것을 심의위원회에 압력을 가했다는 사실이다.

문순영 제주도 환경보전국장과 이양문 관광산업과 일괄처리담당이 당시 심의가 벌어지던 제주도청 2층 회의실에 찾아가 “이 사업은 전임 도정 때부터 추진해 왔던 거라 여기서 멈추게 되면 사업자가 많은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명백히 공직자가 사업자의 편의를 봐 준 셈이다.

이 같은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원희룡 지사는 자신의 정책이 엇나가고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4월 20일 간부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이대로 도의회에 넘기기엔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며 개발사업에 일단 제동을 걸었다.

특히 원 지사는 문순영 국장의 발언에 대해 “부적절했다. 도정의 공식 방침과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전임 도정에 있던 사업들 또한 환경을 우선시 해야 한다는 방침에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정도의 발언이라면 상가리 관광지 개발사업은 사실상 물건너 갔다고 봐야할까.

해당 개발사업의 시행자는 일본기업이 설립한 (주)청봉인베스트먼트다. 전체 44만 3703㎡ 부지에 사업비 2000여 억원을 부어 콘도미니엄과 판매시설, 테마박물관, 승마장 등이 포함된 복합체류형 관광지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상가리 관광지 개발사업 계획 평면도. (주)청봉인베스트먼트가 사업비 2000여 억원을 부어 콘도미니엄과 판매시설, 테마박물관, 승마장 등이 포함된 복합체류형 관광지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뉴스제주

그런데 사업부지 중 18만 7340㎡(42.2%)가 공유지다. 사업자가 이곳에 개발사업을 진행하려면 제주도청으로부터 공유지를 매입하거나 임대받아야 한다. 사업부지 안에 공유지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사업자가 모를 수가 없기 때문에 사업자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공직자들이 직접 나섰던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이 공유지가 상가리 마을주민들이 공동목장으로 사용해 오던 것이라는 점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공동목장 소유권을 놓고 마을주민과 제주도정이 법적 다툼까지 갔다.

사업부지 중 30%(10만 5330㎡)가 공동목장 용지다. 선조 때부터 사용돼 왔다는 점을 들어 마을 소유라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제주지방법원은 마을 소유라는 정확한 근거가 없음을 이유로 행정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주민들은 항소했다. 대법원에서는 국공유지라 하더라도 원래 토지주가 나타나면 돌려줘야 한다고 결정한 판례가 있어서다.

사업부지가 이런 소송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정은 개발사업에 따른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해줬다. 상가리 주민들은 “지역민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환경영향평가를 어떻게 통과시켜 줄 수 있느냐”며 “원희룡 지사가 출범 초기에 중산간 보호 대책을 발표했지만 실제 행정행위가 이 모양이니 원 도정을 신뢰할 수가 없다”고 힐난했다.

이와는 별개로 제주도정은 상가리 개발사업 논란에 앞서 중산간 난개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기 위해 지난 2월 26일 ‘도시계획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손질해 제주도의회에 제출한 바 있다.

도의회는 4월 22일 해당 조례안을 검토한 뒤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 도정이 제시한 대로 개정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도정이 이를 공포하고 2개월이 지나면 이 조례에 의해 제주도 해발 200m 이상 중산간 지역에선 3만㎡(약 9075평) 이상의 대규모 개발사업이 허가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달린다. 개발사업 제한이 적용되기 이전에 환경영향평가 심의위원회로부터 통과된 ‘상가리 관광지 개발사업’ 또한 제한받게 되느냐는 것이다. 제주도정은 이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이에 대한 고심을 하고 있다는 뜻을 내비치려고 하는 듯 원희룡 지사는 4월 26일 중앙썬데이 글로컬광장에 ‘100년 후에도 온전해야 할 제주 올레길’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똑같은 내용을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게재했다.

원 지사는 “지금까진 투자유치를 최우선 순위에 두면서 제주의 중산간과 오름, 해안은 아픔을 감수해야 했다”며 “투자 유치는 환경보호와 사업자의 이익, 행정의 일관성이란 3가지 가치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 때 가정 우선되는 가치는 환경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환경을 중심에 놓고 다른 가치들이 가지는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썼다.

이를 보면, 환경과 맞물려 있는 개발사업들에 대해선 ‘전면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천명한 셈이다. 이러한 기조는 유원지 대법원 판결 사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사업의 파장에 따라 영향을 미치게 된 송악산 개발사업에 대해 사업 전면 재검토를 주문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원 지사가 이렇게 중산간 난개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가고 있을 때, 정작 제주도 환경보전국장이라는 고위공직자는 중산가 보호는 뒷전에 두고 사업자의 편의를 봐줘야 한다는 등 이와는 전혀 다른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거기다 환경영향평가 심의위원회 소속의 위원들 중 통과시켜 준 11명의 위원들 또한 따로 놀고 있다는 뜻이다. 하나의 정책을 두고 제주도의 수장과 공직자들이 소통은커녕 별개의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러니 도내 시민사회단체들은 물론, 주민들 또한 원 도정을 신뢰할 수 없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생각과 말은 그럴싸한데 손발이 따로 놀고 있으니 문제다. [뉴스제주 - 김명현 기자]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