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 이야기] 위딩 대표 박성준

기업의 가장 큰 목적은 '이익 창출'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사회적 목적'이라는 또 다른 존립 이유가 있다.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얻어지는 수익 중 일부는 또 다른 사회적 목적을 위해 재투자한다. 나눔에서 또 다른 나눔을 확산하는 것이다. 사회적기업은 2007년 7월 고용노동부 주관 하에 첫 시행됐다. 제주도는 그해 10월 제도를 도입, 2015년 1월 현재 33개의 사회적기업과 70개의 예비사회적기업을 지정, 운영하고 있다. 누구보다 '공생'의 의미를 잘 알고, 그것을 실현하고 있는 사람들.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본다. <편집자 주>

▲ 위딩 박성준 대표. ⓒ뉴스제주

막바지 대학생활, 호기롭게 떠났던 미국 횡단여행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날은 그의 '지금'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의욕'과 '기회'가 적절하게 만났을 때

여행 마지막 날. 그는 미국 횡단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그곳은 방이 3개인 아파트였다. 주인은 몸 절반이 불편했으나 그 안에서는 무척 자유로웠다. 불편함에 괘념치 않고 사회생활과 경제 활동을 단 번에 해내는 주인이 그저 대단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이따금씩 주인이 떠올랐다.

그러던 중 대학 졸업학기 때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공모전이 열렸다. 마을기업과 사회적 기업을 선정, 육성하는 사업이었는데 지금의 '위딩'이 사회적 기업 부문에 뽑혔고, 사업비를 지원받게 됐다.

"배낭여행 후 의욕이 남달랐을 때라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제주도의 안거리, 밖거리 주거문화를 제가 묶은 게스트하우스와 연계해 생각해보면 어떨까싶었어요. 그게 아이디어의 시작이 됐죠. 운이 좋았어요. 한 달간의 미국횡단여행 후 마지막에 묶었던 게스트하우스가 전환점이 됐네요."

▲ (좌)박성준 대표와 (우)고대윤씨. 위딩과 함께하는 사람들. ⓒ뉴스제주

불신이 믿음이 되기까지 '함께하다(withing)'

'위딩'은 함께라는 뜻의 'with'와 하다라는 뜻의 'ing'가 결합된 합성어로 주변의 모든 이웃과 함께하고 싶다는 의미에서 비롯됐다.

위딩은 농어촌 취약계층의 집 또는 빈집을 리모델링해주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 얻는 수익을 배분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콘셉트 제안부터 리모델링, 사업자 등록까지 마친 후 마케팅과 예약서비스까지 도맡아 한다.

게스트하우스 운영은 집주인의 몫이다. 청소와 고객관리 등 전반적인 운영은 집주인이 도맡게 된다.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니 "그것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리모델링 대상'을 구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그저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해안가에 자리한 30개의 마을회관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이름 낯선 회사, 젊은 청년들의 호소가 영업쯤으로 보였는지 '판매원' 취급당하길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두드리면 열릴지어다. 30개의 집이 위딩에 문을 열어줬다.

1호점 '풍차' 위딩하우스는 이혼 후 지병으로 소득 없이 집에서만 생활하시던 풍채 좋은 김 아저씨 댁이었다. 지원받은 사업비로 꾸리는 첫 집.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그러나 '초보 사업자'의 길은 역시 멀고도 험난했다.

인테리어 공사 이전에는 공사 순서를 나열해놓은 '시방서'를 작성해야 한다. 난생 처음 접하는 건축용어 앞에서 경영학도는 까막눈이 됐다. 법인 설립을 위해 찾았던 법무사가 소개해준 인테리어 회사에 덜컥 모든 것을 맡겼고, 그게 화근이 됐다.

공사가 3분의 1도 채 되지 않았을 때 공사가 중단됐다. 집이 방치됐다. 김 아저씨의 표정도 한 없이 일그러져 갔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한 달간 방치된 집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박 대표와 그의 지인들이 총동원 됐다. 김 아저씨도 함께 팔을 걷어붙였다. 도배부터 화장실 마감, 다다미 깔기까지 직접 공사를 하기 시작했다.

마당에 흙을 퍼다 나르고, 잔디를 깔고, 재능기부를 받아 벽화까지 그리고 나니 제법 근사한 '위딩하우스'가 탄생했다.

불신은 곧 믿음이 됐다. 리모델링 후 고객이 들기 시작하면서 주인아저씨의 표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기력하던 사람이 손님들과 대화를 하고, 청소관리로 원치 않는 운동까지 하게 되니 혈색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리모델링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기본 예산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있는 그대로를 살려가며 작업을 해요. 제 불찰 탓에 1호점이 힘들게 문을 열었지만 '동고동락'하며 탄생한 곳이라 애착이 더 많이 가요. 정성을 쏟은 만큼 고객 반응도 가장 좋은 곳입니다."

현재 위딩은 1호점 구좌 행원 풍차 위딩하우스에 이어 2호점 애월 장전 통나무 위딩하우스, 3호점 서귀포 안덕 엄블랑 위딩하우스의 문을 열었다.

▲ 동고동락 끝에 탄생한 1호점 구좌 행원 '풍차' 위딩하우스. ⓒ뉴스제주

더디게 가는 길. 다시 출발선에 서서

시장은 생각보다 냉정했다. 저렴한 숙소를 제공하는 것이 사업의 취지 중 하나였다. 독단적 운영이 아닌 집주인과의 합의 하에 운영되는 것이라 합당한 '가격대'를 맞추는 것도 일이었다.

1호점인 행원 위딩하우스의 경우 지역이 유명세를 타며 꾸준히 손님이 있지만 애월과 안덕의 경우 아직 이용률이 저조하고, 비수기 때는 먼지가 날릴 때도 있다. 모든 게스트하우스에 사람을 채워도 방 개수가 적다보니 큰 수익을 바라기는 어렵다.

그래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비록 작지만 지역마을 노인회 등에 점심식사와 간식을 제공하며 여전히 함께 가는 길을 걷고 있다.

"차라리 가라앉았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생각했어요. 근데 저도 모르게 천천히 전진하고 있더라고요. 사회적 기업 운영에 있어 여러 가지 지원이 메리트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죠.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시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도 해요. 하지만 그 기업을 운영한다는 자체가 취약계층과 함께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이잖아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죠. 많은 분들이 사회적 기업의 긍정적인 부분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또 저와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물론 저도 끝까지 '함께' 하려고요"

위딩은 2013년 4분기 예비사회적기업에 지정됐다. 사회적기업 인증까지 기간이 걸리리란 것은 이미 예상하던 바다. 지금은 쓰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 지역 주민이 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내는 새로운 작업을 시도 중이다. 그는 다시 출발선에 섰지만 더디게 가는 길이 두렵지 않다. 그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걷고, 또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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