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이 리뷰엔 결말부문에 대한 묘사가 들어있습니다) '쥬라기 공원'(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광은 사실상 1993년에 끝났다. 4년 뒤 나온 속편 '쥬라기 공원:잃어버린 세계'(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매우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다시 4년 뒤 나온 '쥬라기 공원3'(감독 조 존스턴)는 전작보다 더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으니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쥬라기 공원'이 몰락한 과정은 관객이 '트랜스포머' 오토봇의 '변신'에 결국 지쳐버리고 만 것과 유사해 보인다. 그림으로 보던 죽은 공룡을 스크린 속 '생물'로 되살려낸 스필버그의 마법이 통한 건 단 한 번 뿐이었다. 관객은 비슷한 이미지에 생각보다 쉽게 질렸고, 끊임없이 인간의 겸손함을 강조하며 가르치려드는 메시지의 반복에 더이상 감동을 느끼지 않게 됐다.

'쥬라기 공원'의 네 번째 영화 '쥬라기 월드'는 이 시리즈의 몰락을 가져온 패착을 피해가지 못했다. 제작진은 완성된 영화를 만들기 보다는 볼거리에 힘을 쏟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공룡을 정교하게 다듬느라 정작 서사는 엉성하게 쌓아올리고 말았다. '쥬라기 월드'는 22년 전 '쥬라기 공원'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새 영화는 낡았다.

'쥬라기 공원'이 문을 닫은 지 22년,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공룡을 앞세운 '쥬라기 월드'는 세계 최대 테마파크로 자리 잡는다. 이 테마파크를 만든 사이먼(이르판 칸)은 감소하는 관객을 잡기 위해 더 크고 더 강력한 유전자 조작 공룡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태어난 공룡은 신체능력과 지능 모두 이전의 공룡들보다 뛰어난 인도미누스렉스. 그런데 이 공룡이 테마파크 탈출을 시도하면서 쥬라기 월드는 위기에 빠진다.

콜린 트레보로 감독은 흡사 관객이 아닌 스티븐 스필버그를 위해 영화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1993년 '쥬라기 월드'를 반복해서 소환한다. 등장인물의 티셔츠를 통해 '쥬라기 공원' 포스터를 불러 내고, 폐허가 된 과거 쥬라기 공원과 그 영화에서 쓰였던 소품들을 다시금 보여줌으로써 추억팔이를 시도한다. 또 '쥬라기 공원'에서 스필버그 감독이 사용한 촬영 방식을 반복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지난 영화를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전체 분량에서 많은 양을 차지하는 건 아니지만, 이는 일종의 징후로 보인다. 추측하건대, 트레보로 감독의 생각은 '어차피 원작을 뛰어넘지는 못하니 충실히 계승하자'라는 것으로 보인다. 감독의 이런 태도는 영화의 메시지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인간의 오만함을 비판했던 스필버그의 메시지를 트레보로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온전히 이식했다. 말랑말랑한 로맨스는 양념이다.

'쥬라기 월드'의 '계승'은 메시지의 반복과 함께 더 강력한 형태의 티-렉스인 인도미누스렉스의 창조로 이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테마파크를 쑥대밭으로 만들던 인도미누스렉스를 제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게 바로 티-렉스라는 점이다. 티-렉스는 마치 영웅처럼 장대한 음악과 함께 등장해 인도미누스렉스와 싸워 승리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을 티-렉스가 울부짖는 모습으로 마무리한 것에서 트레보로의 스필버그 계승은 확실해진다. 자신의 창조물이 아닌 스필버그의 창조물의 손을 들어주니 '쥬라기 월드'는 처음부터 어떤 새로운 시도도 하지 않았던 셈이다. 영화에는 성공한 전작에 숟가락을 얹어 관객의 추억을 적당히 자극한 뒤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럴싸한 시퀀스를 만들어내기만 하면 된다는 안일함이 보인다.


생명존중과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 가족에 대한 사랑, 위기 속에 싹트는 로맨스 등의 이야기를 섞어 놓은 듯 보이는 서사는 깊이 없이 나열되기만 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래도 볼거리가 있지 않느냐는 말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미 공룡은 질리도록 봐오지 않았냐고. 5차원 세계로까지 확장하는 할리우드의 기술력을 생각한다면 '쥬라기 월드'가 창조한 공룡은 그리 신기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공룡보다 더 신기한 변신 로봇에도 지쳐버리지 않았느냐고.

이 영화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좋지 않은 클리셰를 자꾸 반복하고 어설픈 유머로 관객을 허탈하게 만드는 건 덤이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부활할 수 없을까. 매너리즘에 빠졌던 몇몇 시리즈 영화들이 연출가와 각본가를 교체해 다시금 관객의 사랑을 받는 데 성공한 사례는 분명히 있다. '쥬라기 공원'이 다시 한 번 만들어진다면. 이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됐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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