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예산 논란 2] 한 때 교사였던, 교육의원들의 이해할 수 없는 선택

▲ 제주특별자치도청과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뉴스제주

#답답한 제주도교육청, 먼 산만 바라보는 제주도청
제주도교육청의 한 해 예산은 약 8000억 원 규모다.
이 중 5500억 원이 교직원 등 인건비로서 69%를 차지하고, 학교운영비 및 시설비로 1300억 원(16%)으로 통상 편성되고 있다. 그 나머지 1200억 원으로 제주도내 모든 유·초·중·고 교육사업비로 쓰여진다.

누리과정 예산은 이 나머지 교육사업비 중에서 써야 한다.
올해 누리과정 예산은 579억 원이었는데, 교육사업비 절반에 해당된다. 이러니 도교육청은 적자를 감수해서라도 지방채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발행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내년 누리과정 예산은 624억 원이다.
이 가운데 유치원에 대한 부담금은 166억 1723만 원으로서, 이는 도교육청에서 부담해야 할 예산이므로 2016년도 새해 예산안에 그대로 편성됐다.

문제는 어린이집 부담분 457억 8200만 원에 대한 누리과정 예산이다.

올해도 도교육청에서 이를 집행하려면 지방채를 발행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갚아야 할 빚더미는 쌓아만 갈 것이다.

이 때문에 제주도교육청은 내년도 예산에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편성하지 않았다. 이석문 도교육감은 “만일 지방채를 발행하지 않고 교육사업비로 집행하게 될 경우, 도내 모든 교육기관에서 집행돼야 할 500여 개의 사업이 중단되는 것과 같다”며 편성 거부를 강력히 천명했다.

이에 제주도청은 지방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것에 대해 응당 동변상련을 느끼지만 정부에서 시행령을 개정한 만큼 도교육청으로부터 '세입'이 들어오지 않으면 세출에 편성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부에서 이렇게 하라고 했으니 우리는 할 도리가 없다는 식이다. 어린이집에 대한 보육 책임이 엄연히 제주도지사에게 있음에도 ‘나 몰라라’ 식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만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 편성되지 않고 12월을 지나게 되면, 내년부터 어린이집 보육료가 한꺼번에 30만 원 가량 오르게 된다. 말 그대로 ‘보육 대란’이 오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전국 17개 지방자치단체 중 3곳을 제외하고 어린이집 예산을 일부 편성했다. 대전이나 경기, 충북은 지자체에서 예산 편성을 하지 않았다.

도교육청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제주도청에서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은 했다. 다만 도교육청으로부터 관련된 예산을 전출되지 못하면 집행을 안 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즉, 도교육청에서 예산을 도청으로 넘겨주지 않으면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은 없다는 뜻이다.
도청으로 예산을 전출시키려면 정부로부터 지방재정교부금을 받아야 하는데, 정부에선 못 주겠다고 하니 도교육청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인 것이다.

결국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 중 국회 예비비로 3000억 원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으로 지원키로 결정했다. 허나 전국 17개 시도로 나누면 각 시·도 교육청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은 약 176억 4706만 원 정도뿐이다. 281억 3494만 원이 모자란다.

▲ 왼쪽부터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교육위원회 오대익 위원장, 김광수, 강시백, 강성균, 부공남 교육의원. ⓒ뉴스제주

#교육위원들의 진보교육감 흔들기, 이런 중차대한 시국에?
이 때문에 당장 내년도부터 어린이집 보육료 대란이 오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도의회 교육위는 당장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증액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이번 계수조정을 통해 드러냈다.

교육위는 도교육청의 내년도 예산안 중 정규직 인건비 73억 1010만 원을 삭감하고, 다른 사업에서 추가적으로 더 삭감한 뒤 어린이집 누리과정 2개월분 76억 3400만 원을 모아 증액 편성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교육위 관계자는 "나머지 10개월분에 대한 집행 계획에 대해선 추후에 논의해봐야 할 문제"라며 향후 계획에 대해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이석문 도교육감의 대변인은 "누리과정 예산에 2개월분이 편성된 것에 앞서 교육감 직속의 인건비를 자르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교육감이 최우선적으로 보장해야 할 교직원들의 인건비를 삭감하고 도교육청 관할이 아닌 어린이집 누리과정 집행을 강요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예산 편성"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변인은 "교육행정 현장에서 이제껏 활동해 오면서 이를 잘 아는 교육의원분들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 이해할 수 없다. 인건비 삭감은 교육현장 사기를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이대로 본회의에 회부될 시 부동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제껏 도교육청이 본회의장에서 ‘부동의’를 선언한 전례가 없었기에, 교육위의 이번 결정은 이석문 교육감을 향한 도발이다. 무리수를 던질테니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그렇게 비춰질 수밖에 없는 것은, 현재 교육위원들은 한 때 모두 이석문 교육감과 똑같이 교육행정의 최일선에서 ‘정규직’으로 일해왔던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들이 교직원들의 정규직 인건비를 삭감하고 그것을 누리과정 예산으로 증액시킨 결정을 두고 ‘아이러니’라 아니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도의회에서 여·야간 정족수가 비슷해 사실상 교육의원이 ‘캐스팅 보트(Casting Vote)'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도발에 가까운 교육의원들의 ‘정치적인 선 넘기’는, 그래서 진보교육감을 흔들기 위한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결정이 아니었느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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