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저가항공사의 실태, 이번 공항 운항 중단사태에 여실히 드러나
서비스 개선은 뒷전, 여분의 항공기 투입 어려운 실정만 토로

제주국제공항은 지난 23일 오전 8시 30분께부터 항공기들이 대거 지연 운항되면서 공항의 정상적인 운영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23일 새벽부터 찾아 온 역대 최강 한파와 32년만의 기록적인 폭설이 제주도를 강타하면서 항공기들이 제 시간에 출발하지 못하고 활주로에서 옴짝달싹 못했다.

연이어 결항 사태를 빚게 되자 국토교통부는 23일 오후 5시 50분을 기해 제주국제공항의 모든 운항을 중단시키고 활주로 폐쇄 조치를 내렸다.

활주로 폐쇄 조치는 25일 낮 12시까지 이어졌다. 42시간 동안 제주국제공항에서 단 한 대의 항공기도 이·착륙하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 25일 제주국제공항이 정상 가동되면서 발권을 하기 위해 엄청난 수의 체류객들이 몰려 있다. ⓒ뉴스제주

이 기간동안 제주에서 출발해야 할 500여 편의 항공기가 결항되면서 8만 6960명의 체류객들이 발생했다.

폐쇄 조치가 있던 다음 45시간만인 25일 오후 3시께야 첫 항공기가 이륙했다. 제일 첫 출발한 항공사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등의 대형항공사가 아닌 이스타항공이었다.

이스타 항공 여객기가 이날 오후 2시 48분에 이륙했고, 뒤이어 진에어가 오후 3시 4분, 제주항공은 3시 7분에 이륙했다. 그 다음에 400여 명의 승객을 태운 대한항공 여객기 KE1282가 제주국제공항에서 발을 뗐다.

저가항공사들이 대형항공사를 제치고 제일 먼저 이륙했지만 여기엔 씁쓸함이 남아있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여객기를 이용해 지난 23일 제주에서 출발하려던 승객들은 항공사에서 다음 편 항공기에 대한 대기번호를 자동으로 지정해주거나 우선권을 부여해 문자로 안내해줬다.

이 때문에 이들 항공사를 이용한 승객들은 운항재개 소식을 시내 숙소에서 머물면서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티웨이항공 등의 저가항공사들은 기존 23일부터 결항됐던 승객들에게 먼저 탑승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저가항공사들은 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탑승 예정이었던 모든 승객들을 자동 취소하고 제주국제공항에서 선착순으로 현장 발권을 시작했다. 당연 인터넷 발권은 불가능했고, 운임료 또한 저가항공사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비쌌다.

이러니 수많은 체류객들은 숙소를 잡거나 돌아가지 못하고 차디찬 공항의 바닥에 신문지나 종이박스를 깔고 누워 기다려야만 했다. 이 때문에 제주국제공항은 난민수용소를 방불케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저가항공사들의 위기관리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저가항공사들은 대형항공사들과는 달리 기존 노선 이외에 별도의 추가 항공기를 투입할 여력이 부족하다.

제주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운항 중이거나 대기 중인 항공기를 제주로 불러 들여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고 하는 것이 해명이라면 해명이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25일 관계기관 회의를 열어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며 "선착순 밤샘대기를 조장하고 있는 현행 실태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희룡 지사는 국토부에 건의한다고 했지만, 이 문제가 쉬이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정부 차원에서 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해결책은 추가 증편을 위해 저가항공사가 자발적으로 일부 노선을 변경해서라도 체류객들을 실어 나를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그럴려면 법적인 강제조항으로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시장경쟁에 맡기고 자율적 권고사항에 그치게 될 경우,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음이 자명하다.

이번 사태를 빌미로 저가항공사들의 개선의지가 도출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나,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말, 김포에서 부산으로 가기 위해 에어부산을 이용하려던 서 모(36,여) 씨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항공기가 취소되자 오후 10시께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야했다. 서 씨는 집에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이처럼 100여 명도 안 되는 대기승객들도 제 시간에 처리하지 못하는 저가항공사들의 실태를 보면 이번 사태에서뿐만 아니라 항공기 결항 때마다 늘 이래왔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형항공사들에 비해 위기관리 대응 메뉴얼이 부족한 건 명백하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저가항공사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봐서는 해결될 수 없다. 의무적 조항의 법 개정과 한국공항공사 측에서 적극적인 메뉴얼 개발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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