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 ⓒ뉴스제주
내가 젊었을 때 일본에 간 기회에 이모님 댁에 들렸더니 이모님이 반가워하시면서 여러 가지 고향 소식, 친정 소식을 물으셨다. 일본 식민지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해방이 된 후에도 한 번도 고향을 다녀가지 못한 이모님 머리속에는 일본으로 떠나던 시절의 고향밖에는 연상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말씀드리는 고향 제주의 발전된 모습은 전혀 떠올리지 못하신 채 "이제도 통시에 도새기 키웜샤?(아직도 변소에 돼지 키우느냐?)" 하고 물었고 "지금은 여기 일본과 마찬가지로 모두 수세식 변소우다.(변소입니다.)" 하고 대답해 드리면 눈을 크게 뜨고 "정말 촌에도 수세식 변소가?(변소이냐?)" 하며 놀라곤 하셨다.
 

밤이 깊어 같이 앉아 얘기나누던 가족들이 각자 제 방으로 가 버리자 이모님은 "조카에게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고 싶은데...." 하며 운을 떼셨다.
"작은 아들 놈이 연애를 한다는데, 알고 보니 색시가 자기 형수 동생이 아니냐? 이 일을 어떵허민(어떡하면) 좋으냐? 내가 안된다고 적극 반대했더니 아들놈이 고민하는 모양이다." 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보니 이런 경우를 나도 듣도 보도 못했던 경우였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형이 돌아가시면 동생이 형수를 데려다 사는 경우도 있었고, 상처하면 처제와 다시 결혼해 살았던 풍속이 있음이 떠올랐다.
형수의 동생이라면 사돈지간일 뿐이지 혈연관계는 전혀 없고, 도덕적으로도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어 이모님께 결혼을 허락하시도록 말씀드렸다.
 

이미 큰 며느리를 데려왔으니 사돈지간인데 작은 며느리까지 데려 오면 겹사돈이 되는 것이고, 며느리들도 친자매가 시집와서 동서가 되는 것뿐이이므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적극 추천했다.
다음 날 아침 밥상에 앉은 작은 이들이 "한국에서 형님이 안 오셨으면, 나 결혼 못할 뻔했습니다. 형님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들은 결혼하여 형제가 나란히 집을 지어 울타리도 없이 오가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한참 후에 다시 방문할 기회게 사는 곳을 찾아가 보니 '이모가 끝까지 결혼을 반대했으면 어찌 되었을꼬?'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봤다.
요즘 우리 나라에서는 동성동본도 결혼하는 세상인데 겹사돈쯤이야 아므 문제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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