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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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후배이고 향우회 같은 회원이며 같은 친목회 회원인 K 사장이 전화를 걸어와 부탁 하나를 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내 친족 동생이 소유하고 있는 소나무밭을 빌려달라는 것이다. 자기 사촌 동생이 임시로 물건을 쌓아두고 싶어 하는데 놀고 있는 땅이니 사용료 받지 말고 그냥 빌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지였다.

내 소유도 아니었고, 내가 관리하고 있는 부동산도 아니어서 울의 동생에게 물어봐야 가부결정할 문제였다. 사실 K 사장도 토지 소유주인 내 친족 동생 나를 믿고 부탁했으니 성사될 수 있도록 교섭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서울로 전화하여 "K 사장 사촌동생이 임시로 물건을 쌓아들 모양이니, 소나무 밭 이므로 그냥 빌려 주자.“ 하고 제의했다.

그는 형님 알앙(알아서)헙써.( 하세요)“ 하고 선선히 쉽게 대답했다. 나는 K사장에게 ”임시로 사용하는 거니깐 나는 K 사장 사촌동생이 어떤 사람인지 얼굴 한 번 본 일이 없었지만 K 사장을 믿고 쾌히 교섭해준 것이다.

그게 2001년도의 이이다. 한참 시일이 지난 후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문에 “그 밭에 큰공사를 하고 있던데, 그 사람인지 알고 빌려줘신가?(빌려줬을러냐?) 나중에 골치 아플거여..... 하고 걱정하는 소리가 내 귀에 전해졌다.

은근히 걱정이 된 내가 현장을 가 보았더니 어머어마한 야외 수석 전시쟝을 거의 조성했고, 누가 봐도 임시로 사용하는 땅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K 사장에게 달려가 “당초 이야기한 것과 다르지 않은가? 즉각 공사를 중단하고 떠나도록 하게.” 하고 종용했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게 상당한 공사가 진행되어 난처하게 되고 말았다.

“3년간만 사용하고 떠나겠으니 양해해 주십시오.” 하는 간청에 못 이겨 2002년9월에야 3년간 임대해 주기로 하고 K 사장이 연대보증인이 되어 무상 임대차 계약서를 만들었다. 나는 어서 빨리 3년이 지나가기를 초조하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직당국에서 토지 소유자에게 출두명령이 떨어졌다. 이유는 무단으로 소나무를 벌채했다는 죄목이었다. 임대차계약서에는 밭에 있는 소나무 한 그루도 건드리지 않고, 기타 어떠한 시설도 하지 않기로 명시되어 있었지만 하나도 지켜지지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는 토지 소유자가 유명인사이므로 자기 자신이 함부로 소나무를 건드리지 못하니까, 밭을 무상으로 빌려주고 지인을 통 그로 하여금 골치아픈 소나무를 끊어내도록 사주했다는 모략까지 등장했다.

갈수록 골치아픈 일이 터지고 있는데, 어느덧 3년 기한이 되었다. 3년 기한이 되었으니 떠나라고 말해도 임차인은 “날 죽이시오. 이 어마어마한 시설을 어떵하곡(어떻게 하고) 이제 어디로 가란 말이우꽈?(말입니다까?)” 하며 배째라는 식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 임대차계약서라도 갱신해야 될 게 아니냐 했더니, 이번에는 K 사장이 “한 번 보증 서 주면 됐지, 두 번씩은 못 섭니다.” 하고 연대보증을 서 주지 않겠다고 버텼다.

이 계약이 새로운 계약이 아니고, 처음 것을 연장하는 것인데도....사촌동생을 위해 밭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던 사람이 누군데, 내가 자진해서 빌려가라고 했던가?

이해할 수 없는 태도였다. 할 수 없이 계약기간 만료되었으니 떠나달라는 내용 증명을 두 분에게 보냈는데, K 사장은 수취거절로 되돌려 보냈다. 정말 한심했다. 고향 향우회원이고, 같은 친목회 회원이어서, K 사장의 인격을 믿고 얼굴 한 번 본 일 없는 그의 사촌동생에게 선심을 베풀었는데, 이제 와서 수취거절이라니....선배인 나에게 찾아와 사정해도 시원치 않을 터인데, 말 한 마디 없이 수취거절로 처리하는 그의 태도가 괘씸했다. 『수취거절』이 법적으로 이떤 효과가 있느지 나는 모르고 있었으니.....

나중에 골치아플 거라던 소문이 현실로 닥치고 말았고, 내 맘같이 믿고 도와주려던 내 생각이 서글퍼졌다.

내가 저지른 일이어서 밭 소유자인 동생에게 아무 소리도 못하고 고민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제주시에서 도시계획에 의해 밭 절반이 도로에 편입되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제 내가 걱정 안해도 자동적으로 떠나게 되겠구나 생가하니 춤출 듯이 기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임차인은 제주시로부터 철거 보상비 명목으로 몇 억을 받고 떠났다고 한다. 밭 임자가 받은 토지 보상비보다도 더 많이 받았으니 세상은 요지경이다.

10년 동안 공짜로 사용하던 밭을 떠나면서, 밭을 원상회복시켜 주지도 않았고, 임차인이나 K 사장으로부터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 한 마디가 없었다. 이런 철면피가 어디 있는가.....내 맘같이 믿고 도와주려던 나만 바보였고 정말 어이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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