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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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북초등학교를 1949년 7월 18일, 제39회로 졸업했으니 올해(2012년)는 졸업 63년째가 되는 해이다.(당시는 미 군정하여서 학제의 시작이 9월기 때문에 7월에 졸업하게 됨.)
또한 제북교 총동창회 회장직을 맡아 제북교 개교 90년(1997년) 기념행사 때 졸업 60주년 이상된 선배님들을 학교로 초대하여 축하하고 기념품을 드린 바도 있다.
그런데 정작 내 졸업동기인 39회 동창회는 이 핑계 저 핑계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우리 39회는 1.2,3반은 남자, 4,5반은 여자였는데, 처음 39회 동창회를 구성하고 책임졌던 분이 제주도를 떠나 살게 되면서 재건되지 못하고 말았다.
그 대신 6학년 3반인 우리반은 80여 명이 한 반에서 배웠고, 5학년 때는 박광훈 선생님, 6학년 때는 김종철 선생님이 맡아 잘 이끌어 주신 덕택인지 단결이 잘 되어 반창회를 잘 끌어온지 오래됐다. 해마다 5월 달에는 사은회를 열어 은사님을 모시고 회식을 했으며 기념품도 드렸다. 심지어 김종철 선생님 회갑때는 서울에 살고 있는 동창들이 선생님 내외를 초청하여 축하연을 베풀어 드렸고 수안보 온천여행도 보내 드렸다. 제주에 살고 있는 동문들은 서울행사되에 선생님 내외를 모시고 축하행사를 했다.
이렇게 잘 운영되던 우리 반창회가 그 동안 총무를 맡아오던 〇 동문이 급서하고 보니 얼마 안되는 기금도 없어져 버렸고, 회장이나 총무직을 맡아 봉사하겠다는 동문도 더 이상 나서지 않아 해산할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어려서 같이 동문수학하던 벗들이 그 동안 잘 유지되던 반창회를 회갑이 넘은 이 나이에 해산시켜 버리지는 것에 슬픔을 느낀 나는 반창회를 재건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비장한 각오로 동문들에게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들이 그 동안 모아둔 기금이 없어진 것에 환멸을 느낀 것도 이해되고, 늘그막에 회장이나 총무직을 맡을 자신도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나이 60세가 넘었습니다. 늙어갈수록 벗이 그리워지는 법인데, 지금까지 잘 모이던 벗들과 헤어져 어떻게 외로움을 감당하렵니다? 그래서 제가 새로운 제안을 하겠습니다. 총동창회장을 역임한 저이지만 이제 우리 반창회가 없어지는 날까지 만년 총무를 맡겠습니다. 그 대신 회장과 감사는 서로 돌아가면서 한 번 씩 맡아 주면, 실무는 총무인 제가 다 맡아 처리하겠습니다.”
나의 제안에 모든 동문들이 박수로 동의해 주었다. 그 뒤로 내가 만년총무를 맡은지 20년이 되어 가고 있다. 아직도 제주도에 거주하는 20여 명 동문들이 지금까지 친목을 잘 유지하고 있다. 아직도 제주도에 거주하는 20여 명 동문들이 지금까지 친목을 잘 유지하고 있다. 회원 1인당 1년에 10만원 회비를 받고, 회원 댁에 경조사가 있을 때 20만원(본인 사망시 30만원)을 부조한다. 그리고 정초에 정기총회 겸 신년하례회, 5월에 사은회, 7월 하순에 해수욕장, 년말에 송년회 등 1년이면 네 번의 정기모임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2009년도에 졸업 60주년 기념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 후로 벌써 4명이 동문이 세상을 떴으니, 10년 이내에 대부분 세상을 떠날 것 같다.
기금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던 우리 반창회가 위와 같이 1년에 4회 회식하고 경조사를 돌아보았음에도 지금 (2012년 말 현재)300여 만원이나 자금이 남아있다. 그 전에는 항상 기금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쳤으니, 도대체 회계처리가 어떻게 되었던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고 모든 동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모든 옴임의 회계처리는 크건 작건 믿음이 갈 수 있도록 투명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내가 죽는 날까지 총무직은 벗지 못할 것 같고, 우리 반창회는 계속 화기애애하헤 유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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