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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서부보건소 박은희

  기습 한파가 반짝 지나갔던 어느 날, 한라수목원으로 운동 겸 산책하러 갔다가 오랜만에 만끽하는 시원스러운 공기 속에서 커피를 홀짝거리는 무심결에 시선을 잡아끄는 나무를 보았다. 어쩌면 그 나무는 알몸이었기에 누구나 겨울나무라는 선입견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나무였다.
  불현듯 커피의 달달함이 쓴맛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이상야릇한 입김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지독했던 한파를 견뎌냈을까 하는 궁금증이 속으로부터 치밀어 올라왔고, 그것은 머릿속으로까지 번져 오르고 있었다. 진정 두 눈 뜨고도 볼 수 없는 그 뿌리는 온전했을까?
  나무는 봄에서 가을까지, 나무로서의 한 해의 생을 다하며 견디다가 자신이 피워 올렸던 것마저 스스로 철저하게 비움의 철학을 실천해 왔을 것이다. 그 비움에서 우리 인간들은 단순히 자연의 순리겠지 하는, 자칫 안일한 풍경으로 대해왔을 거라는 생각이 뇌리 속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이제는 저잣거리에서 안줏거리로도 통용되지 않는 이 오름 아래의 사회적 문제들이 잠시 교차되는 것을 느꼈다. 잊을 만하면 신문의 사회면을 도배하다시피 하는 얼룩진 비리와 그 끝없는 탐욕의 모습들이 그것일 것이다. 알 수 없는 것은, 작은 미담기사에는 눈가가 촉촉해지다가도 그런 기사들을 대할 때면 분노조차 아깝다는 내성(?)이 생겨버린 지 오래된 것 같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곳에 서 있는 겨울나무는 말이 없었다. 
  100세 시대지만 인생은 짧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순간의 그릇된 욕심의 끝이 확연히 보이는 듯했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그 뒷모습들이 남기고 가는 것은 무엇일까? 그 자신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순간일까? 손사래를 치듯 찬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거린다.
  힘들고 각박해진 사회 속에서 비우고 채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끝없이 매순간 자문해보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주변에는 착하고 좋은 욕심이 필요한 것이 더 많을 것이다. 바로 믿음이다.
  어쩌면 온갖 비리는 물질만능주의 시대가 낳은 재앙이지만, 인간다움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래도 조금씩 비우는 것이고, 또 조금씩 채워가는 행위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자, 이제 하산이다. 겨울나무에게 돋아날 새롭고 상큼한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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