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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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일이다. 지방자치제도가 활성화되어 도지사 선거 열풍이 후끈 달아오른 때였다.
우리 집안 친족회 이사회가 열리고 있는 자리에 도지사 선거에 입후보한 모 후보가 나타났다. 모임에 왔으니 인사할 기회를 드렸고, 그도 우리 친족회원들과 이무럽게 인사므로써 한 표라도 더 얻으려 마음먹은 모양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이무럽게 말과 행동을 하여 외려 좌중을 어색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인사차 일어선 그는 다정하게 제주도 사투리로 말을 시작했다.
“나도 현씨 친족회에 와서 이야기할 자력이 있다고 생각햄수다.(생각합니다.) 우리 아방(아버지)은 각시를 셋이나 얻었는데, 큰 각시는 현 씨이고 나는 두 번째 각시 몸에서 낳았으나 호적에 올리기는 큰 어멍(어머니)아래로 올렸으니, 내 외가는 현 씨가 맞지 않수과?(않습니까?) 외손 도와주는 셈 치고 한 표 찍어주실 거지, 예?”
본인은 우리들과 거리감을 없애고자 다정다감하게 이야기하느라 제주도 사투리까지 동원하면서 이야기를 했지만, 듣고 있는 우리로서는 도지사 후보의 자질과 인격이 의심스럽다고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본인 부친이 아내를 셋이나 두었다는 내용도 자신의 입으로 발설하기에 적합하지 않았지만, 『아방』이니 『어멍』이니 하는 사투리 표현도 예의를 갖추어 정확하게 사용했다고 볼 수가 없다.
분명 제주도 사투리로 아버지를 아방, 어머니를 어멍이라 표현하지만, 자식이 부모를 두고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하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사용하는 것이 올바르다.
“느네 아방, 어디 가시?(너의 아버지는 어디에 갔느냐?)” 간혹 친구들끼리 거리낌없이 대화를 나눌 때, 『우리 아방』 『우리 어멍』이라고 하지만, 이 경우도 존경하는 뜻을 담은 게 아니라, 『우리집 노친네』라는 투의 저급한 표현에 가깝게 사용할 때 주로 쓴다. 가끔 어린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어른들이
“느네 아방, 누게고?(너의 아버지가 누구냐? - 너는 어느 집의 아이냐?)” 하고 꾸짖을 때 사용하니, 좋은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이런 언어를 격식을 갖춘 모임의 인사말로 함부로 구사했으니, 표를 찍어 주려다가도 정내미가 떨어져버려 안 찍게 된다.
격에 어울리지 않는 말은 가급적 조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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