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내가 어린시절 제주에는 아름다운 관습이 참으로 많이 있었다. 법으로 정해 규제하지도 않았고 누가 명령으로 지키도록 강요하지도 않았지만 주민들은 스스로 알아서 질서를 잘 지켰다.
새 봄이 들어 촐왓을 에워야(울타리를 정비해야)할 때는 집에서 대나무를 한 뭇쯤 잘라 갖고 올라갔다. 촐왔 밭담을 정비한 다음에 밭 중간중간에 대나무를 꽂아 놓으면 소나 말을 들여보내서는 안된다는 표시로 모두가 알아차렸다
경작지에도 이따금 대나무가 꽂아져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밭에 씨가 뿌려져 있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더라도 새싹이 돋아나고 있으니 소나 말을 들여보내서는 안된다는 뜻이었다.
밭에 대나무가 꽂아져 있으면 의당 주민들은 그 밭에 자기 소나 말을 들여보내지 않아 잘 지켜주었다.
예전에는 주로 방목을 했던지라 봄이 되어 한라산에 올려놓은 소나 말이 잘있나 하고 한 달에 두 번 정도 돌보러 올라가곤 했다. 마침 소나기가 쏟아져 몸을 적시게 되면 의례 궤(언덕바위 밑)을 찾아들었다. 언제나 궤 속에는 마른 삭다리(썩은 나뭇가지)가 소복히 쌓여 있어 쉽게 불을 피우고 옷을 말리며 추위를 모면할 수 있게 했다.
비가 멈추고 궤 속을 나와 떠날 때는 반드시 삭다리를 주워다가 다시 쌓아놓고 떠나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있엇다. 비를 피해 누군가가 다시 이 곳을 찾을 대 쉽게 불을 피워 몸을 녹일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인 것이다.
제주의 부녀자들은 항상 몸조심하곤 했다. 아침 새벽에 남의 집에 찾아가는 것, 특히 새철드는 날(입춘일)은 남의 집 방문을 삼가곤 했다. 부녀자들이 허벅(물동이)지고 물 뜨러 구릉으로(연못으로)가는 것도 가급적 아침은 피했고, 주로 오후에 물 길러 가곤 했다. 왜냐하면 새벽에 빈 허벅(물동이)지고 가는 것을 보면 그 날은 재수없다고 여기는 풍속이 있었으므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이었고, 이는 누가 그렇게 지켜야 한다고 강요한 것도 아니건만 잘 지켜졌다.
남의 집을 방문해서 올레에 솟(금줄)이 매어져 있으면 그 집에 맹감(무당 모시는 행사)이 있게 된다는 뜻이므로 아무도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 집의 정성에 동참하는 뜻에서 이웃 모두가 정성을 들이는 셈이다.
마을제가 있을 때에도 동네 입구마다 솟(금줄)을 매어 몸 버린(몸이 부정한)왼 동네(타 마을)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는데 모두가 이를 잘 지켜 주었다.
이런한 미풍양속을 일일이 법으로 규제하고 백성에게 지키라고 강요한다면 얼마나 삭막한 세상이 될 것인가. 명령이나 강요 없이도 잘 지켜지는 풍습과 제조가 아름다운 불문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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