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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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이름은 절대 중요한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부모들은 좋은 이름을 지어주기 위하여 유명한 작명가를 찾아가곤 한다. 이름은 한 번 붙여지면 그 사람이 죽을때까지 쓰이게 마련이므로 함부로 붙여질 일이 아니다.
내가 초등하교 입학했을 때는 일본 식미지 시대였으므로 모두가 창씨개명 하였고 또한 일본말로 발음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고부터 모두 우리말로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우리 나라가 해방되면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 박사 등 유명인사의 이름이 매일같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가 38도선으로 남북분단은 되었지만 아직 좌우대립이 심하지 않던 때였다.
초등학교 우리반 친구 가운데 이성만(이승만으로 주로 불렸음.), 김일서, 박헌영 등 3명이 독립운동 했던 분들과 이름이 같아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사상적으로 좌우대립이 심해지고 정치적으로 투쟁이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이성만은 이승만이라고 놀려도 이름이 같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심드렁했으나, 김일성과 박헌영은 이름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 시작했다. 특히 남북이 각각 정부수립을 하고 보니 이승만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김일성은 북조선의 수상, 박헌영은 북조선 부수상 겸 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결국 우리반 친구 김일성과 박헌영은 다른 이름으로 개명하였지만, 친구들은 개명한 새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고 여전히 옛날 이름으로 불러버려 본인들은 애먹었다.
한번 붙여진 이름의 흔적을 없앤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면서 어버이들이 아기 이름 짓는 것에 정성을 들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는 내 이름 갖고 별 말이 없었으나, 중년 이후부터는 농담을 걸어오는 분들이 많아졌다. 현임종이라는 내 이름을 이용하여 ‘언제 임종합니까?’ 또는 ‘아직도 임종하지 않고 살아계십니까?’ 하는 등 농담을 걸어올 때가 많다.
아닌게 아니라 나는 내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사람인 것 같다. 시골(노형)에 어머니가 노환으로 누워 계실 때, 누님들이 번갈아 병상을 지켜주어 우리 내외는 마음놓고 직장에 다닐 수 있어 그나마 좀 편히 지낼 수 있었다.
하루는 우리 내외가 시골로 가서 어머니 병상을 지키기로 하고, 그 동안 고생하신 누님들에게 잠시 휴식을 취하시라고 집으로 보내드렸다. 그런데 마침 그때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고, 그 동안 매일같이 병상을 지키셨던 누님들은 어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했지만, 나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적에도 나와 같이 주무시다 돌아가셔서 내가 임종을 지켰다. 그 뿐 아니라, 장모님조차도 병상을 내내 지키던 아내가 잠시 내게 장모님을 부탁하고 성당에 새벽미사를 간 사이에 돌아가시어 결국 내가 임종을 지켰다.
그 외에도 내 주변에 돌아가신 분 가운데에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내가 그 분의 마지막 임종을 지켰던 일이 여러번 있었다. 내가 신성여중과 제주미국공보원에서 모시던 홍완표 선생님이 그랬고, 제주도청 국장을 역임한 현창숙 씨, 그리고 송승옥 선배, 최근에는 제주북초등하교장을 지낸 김택성 선생님 입원실에 병문안 갔다가 임종을 맞았으니, 나는 친한 분이 돌아가실 떼에는 임종을 지키게 되는 모양이다.
이 세상에서 친하게 지내던 분의 마지막을 임종하게 된 내 운명은 내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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