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온 이욱정을 만나 한식, 제주 음식의 미래를 물었다.

'음식영화축제'로 제주에 온 이욱정 피디를 만났다. 그는 KBS에 입사해 프로듀서로 일하며, '언젠가 음식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 마음 먹었다고 한다. 때를 기다리며 '추적60분'에서 음식을 고발했다고. 그런 식으로 꾸준히 요리, 음식과 연관된 작업을 해 왔다고 한다.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는 대중적으로도 가장 잘 알려진 그의 대표작이자, 요리 다큐멘터리다. 이러한 것들을 만들다 파리 '르 코르동 블루' 요리학교에 가 수학하기도 했다. 그 외 <요리인류 키친> <요리人류>를 만들었다. 오는 9월이면 <요리人류> 두 번째 시즌 방송이 시작된다. 

  

▲ 이욱정 피디가 지난 5일 제주에 내려와 '음식영화축제'에서 요리와 음식을 주제로 한 강연을 했다. ⓒ뉴스제주

△ 제주 '푸드 앤 와인 페스티벌'에도 참여했었지 않나. 
: 일부 참여한 부분도 있지만, 방송 제작으로 왔었다. 

△ 그때도 느꼈겠지만, 제주도 역시 제주만의 식재료와 음식을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 모든 지자체의 고민이다. 새롭게 발굴하고 해석하는 작업들이다. 물론, '제주만의 것'을 따지기 시작하면 해석의 논란이 될 부분은 많다. 전국 어디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식재료를 알리는 일은 의미 있는 작업이란 생각이 든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바른 먹거리, 음식을 새롭게 보려는 시각이 있다.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의 재발견이다. 그러니 지금 제주도에서의 이런 움직임들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 제주도는 제주 식재료도 있지만, 그보단 '향토음식'이란 접근법이 앞선다. 
: 식재료나 향토음식이나 같은 범주다.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인데, 식재료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지역 레시피인 것이다. 그 지역에서 전래되어 오는 조리법, 지식이자 기억이다. 그런 면에서 지역 식재료와 레시피를 연결하는 움직임은 보편적인 거다. 다만,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조리법이란 건 끊임없이 변하지 않나. 외래 것이 들어와 토착화하고, 기존 것이 사라지기도 하고, 새롭게 들어온 것과 융합하기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음식의 진화다.

전통적인 제주 음식이란 건 길어야 100년일 수 있다. 변화를 거쳐 왔을테니까. 그런 면에서 제주는 향토음식을 정의할 때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할 거 같다. 예를 들어, 푸드 앤 와인 페스티벌의 경우에도 ‘이게 무슨 향토음식이냐’ 하는 시선을 가질 수 있을 거다.

당시에 하와이 셰프들이 많이 참여했었다. 하와이와 제주는 섬이고, 유사한 환경이다. 그래서인지 그때 만난 셰프들은 제주와 비슷한 딜레마를 갖고 있었다. 식재료에 대한 외부 의존도가 높았다. 또, 그들 원주민은 조리법이 발달할 여건이 아니어서 다양한 메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토양에서 젊은 셰프들이 지역 식재료에 관심을 갖고 다른 형태 조리법을 만들었다. 새로운 해석을 곁들이는 것이다. ‘퍼시픽 림 퀴진’이라고 한다. 원주민의 레서피를 복원하되, 답습이 아닌 영감을 얻는 것이다. 여러 조리법과 아이디어가 하와이 식재료가 만나는 운동이다. 

△ 향토음식 범주에 대한 고민과 같다.
: 제주도가 배울 게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토 요리를 너무 좁게 생각하면 안된다. 하와이도 원주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탕수수 농장 때문에 중국, 일본, 한국 등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건너갔다. 오늘날 하와이 인구 구성은 원주민보다는 외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다. 무지개 구성 아니겠나. 제주도도 외지인이 많다. 외지에서 온 이들이 오래 지내다 제주 사람이 되는 거다. 그러면 그들 스타일이 새로운 형태인 제주 요리가 되는 거다. 그것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좀 더 본격화될 것이라고도 보고 있다. 그러니 그것을 다 제주 것으로 만드는 포용력,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곧 잠재력이 될 거다. 

▲ 그가 보여준 영상은 <누들로드>에서도 볼 수 있는 '빵'과 '국수'에 대한 내용이다. 서양의 건식 재료 '밀'과 동양 습식 요리가 만난 것이 '국수'다. 그는 국수야말로 인류 최초 퓨전 음식이라고 했다. ⓒ뉴스제주

△ 식문화를 보존하려는 것은 식문화와 동시에 존재했던 걸까.
: 언제든 보존은 필요했다. 전세계적으로 마찬가지고. 지금 영어가 공용어처럼 됐는데, 세계 어딜 가도 맥도널드가 있다. 음식이 미국 음식으로 동질화되고 있다. 청소년들은 이것에 매혹되어 있고. 할머니가 만들어 준 것은 잘 먹지 않는 거다. 안먹게 되면 어떻게 되나. 찾지 않게 된다. 그럼 그것은 사라진다. 문제는 조리법이 실종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조리법이 들어가는 문화적 기억, 지식체계가 사라진다. 언어가 사라지는 것만큼 큰 문제다. 그것의 보존 필요성과 움직임은 늘 필요했다. 

다만, 머무르다 보면 방어적으로 되기 십상이다. 수세적이 되지. 외부의 것은 안된다는 것, 향토적인 것 안에만 갇혀 있으면 안된다. 비현실적인 발상이다. 

△ 사람, 환경보다 입맛이 변하는 것 또한 쟁점일 거다.
: 제주도나 강원도나 마찬가지다. 먹는 건 끼니, 생존의 문제였다.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영양분과 열량을 얻기 위한 것이 요리의 목적이었다. 조리법은 다양하지 않고 맛은 중요하지 않았을 거다. 재료도 한정적이었을 테니까. 배부르고 힘을 얻는 것만이 주 목적이었을 것이다. 맛에 대해 생각하는 계층은 경주나 전주, 안동처럼 권력층이 살던 곳에서 존재했다. 백성의 식탁은 다양하지 않았다. 지금 향토 요리라고 하는 것을 너무 좁게 해석할 필요가 없다. 

△ 지금 국내 식문화에 '스타 셰프' '먹방'이라 하는 것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트렌드 전후는 어떻게 다를까.
: 변화가 있을 거다. 우선 셰프 열풍이 갖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음식이란 것을 하나의 문화, 당당하게 인정받았다. 셰프의 사회적 지위도 올라갔다. 요리하는 행위가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도 그랬겠지. 멋지고 거룩하지 않았었다. 이것이 이젠 우아하고 근사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이것만해도 큰 변화다. 알고 보면, 유럽에서도 불과 40~50년 전에서야 셰프란 용어가 나오고 티비에 등장했다. 영향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아쉬운 지점도 있을 거다. 
: 접하기에 예능 위주로 흘러가는 정도. 사람들이 지겹다고도 한다. 그래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국내 요리와 셰프 열풍이 한때의 것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간 선진국에서는 요리라는 것이 삶에 중요한 일부다. 콘텐츠의 중요한 일부기도 하고. 티비, 책, SNS 등만 봐도 그렇지 않나. 한식세계화를 말하는데, 단순히 테크닉이나 조리법만은 아닐 거다. 그것은 음식에 대한 생각이어야 한다. 말, 콘텐츠, 태도에 대한 문제다. 과연 우리는 음식을 문화의 일부로, 얼만큼 받아들일 건가.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난 이것이 시작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 그래서 ‘식문화(食文化)’ 아닌가. 
: 한식을 세계화하는 것에 ‘제대로 만들어진 한국 요리책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가’도 중요하다. 해외에선 서점에 가 요리책을 둘러보는데, 영어로 된 한국 요리책은 보기 힘들다. 찾아도 보잘 것 없다. 반면, 인도나 일본, 태국 요리책은 수준이 월등히 높다. 이렇게 비유할 수 있을 거다. 기가막힌 자연 환경을 가진 나라가 있다. 그런데 그 멋진 곳을 누구도 그리지 않고, 어떤 문학에서도 표현하지 않고 풍경만 있다고 하자. 그럼 그곳은 문화적으론 선진국이 아니다. 그 풍경을 보잘 것 없지만 위대한 문학으로 포현하고, 전세계가 공감할 만한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곳이 선진국이다. 한국 식재료가 풍요롭고 맛있는 음식과 조리법이 있다한들, 그것을 문화 콘텐츠로 만들 능력이 없다면 뒤쳐진 거다. 그것은 세계화가 아니다.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제주 음식에 대해 문화가 되는 음식, 이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게 중요해 보인다.

▲ "우리는 요리한다, 그러므로 인간이다", 그가 오늘 '음식영화축제'를 통해 발표한 내용의 핵심이다. ⓒ뉴스제주

이날 강연에서 이욱정 피디는 ‘인류의 식문화는 큰 나무’라고 했다. 하나의 뿌리로 다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밥상도 다 연결된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요리는 인류의 삶과도 밀접하다. 음식이 가진 속성은 물건에도 적용된다. 음식은 보존성이 좋고, 조리가 빠르고, 빵처럼 유목민이 휴대하기 좋은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투박한 커다란 전화기가 아이폰이 되기까지 역시 같은 수순을 거치지 않았던가. '자기 자신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 나 자신을 국한해서는 안된다는 삶의 지혜도 요리가 주는 가르침이다. 그의 말처럼 모든 게 꽉 막혀 있을 때는 손을 써보자. 도자기를 빚든, 요리를 하거나 빵을 만들거나. 손을 사용하면 아이디어가 생긴다고 한다. 먹어보지 않은 음식은 느끼기 어려우나, 요리를 통해 배운 이욱정 피디의 이야기가 진지하게 와닿는다. *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