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대표하는 원로산악인 안흥찬 산악인 강의

한라산국립공원 관음사지구지소에는 산악박물관이 있다. 21일 오후, 이곳에서 원로 산악인 초청 강의가 있었다. 올해 86세를 맞은 안흥찬 산악인. 그는 제주 산악계 산 증인으로 1961년 제주 적십자 산악안전대를 창립했고, '대한산악연맹을 빛낸 50인'에 선정된 이다. 몇 년 전 구강암을 앓고, 거동이 편치 않았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과거 산악 이야길 들려 줬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당시의 한라산은 하늘에 가까운, 좋지만 어려운 곳이었다. 

 

▲ 안흥찬 산악인은 한라산 조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제주적십자 산악안전대를 창립했다. ⓒ뉴스제주

# 신들의 영역, 한라산에는 길이 없었다. 

산악인 안흥찬이 산을 오른 이야기를 따라가려면 그의 중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열 네살, 이듬해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이다. 당시 제주 공립농업학교에 다니던 그는 한라산에 처음 등반한다. 당시 학생들은 1년에 한 번 등산을 하는 것이 행사였다. 그는 전교생 500명이 한라산에 올라 보는 풍경은 참 근사했다고 소회한다. 그 이듬 해에는 전쟁이 발발, 일본군이 한라산에 주둔했다. 해방 이후 4.3 사건, 한국 전쟁까지 한라산은 통제됐다. 

이후 군대에 입대하고 1957년까지 복무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니, 갈 곳이 없었다. 그때는 아르바이트랄 것도 없었던 시절, 갈 곳은 한라산 뿐이었다. 일 년 차로 군대를 제대한 친구와 함께 한라산을 찾았다. 표현하기를, "마치 직장에 가듯, 한라산을 다녔다"고 했다. 

“당시는 한국전쟁 이후 전국적으로 무전여행이 유행했다. 많은 대학생이 무전여행을 와 한라산에 올랐다.” 그러나 당시 한라산은 등산로, 표지판조차 없었다. 그러면서 많은 조난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1961년에는 서울대 법대 산악부 11명이 동사하는 큰 사고가 있었다. 크고작은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그는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한라산에는 산악구조대가 필요했다. 그래서 동료들과 뜻을 모아 산악적십자 안전대(산악안전대)를 결성했다. 그리고 이들과 등산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나무를 찍어가며 올라갔다. 나무를 해치는 게 아니고 소생이 가능한 수준까지 표식을 만들었다. 길을 만들고 돌을 이용해 등산로를 표시했다. 기어가듯 올라갔다.” 한라산 안전 등반을 위해 기여한 산악적십자 안전대는 지금의 제주도 산악회 전신이라 할 수 있다. 

▲ 매일 직장을 가듯 한라산에 올랐다는 안흥찬 산악인은 안전한 등반을 위해 한라산 등산로를 개척했다. ⓒ뉴스제주

안흥찬 산악인은 철쭉제를 만들기도 했다. “5월이면 철쭉이 만개한다. 이것을 도민이 다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철쭉제에서는 ‘철쭉 진선미왕’을 뽑았고, 철쭉을 엮어 화관을 만들어 왕관으로 썼다. 그의 표현으로는, 철쭉제가 있는 날, 많은 사람들이 한라산에 올라 제주 시내가 텅 비었다고 한다. 

“첫 번째 철쭉제를 하던 날이다. 행사가 끝나가는 시점에 하늘이 캄캄해졌다. 한라산이 노했다고 생각했다.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전원 하산시킨 다음, 몇 명 남아 산신령에게 제를 올렸다. 허락을 구하지 못해 미안하다, 양해해달라고 빌었다.” 그날 이후 조난자가 없던 것은 참 신기한 일이라고 했다. 

안흥찬 산악인은 한라산 케이블카 반대 운동도 벌였다. “반대운동을 하기 위해 타 시도를 돌면서 케이블카 반대 운동을 펼쳤다. 케이블카는 절대 안되는 거였다. 철탑을 세우느라 한라산을 망칠테고, 세워진 철탑은 바람에 넘어지기 쉽다.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연설하던 게 지금도 생생하다.” 안흥찬 산악인은 지금도 기쁘게 새기는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한라산 케이블카 반대 운동을 벌인 것, 그리고 조난자 구조활동에 참여한 것. 

▲ 한라산 5월, 만개한 철쭉을 모두가 보면 좋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 '한라산 철쭉제'다. ⓒ뉴스제주

그에게 한라산은 어버이같은 존재다. 자연과 인간은 하나면서도 자연은 인간을 보호한다. 자연이 좋아서 등산하고 사랑한다면, 보호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란 말이 있다. 말처럼 어진 자가 산에 가는 게 아니다. 산을 즐기다보면 어진 이가 되는 거다. 우리는 산에서 받은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 평생을 한라산을 사랑하고, 한라산을 아끼는 사람들을 사랑한 안흥찬 산악인의 당부다.  

그가 설립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산악구조대인 제주산악안전대(대장 오경아)는 올해 창립55주년을 기념해 <산악안전대 SINCE1961>을 출간했다. 안흥찬 산악인은 이날, 역대 대장을 역임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패를 받았다. 그는 건강상 한라산을 등반하기 어려워지면서 그림으로 한라산에 오르고 있다. 그는 배운 적도 없건만, 많은 한라산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소싯적 산에 오르던 일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또, 산악 후배들에게 소린 높여 당부했다. "나이가 들어 산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즐거움을 느낄 취미를 하나 만들어라. 사진이건, 식물이건, 그림이건, 무엇이건 하나의 취미를 가져라."*

▲ 그는 후배 산악인에게 당부했다. 그림이건 사진이건 자신만의 취미를 찾으라고. 그러면 산에 오르지 못할 때가 돼도 즐거운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뉴스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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