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책>. 삼인출판사에서 출판한 첫 번째 시집이다. 삼인출판사는 기존 신춘문예 등단 방식에 문제를 제기, 문인들이 모여 새로운 방식으로 시인을 발굴하기로 뜻을 모은 곳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인들’이란 문학평론가 황현산, 시인 김혜순, 김정환이다. 그리고 3년 만에 시집 두 권을 출판했다. 유진목 <연애의 책>과 조인선 <시>다. 

삼인출판사는 그간 200여명이 보내온 200권 분량의 시를 꼼꼼히 살펴 왔다. 그중 가능성을 점쳐, 심사위원의 메모를 붙여 원고를 반송하고 다시 수정해 부쳐 온 시를 재심사하는 과정을 거친다. 

<연애의 책> 유진목을 만났다. 그녀의 시집 출간 및 등단은 좀 더 극적이었다. “전화가 왔다. 작년 8월 말이었다. <강릉 하슬라 블라디보스토크>를 원고로 받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간 쓴 시를 함께 보냈다. 그곳이 삼인출판사라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다.” 

<연애의 책>은 시인에게 두 번째 시집이다. 이전에 <강릉, 하슬라, 블라디보스토크>를 출판했었다. 정식 출판물 등록이 되지 않은, 500부 개인 출판이었다. 유진목은 그 시집이 있어 <연애의 책>을 낸 셈이고, 시인으로 정식 등단했다. <연애의 책>은 열흘 만에 2쇄를 찍었다. “<강릉 하슬라 블라디보스토크>는 500권을 다 판매하는데 5~6개월 걸렸다. 이번 책은 초판 1000부를 찍었다. 그래서 어림잡아 대략 1년 걸리겠구나 했다. 그런데 너무 빨리 2쇄를 찍어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시를 읽는 동안, 시인은 제주로 이사해 지내고 있었다. 가끔 서울에 가 낭독회와 같은 자리를 통해 독자를 만나면서 지냈다. 시집을 내고 한창 바빠야겠지만, 제주에서 조용히 시와 시나리오(그녀는 ‘목년사’를 세워, 영화를 만든다)를 쓰고 있는 유진목 시인을 만났다.

▲ 삼인 시집선에서 3년 만에 첫 시집 <연애의 책>을 출판했다. 시집이 나오기 전, 제주로 이사한 유진목 시인. ⓒ뉴스제주

△ 엄밀히는 두 번째 시집이다. 어떤가, 등단하기 전과 후는 많이 다른가. 
: 크게 다르다. 시인이란 타이틀이 있고 없고보다 글을 쓰는 의미가 달라졌다. 직업이 된 거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러다보니 청탁이 들어온다. 기한에 맞춰 글을 쓰고 내가 원고료를 받게 되는 일이 생겼다. 전에는 없던 일이다. 작년 <강릉 하슬라 블라디보스토크>가 나왔을 때와는 크게 다른 반응이다. 

시집이 나온 5월부터 변화가 생긴 셈이다. 마감이란 게 생겼지만, 지금까지는 즐겁게 하고 있다. 기한에 맞춰 글을 쓴다는 게 조금 힘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요청이 많지도 않기 때문에 아직 괜찮다. 다만, 시를 쓰는 게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아 힘들다. 그동안은 갑자기 ‘이것 쓰고 싶다’고 할 때야 쓰곤 했으니까. 

△ 서평은 찾아 읽어 보나. 
: 찾아 볼 때도 있지만, 읽지는 않는다. 서평을 읽기가 두렵다. 

△ 황인찬 시인이 ‘절제된 유머’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 출판사에서 쓴 보도자료에 들어 있는 내용일 거다. 반가운 표현이다. 난 농담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SNS 하는 것도 좋아한다. 물론 SNS와 시를 쓰는 마음은 다르지만, 시에서 그것이 느껴졌다면 반가운 일이다. 난 시가 슬프거나 몹시 애절하거나 하는 쪽으로 치우치고 싶지 않았다. 

△ 이 시집에는 16년 간 쓴 시들이 들어 있다고 했다.  
: 스무살부터 시를 썼다. 한동안 안 쓴 적도 있다. 영화 일을 할 때는 바빠 쓸 수가 없다. 나는 막상 시집을 내고 많은 이들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본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서울에서 지낼 때도 그랬다. 시집을 내면서 해설을 써 준 선생님과 차후에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그분이 유난히 좋았다던 시 몇 편을 언급했다. 그 시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20대 초반에 쓴 시였다. 그때 느꼈다. 시를 쓴 시점에 따라 어떻게든 구분이 되는구나. 시집에 시를 배치할 때 최근작을 앞쪽, 뒷쪽에 배치했다. 오래 전에 쓴 것들은 시집 중간에 몰려 있다. 그게 내 흐름과 맞아서 그렇게 배치한 거 같다. 

△ 시나리오도 쓰는데, 그건 시와는 많이 다르겠지. 
: 마음 먹고 작년부터 장편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시와 차이가 있다면, 시는 내가 혼자 쓸 수 있고, 영화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작업이란 거다. 내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을 완성하려면 영화는 배우를 기용해야 하고, 카메라맨이 필요하고 하니까. 시나리오는 하나 덩어리가 되려면 각각의 짧은 순간들이 모여야 한다. 장편을 쓸 때 일단 그렇게 생각하고 부담을 덜 가진 상태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일단 시작하는 거다. 

나는 시를 쓰지 않는다면 힘들 거 같다. 온전히 영화를 만드는 일로만 무언갈 보여주는 것이 해소되지 않는다. 자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영화 작업을 하더라도 내가 내 이야기를 연출하는 것이 아니다. 과정상 경험하고 노하우를 쌓는 것 뿐이다. 보다 장기적인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 

▲ 그녀는 자신의 이름에 나무 '목'을 붙여 유진목이라고 지었다. 영화사 '목년사'도 역시 나무 '목'이 붙었다. ⓒ뉴스제주

△ 오랜 기간 시를 쓰면서, 버리는 시도 많았겠다.
: 나는 많이 버렸다. 최종적으로 들어가지 않은 시도 많다. 다시 봤을 때 부끄러워서, 결국 완성되지 않는 시도 많다. 처음엔 좋은 거 같았는데, 나중에 보면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하겠는 것도 있고. 

△ 시를 쓰다보면, 점점 잘 쓰게 되나. 
: 잘 모르겠다. 다만, 내 성격이나 성향이 바뀌긴 한다. 이런 방식으로 썼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면 꼭 그때 살던 모양대로 쓰고 있었다. 성격이 변하듯 시도 달라지는 거다. 어릴 땐 어떤 부분에서 몹시 까다로웠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신경도 쓰기 싫고 느슨해진다거나 하는 식. 시도 그렇다. 읽는 이가 눈치를 챌 지도 모르겠는데, 어릴 때 쓴 시들은 참 빽빽하다. 시어도 일상적인 것보단 다분히 시적이다. 지금은 그렇게 하래도 못하겠다. 그때에 비해 난 많이 느슨해졌다. 성격이 변해서다.

△ 읽으면서 궁금했다. 기쁨을 표현한 시도 있나.
: ...없는 거 같다. 요즘 쓰는 시가 조금 밝다. 무거운 건 내가 이 시집을 내면서 털어 내버린 셈이다. 난 꽤 긍정적이다. 긍정적이란 게, 애초에 가능성이 너무 막혀서 포기한 것들 때문에 생겨난 거다. 이도저도 안되니까 가만히 있자 싶은. 그런 게으른 긍정. 그러면서 억눌린 것들이 시를 쓸 때 나온다. 내 시를 읽으면서 슬픔을 느낀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난 그 말이 참 놀라웠다. 내가 누군가에게 슬픈 감정을 느끼게 하리라곤 상상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왜 시집 제목이 ‘연애’인가. 이를테면, ‘사랑’일 수도 있었을텐데. 
: 그땐 이런 생각을 해서 제목을 짓진 않았다. 굳이 설명을 해야 한다면, ‘연애’가 좀 더 관계를 지시하기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또, 꼭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거다. ‘이 일을 하는 동안 연애하는 거 같았어’라는 말처럼. 그래서 선택했다. 사랑 자체를 말하고 싶진 않았다. 엄마든, 아빠든, 연인이든, 풍경이든 모든 것과 가능한 것, 연애. 

△ 제주도 생활은 어떤가. 만족하나.
: 지금 쿠바 책을 준비하고 있다. 여러 명이 쿠바에서 여행하고 왔고, 각기 여행기를 쓴 것을 엮어 책이 나올 예정이다. 제주도 와서 중산간을 보고 느낀 건데, 농장이 많지 않나. 그게 쿠바와 비슷하다. 그곳엔 농장이 많으니까. 

난 서울에서 사는 게 힘들었다. 내가 원하지 않은 것에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단지 서울이어서 비싼 월세를 치르고, 보증금을 내야 하는 것들. 거기 살고 있기 때문에 지불해야 하는 것들이 싫었다. 난 가진 재산이 없고, 그저 내가 움직여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려니 도무지 행복해지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쿠바에 여행을 갔다. 그곳은 가난해도 품격이 있었다. 가진 게 없어도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곳이었다. 그때 서울을 벗어나야겠다고 마음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제주에 오게 된 거다. 

△ 쓰는 일 말고, 요즘은 뭘 하며 지내나.
: 지금 집은 마을에서도 많이 떨어져 있어 버스를 타려면 20~30분을 걸어야 한다. 가끔 수영하러 나갔다. 책은 범죄소설을 많이 읽는다. 난 영화도 스릴러를 좋아한다. 티비로는 ‘그것이 알고싶다’를 가장 좋아한다. 시 ‘미선나무’가 그런 걸 보고 쓴 시다. 

서울에선 아침에 일어나면 나갔다. 집에 있으면 답답하고 힘들었다. 난 오피스텔에 살았었다. 건물은 관리가 잘 돼 있고, 안전하다. 그런데 오히려 고립된 느낌을 받는다. 실은 그곳이야말로 내가 그곳에 있어도 아무도 내가 있는 걸 모르는 곳인데. 제주도는 집에 있어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다고 지낸다. 타인에 대한 계산, 물질에 비추는 일도 멈췄다. 오히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있는 지도 모르고 지낼 때가 많다.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생각해보는 여유도 생겼다. 건강도 좋아졌다.*

유진목 시인을 만나기로는, 시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다. 권나무의 노래 ‘화분’은 시인의 시를 개사한 거다. 그녀는 목년사에서 영화를 만든다. 만든 영상은 달리 표현된 시다. 홈페이지(https://vimeo.com/eugenemok)에 가면 영상을 볼 수 있다.

 

 

지난 5월에 나온 삼인시집선 01 <연애의 책>.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모과를 주워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아내는 몸을 씻고 일찍 이부자리에 누웠다/ 밤에 모과 한 알이 부엌에 놓여 있다/ 나는 모과를 훔치려고 더 어두워졌다” 그녀의 시 ‘그믐’이다. <연애의 책>, 유진목 씀, 도서출판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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