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로 주목 받은 오멸 감독이 지난 8월, 제주에서 영화 상영회를 진행했다. 이를 기회로 제주 도민은 개봉한 적 없는 <이어도>와 <눈꺼풀>을 이틀에 걸쳐 볼 수 있었다. 상영한 <이어도>는 2011년에 만든 영화다. 감독은 이후 2012년에 <지슬>, 2014년엔 <하늘의 황금마차>를 만들었다. 그리고 2015년에 <눈꺼풀>을 완성하고,  이어 <인어전설(가제)>을 만들었다. 상영한 <눈꺼풀>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기도 했지만, 정식 개봉하지 않았다. <이어도>는 감독이 개봉을 원치 않았다고 해도, <눈꺼풀>을 상영회를 통해서나 만나는 이유가 뭘까. 상영회를 하기 전, 오멸 감독을 만나 가장 먼저 이것을 물었다. 

“개봉은 안한다. 못하는 걸까, 안하는 걸까. 노력은 했다. 영화는 부산에서 상도 받았다. 심지어 개봉을 지원하는 내용의 상이다. 이유라면, <눈꺼풀>은 세월호 이야기다. 그래서 사회적 발언을 하게 된 것이나 다름 없게 됐다. 때문에 지원금을 받기 힘든 상황으로 이어졌다. 해녀 영화 투자금도 순조롭지 않아 펀딩을 준비하고 있다. <눈꺼풀> 상영은 극장이 반기는 영화가 아니다. 상영관에 피해가 간다면, 그것을 감수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개봉하지 않았다.” 

개봉하기 어려운 영화라니, 그것은 영화 한 편이 갖는 의미와 영향력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여러 이유로 제주에서의 <눈꺼풀> 상영은 뜻깊었다. 감독은 <지슬> 이후 꾸준히 작업을 해 왔지만, 그럼에도 대외적 침체기를 겪었다. 만드는 영화마다 개봉과 투자가 어려웠고, 감독은 모색을 궁리했다. 이를 "아버지가 됐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자파리연구소에서 출발해 국내에서 국외 영화계로, 점차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배워가는 중이다. 이건 뜻하지 않게, 제주도에 오멸이 필요한 영화 감독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인터뷰다. 

▲ 영화 <지슬>이 아니면, 줄곧 '귓것'이란 말을 들으며 지냈을 것이라는 감독. ⓒ뉴스제주

 <눈꺼풀>이 그랬다면, 지난 <이어도>는 왜 개봉하지 않았나. 
그건 어려운 영화다. 지금 다시 보면 또 울 거다. <지슬>은 보면서 울진 않았다. <이어도>는 다르다. 장면 하나하나 이야기할 때마다 울컥한다. 이 영화는 ‘나만의 글’을 써 갈 수 있는 영화다. 각자 자기만의 이야기를 쓰는 영화. ‘자기만의 시’ 같은 것 말이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나 혼자 쓰는 시라고 생각하면, 나는 먹먹해지는 지점이 있다. 그런 감정으로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하면 힘들어진다. 제천에서 상영하고 감독과의 대화를 할 때, 울먹여서 말도 잘 못했다. 

 <지슬>은 요즘도 가끔 보나.
안 본다. 영화제에서 프로그램 할 때나 오랜만에 본다. 영화 한 편이 알려지면, 소위 뿌리까지 다 뽑아가는 거 같다. 그걸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 그것 안에 맴돌아 몇 년을 지내야 하는 거다. 잊혀지도록 적당히 조절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았다. 

▲ <지슬> 개봉한 지도 벌써 4년이 됐다. 지나고 돌아보니, 새삼 영화의 영향력을 실감했다.
<이어도>처럼 <지슬>은 내가 보고 싶어 만든 영화다. 특히 <지슬>은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 영화다. 영화로서의 영화, 영화적 역할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난. 늘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하니까. 역할이라기엔 그저 '우리들 이야기'였을 뿐이다. 거기서 스스로에게 책무를 준 작업이다. 게다가 이 영화가 개봉하면 지역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가 생기겠다 싶었다. 그래서 결국 엄청난 책임감이 생기기도 했다. 피할 수 없는 책임감. 누군가는 해야 하는 작업이었을 거다. 그 그림자를 인정하며 작업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영화다. 영화로서 역할에 충실하려고 했고, 말도 안되게 어려운 여건에서 모두 노력했던 작업이다. 

▲ 영화를 만들 때 필모그래피 흐름을 생각하게 되나. 
멀리 봤을 때, 개인적인 계획은 있다. 제주 친구들은 늘 얘기한다. ‘왜 상업영화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해보면, 내가 상업영화 해서 돈을 벌어도 내가 버는 것이고, 그들에게 이득이 없는데. 난 그보단 돈이 안돼도 제주도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게 잘 되거나 아니거나 좋은 과정이고 결국 성장이라고 본다. 큰 그림에서 인프라를 만들 수 있는 일 말이다. 

내가 제주에서 영화를 만든 것이 7년 됐다. 그쯤 되니 자기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야겠다 싶더라. 내가 제주도 이야기를 찍을 때의 방식, 과정에 대한 데이터가 쌓여야 한다. 다들 제주도 하면 바다만 생각해서 중산간 이야기를 찍고 싶었다. 그게 <어이그 저 귓것>이다. 귓것을 찍고 보니까 우리 인생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 <뽕똘>을 찍었고. <지슬>도 그렇게 찍게 됐다. 

지금은 해녀 영화 후반 작업 중이다. 다른 건 몰라도 해녀 이야기는 찍고 싶었다. 제주도 영화 열 편을 채우거나, 십년을 채우거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면 해녀영화까지는 찍고 싶다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건 나의 인생 성공 여부와 관계 없다. 어떤 지표를 하나 찍는 거다. 마을이 형성되려면 지표 하나를 찍는 것부터가 시작 아니겠나. 내가 제주에서 영화 찍는 1세대라고 본다. 그런 책임감이 있었고, 그 안에 계획을 가지고는 있었다.  

▲ 그 해녀 영화가 <인어전설>이라고 들었다. 수영장 신을 위해 엑스트라를 모집하는 공지를 본 적이 있다. 
가제다. <고래어멍>으로 바꿀까 고려 중이다. 문희경, 전혜빈 배우와 작업했다. 촬영은 끝났고, 아직 진행 중이다. <눈꺼풀> 여파인지 투자 요청 승인이 순조롭지 않았다. 그래서 펀딩을 할 거다. 지역사회 투자자 도움도 받아야 할 거 같다. 후반작업이 남았는데 문제를 많이 겪어서 일년 넘도록 부여잡고 있는 중이다. 

▲ 감독은 현재 <인어전설(가제)> 완성을 위해 펀딩을 시작, 후반 작업 중이다. ⓒ뉴스제주

▲ 자파리는 어떤가. 초기와 달리 배우들 기량도 향상되고 환경도 달라져서 영화를 구상하는 지점도 달라졌을 거 같다. 
가면 갈수록 힘들다. 자유롭게 시작했는데 책임감이 들어가고 기대감이 생기고, 힘도 들어가고. <지슬>이 잘 될 때 직감이 그랬다. 이걸 어떻게 이겨낼까 하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기적같은 흥행이었다. 그리고 ‘우린 이제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 작품 작업에 대해 묻길래, ‘일단 뜰채로 물을 떠내야 할 거 같다’고 했다. 그게 <지슬> 이후 지금까지 왔다. 혼자 공부하면서 느낀 건, 영화나 예술이나 계단이 없다. 올라가서 작품을 하나 만들고 나면, 다음 작품이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다. 다시 바닥이다. 그런데 우린 내려오는 방법을 몰랐다. 붕 떠 있었다. 주변 기대치도 붕 떠 있고. 

그 힘을 빼려고 <하늘의 황금마차>를 찍었다. 캠핑하면서 찍었다. <눈꺼풀>을 찍으려고 무인도에도 갔다. 해녀 영화는 유네스코 등재에 맞춰 이런 영화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거다. 우리가 큰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다. 

질퍽한 행보가 <지슬> 이후 있어 왔다. 이제 <지슬> 끝나고 4년이다. 영화가 안풀리는 일도 많고, 심적으로 힘들었는데, 이제 다 지나갔나 싶은 생각이 조금 든다. 인생에 삼재가 있다고 하던데, 그게 좀 빠져나가나 싶은 시기다. 영화 단맛에서 나가고 쓴맛도 좀 지나가고, 홀가분해질 수 있겠다 싶다. 

▲ 아까 질문은 배우들이 농익어서 영화가 다르게 만들어지지 않냐고 물은 건데.
영화를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나만 하고 싶었던 일이다. 극단 모두가 연극을 하고픈 사람들이 아니었다. 다 내가 꼬셨다. 하다보니까 재미있고, 더 잘하고 싶고, 그러다 상도 받고 그랬다. 늘 촬영 끝나면 다들 일상으로 돌아간다. 모두가 영화에서 전문가가 되고픈 생각이 없다. 

그래도 익숙함은 있다. 그게 독이 될 때도 있고. 왜냐하면 같은 패턴 안에 있게 되니까. 배우들이란 변신해야 하는 거잖은가. 그런데 그들은 그 모습 그대로 캐릭터를 맡아 왔다. 나는 그에 맞는 시나리오를 쓴다. 그게 한계라, 고민해야 한다. 나도 내 영화 문법을 바꿀 때가 됐다. 꾸준히 만들긴 할텐데,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 <황금마차> <눈꺼풀> 모두 새로운 시도긴 했다. 
늘 노력해 왔다. 나름 처절하게 시험했다. 영화는 도구다. 도구를 어떻게 써 볼 것인가, 생각 중이다. 제주도는 그걸 습득할 기회가 많지 않으니 몸으로 체험하고 배우는 거다. 일년에 한 번 찍는 것만큼 좋은 공부는 없는 거 같다. 지금 그런 속도는 불가능하다. 다들 진이 빠져 있다. 

▲ 2015년에 완성한 <눈꺼풀>, 세월호 사고에서 출발한 영화다. ⓒ뉴스제주

▲ <눈꺼풀>은 무인도에서 찍었다. 촬영할 때 어땠나.
최근 10년 동안 살아온 시간 중 그 두 달이 가장 행복했다. 그건 겪어 봐야 아는 거다. 바다를 보면서 졸졸 흐르는 물을 받아 목욕하는 것, 뱀이 눈 앞을 다니는데 그것에 점차 익숙해지는 것. 무인도에 익숙해질수록 몸이 건강해지는 걸 체감했다. 열흘 정도 지나니까 문명을 떠나 피로감이 쌓이는 거 같지만,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6명이 함께 섬에 들어갔는데, 지금도 잊지 못할 시간이라 생각한다. 

▲ 영화를 보기 전이지만, <눈꺼풀>에는 노인과 노인이 만든 ‘떡’이 등장한다. 제의적이라 생각했다.
백설기가 제사할 때 올리는 떡이다. 그 떡을 누가 먹으러 오겠나. 그곳은 저승과 이승의 경계인 셈이다. 영혼이 잠깐 들러서 떡을 먹고 가는 거다. <지슬>도 그랬지만, 제의적 태도가 녹아 있다. 아픈 영혼을 구원하는 영화라고 보면 된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뉴스를 3일 동안 보고 나서 곧바로 3일 시나리오 쓰고, 답사 다녀오고 해서 찍었다. 

▲ 관객과 만날 때, 제주 관객은 어떤 느낌인가. 여느 곳과 조금 다르진 않은가. 
<지슬> 찍고 시사회를 하면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데 욕을 많이 먹었다. 이해하지 못할 영화다, 연출이 엉망이다 하는 식이었다. 나는 어떤 선물같은 것이란 생각도 하면서 영화를 함께 본 건데 예상과 빗나갔다. 지역 관객들이 보는 반응이 많이 다르다. 싸울 듯 공격적이었는데, 영화에 대한 갈증으로도 보였다. 

<지슬>을 상영하러 광주에 가면, 관객들이 부러워한다. ‘우리들도 저런 것을 찍어야 하는데’ 한다.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 준다. 내가 이 영화로 이곳 사람들 가슴을 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기우였다. 전국에서 관객을 만날 때 가장 힘든 곳이 제주도다. 제주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 지친다. 영화 찍고 아버지랑 이야기하는 기분이다. 

▲ <인어전설> 엑스트라 모집은 순조로웠나. 촬영은 어땠나. 전에 비해 유명한 감독이 됐는데. 
사람들이 많이 도와줬다. 내가 최근 들어 많이 느낀다. <지슬> 전과 후는 많이 다르다는 것. 전에는 연극 만들고 영화하고, 축제를 만들었었다. 그땐 많이 서럽기도 했다. <지슬>을 기점으로 뭘 해도 관심 갖고 도와주려고 한다. 감사한 일이다. 단역 모집에도 반응도 적극적이다. 내가 <지슬>이 없었다면, ‘귓것’이란 말 들으면서 지냈을텐데, 영화 덕분에 이해받고 있는 거 같아 고맙다. 

▲ 다음 작업으로 지금 생각하고 있는건 뭔가?
후반 작업 단계에 가면, 내가 할 일이 줄어드니까 그 다음 작업을 생각하게 된다. 두세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융통 가능한 제작비 안에서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제주도에 관련되지 않은 것도 한편 쓰고 있다.*

▲ 지난 8월, 오멸 감독이 제주도민과의 만남을 위해 이틀간 <이어도>와 <눈꺼풀>을 상영했다. 사진은 <눈꺼풀>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 ⓒ뉴스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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