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장강명 작가가 제주도서관을 찾았다. 4.3평화상을 받은 바 있는 <댓글부대>가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일주일 뒤다. 그가 작품활동을 시작한 건 2012년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이후 수림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 오늘의 작가상을 연이어 수상하면서 그는 몇 년 새 가장 주목받는 작가 반열에 올랐다.

장강명은 2002년부터 11년간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다. 전직이 ‘기자’인 소설가는 많지만, 그처럼 단숨에 주목 받는 것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작가가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기까지, 삶은 어떻게 글이 됐을까. 제주도서관 강의는 그가 쓴 소설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전업 작가라고 하지만 여전히 자신은 현장 울림을 전하는 ‘기자’라고 말하는 장강명을 만났다.

제주도서관 강의는 ‘이야기꾼을 경계하라’를 주제로 진행됐다. 강의 이후, 서면 인터뷰를 통해 작가의 목소리를 더했다.

▲ 11년의 기자생활을 접고, 소설을 쓰고 있는 장강명 작가, 지금도 그는 자신을 현장의 울림을 전하는 기자라고 전한다. (사진=은행나무출판사 제공) ⓒ뉴스제주

◇ "이야기'에 휩쓸리지 않고 어떤 빛을 발견하고 싶다" 

“취재에 동하는 어떤 실마리는 일종의 ‘사연’이다.” 작가는 비극적인 사건 하나를 두고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 이를 통해 비극성이 희석되지 않는 선에서 사건을 전달하는 요령을 언급했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지난 기사 두 개를 예로 들었다. 강의를 듣는 이들은 이날 ‘사건의 흐름을 반박할 수 없는 선에서 기사로 풀어내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어떤 논쟁은 ‘해석의 싸움’ ‘이야기 싸움’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생각이 ‘이야기의 시장’이라면, 사람들이 반응하는 이야기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강명 작가의 이 말은 그의 소설 쓰기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또, 그는 자신을 ‘허무주의자’라고도 소개했다. “나의 가치관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나는 잘 모르겠다. 회의주의자라서 이야기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건 맞다. 세상을 보는 시각도 그렇다. 하지만 또, 시대정신과도 거리를 두는 편이다. 난 아직 여문 사람이 아니다. 고민하고, 배우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발견해야 한다. 소설가나, 한 인간으로. 휩쓸리지 않으면서 어떤 빛을 발견하고 싶다.”

▲(청중 질문)작가로서 소재, 주제를 어떻게 구성하나.
: 소재는 절박하다. 나는 아무데서나 기사를 스크랩한다. 메일에 카테고리를 만들어 뒀다. 흥미로운 판례들을 모은다. 아내와 수다를 떨다가 흥미로운 부분이 있으면 녹음한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아내가 들려준 이야기가 출발점이다.

▲(청중 질문)오늘 이야기한 이야기꾼은 어떻게 경계해야 할까.
: 이야기에 휩쓸리지 않는 건 힘들다. 울지 않으려고 해도 뻔한 영화를 보다가 울지 않나. 알면서도 울게 되는데, 이런 건 인간의 본능 같다. 사물을 빠르게 판단하는 것이 진화에서 필수적이지 않았을까. 어딘가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렸을 때, 그것을 호랑이라고 가정해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인과관계의 버릇, 직관적 판단은 대부분 그렇다. 우리는 도덕적 지관이나 판단에 가치를 많이 부여하지 않나. 그러나 직관적으로 옳다 싶을 때, 실은 아닌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이론, 통계 등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의심해야 하고. 이야기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매커니즘이나 학문을 익히는 것이 좋을 거 같다.

▲ 제 3회 4.3문학상을 수상한 <댓글부대> ⓒ뉴스제주

▲(청중 질문)“모든 억압에 반대하는 것을 반대한다” 이건 해석의 여지가 많은 거 같다.
: 난 허무주의고 보수적이라, 그만큼 맹렬히 가치를 찾고 싶다. 인습과 관습은 대체로 신경 밖이다. 나는 남성이고, 상대적으로 약자에 비해 압력이 적다. 인습과 관습에 저항하는 건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다. 사회적 요소를 부여한다면 더 그렇겠지. 저항을 패셔너블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힙스터 문화, 나는 이것이 새로운 인습인가 관습인가 싶기도 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보수성, 구속은 가치의 이면일 때가 있다. 가치를 배제하고 저항만 강조할 순 없다. 헌법적 가치에 따르는 것을 난 중요시한다. 이러한 문답은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겠지.

▲(청중 질문)4.3 문학상을 받았는데, 늦었지만 수상 소감은.  
: 내가 소설가로서 자립을 고민할 때 문학상 응원을 받았다. 자유, 평화, 민주주의를 내건 문학상은 국내에 없지 않나. 이 취지는 앞으로도 이어졌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이 상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지 않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 20년, 50년 뒤에는 어떤 색깔로 대두될 거다. 전작들만 봐도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상이 되겠지. 주제의식이 오래 유지되길 바란다.

▲소설이 대부분 문제의식이 있고, 시의성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읽히는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 않나. 
: 여러가지 작가적 욕심이 있다. 그 중에는 긴 생명력을 갖고 50년 뒤, 100년 뒤에도 읽힐 작품을 쓰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그런데 작가로서 50년 뒤, 100년 뒤에도 읽힐 작품을 쓰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당대의 가장 시의성 있는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 작가는 하루에 여덟 시간을 꼼짝 없이 앉아 글을 쓴다고 했다. ⓒ뉴스제주

▲어떤 인터뷰에서 당신의 글이 ‘문학적이지 않다’고 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  이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이 든다. 문학이라는 게 뭔가, 문학적이라는 게 뭔가에 대해 과연 모든 사람이 합의한 하나의 답이 있나 하는 의심도 들고. 그래서 같은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그때처럼 답하지는 않을 것 같다. 

소설을 통해 내가 이루려는 바, 추구하려는 가치는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걸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는 참 어렵다. 강한 문제제기로 토론을 일으키고 싶기도 하고, 의외의 소재나 전개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거나, 읽는 사람들의 가슴에 아주 깊은 상처를 남기고 싶기도 합다. 그렇게 ‘독자에게 문학적 체험을 선사하고 싶다’는 차원을 뛰어넘어 당대를 정직하게 기록하고 사고실험을 통해 답을 모색해보고 싶다.

▲스톱워치를 켜고 글을 쓴다고 했다. 그만큼 성실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건데, 기획과 집필, 아이디어의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나.
: 사실 이건 구분해서 어디까지가 막연한 구상이고, 어디서부터는 기획이고, 메모는 어떻다라고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대체로는 그 세 가지 일을 그냥 두서없이 한꺼번에 한다.  예를 들어 ‘한국 현실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을 쓰고 싶다’는 구상은 늘 하고 있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 구상에 관한 머릿 속 서랍에 조금 더 구체적인 요소를 수집해 넣게 된다. 최근 히트한 작품에 대한 분석, 출판시장 트렌드 등의 글을 읽고 느낀 점도 포함되겠지. 물론, 사회적 이슈도 해당할테고. 그러던 중 경찰이 새로운 수사기법으로 어떤 미제 사건을 해결했다는 정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것을 발견하면 컴퓨터나 메일함에 폴더를 만들어 스크랩을 해둔다.

이런 일들은 논리적인 단계로 작업할 수 없다. 순서 없이 느슨하게 머리와 하드디스크에 쌓아놓는 편이다. 소설을 쓸 때에는 커다란 뼈대에 살을 붙이는 식으로 쓴 경우도 있었고, 작은 디테일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잇는 식으로 쓴 적도 있고. 그래서 딱히 구분해 말할 수는 없겠다.

▲기존 작가와 달리, 투고하는 방식도 취해가면서 여러 출판사와 일했다. 책 표지를 모아 놓고 보면 다양한 출판사인 게 드러난다. 편집 과정에는 얼마나 관여하나.
: 글은 내가 쓰는 것이고, 책은 편집자와 협업해서 만드는 것이다. 글에 있어서는 편집자의 조언을 귀담아 듣되, 최종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고 여긴다. 제목도 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편집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제목을 고친 적이 몇 번 있고, 반대로 편집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가 원하는 제목을 고집한 적도 있다. 그런데 표지는 '글'이 아니라 '책'에 속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의견을 따른다. 그들이 전문가이기도 하고. 딱 한 번 표지 시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언제나 전문가의 의견을 따라 만들고 있다.

▲ 10일 제주도서관에서 '이야기꾼을 경계하라'를 주제로 강의하는 장강명 작가 ⓒ뉴스제주

▲<댓글부대>에서 “사실은 아니나 진실이다”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대체로 갈등, 마찰에 몰입하는 것도 그렇고, 기자였다는 점이 부각되는 지점이다.
:  기자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나는 팩트를 존중하는 훈련을 오래 받은 사람이고, 역시 후배들에게 팩트를 존중하라고 가르쳤다. 그런 관점에서는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이라는 주장은 적어도 내가 아는 저널리즘 영역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소설에서 그 대목을 쓸 때에도 한편으로는 그럴싸한 궤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등, 마찰 지점에 주목하는 태도도 분명히 기자 생활을 하며 배운 거다. 대개 기삿거리가 많이 나오는 장소는 그런 지점들이니까. 그런 지점은 매우 극적이고, 사회의 문제적 주제들이 모여 있는 곳들이기도 하니까.

▲말을 잘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기자여서일까 하는 생각도 했다. 말을 잘하는 것과 글을 잘쓰는 것은 비슷한 맥락일까.
: 말을 잘한다는 평가는 받은 적이 없다. 아마 이미 원고가 준비된 강연이고, 이후의 질의응답도 대등한 위치라기보단 강사와 청중의 관계여서 실제 이상으로 유창하게 보였을 거다. 

▲ 장강명 작가의 최근작이다. 5년 만에 신혼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뉴스제주

말하는 것과 쓰는 것은 매우 다른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쓰기는 혼자 하는 작업 같고, 말하기는 상대와 함께 추는 춤과 같다고 할까. 더구나 글을 쓸 때는 나중에 고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훨씬 더 차분하게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것 같다. 말을 할 땐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더라도 상대의 의중을 재빨리 파악하고 알맞은 호흡으로 자기 의견을 내거나 다스려야 한다. 나는 그쪽으로는 별 재주가 없는 거 같다. 

▲열띤 강의와 청중이었다고 생각한다. 작가에게 이번 제주 강연은 어땠나.
도서관 관련 분들과 낮에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다들 무척 친절했다. 강연 분위기도 아주 좋아서 무척 편하게 있었다. 1박 2일로 할까, 당일치기로 할까 고민했는데 마감이 있어 당일치기로 했다. 그래서인가 떠날 때 아쉬웠다.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인 서진 소설가가 최근 제주로 이사해서 그 댁에 놀러갈까 싶었다. 이건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질문하던 이가 질문을 받는 기분은 어떨까. 그는 "인터뷰를 당하는 처지로 입장이 바뀌고 나니 ‘질문의 힘’이라는 걸 아주 강하게 느낀다"고 대답했다. "질문은 정말 강력한 무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바람을 덧붙였다. "늘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작가이고 싶다"고. 그가 성실히 글을 축적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질문을 들을 것이다. 그가 세상에 물음표를 던질 때, 우리는 각자 자신의 빛을 발견할 때까지, 그 질문을 듣는 예리한 청중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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