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존 바에즈·밥 딜런(사진=존 바에즈 페이스북) 2016-10-14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두 번씩 생각 않는 게 좋아요.”(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1963) 미국 포크록 가수 밥 딜런(75)은 자신의 대표곡 제목처럼 홀로 고요했다. 노벨문학상 115년 역사에 처음으로 대중음악 가수가 이 상을 받으면서 온 세상은 떠들썩하지만 그는 정작 초연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그의 이름이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에서 호명된 직후 13일 밤 (현지시간)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의 코스모폴리턴 호텔 첼시 극장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그는 노벨문학상과 관련 한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딜런다운 선택이었다. 그는 데뷔 48년 만인 2010년 3월31일 단 한 차례 내한공연했을 때 2시간 동안 막바지 멤버소개와 ‘생큐’를 제외하고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오로지 음악만 들려줬다. 대기실 요구 사항도 단출했다. 화이트 와인 한 병, 재떨이, 물이 전부였다.

본명 로버트 앨런 지머먼 대신 영국 웨일즈의 방랑 시인 딜런 토머스(1914~1953)의 이름을 따와 활동 예명을 삼은 ‘음유시인’은 대신 시 같은 노래로만 관객과 소통했다.

딜런과 과거 연인 사이로 그와 영향을 주고 받은 미국 포크계의 대모 존 바에즈는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페이스북에 “반항적이고, 세상을 저버렸으며, 예측할 수 없는 아티스트·작곡인 밥 딜런은 노벨문학상에 알맞다”고 썼다.

"밥 딜런이 위대한 미국의 전통속에서 새로운 시적을 표현을 창조해왔다"는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처럼 딜런은 세상을 바꿨다. 사랑타령에 머무던 대중 음악에 예술성을 결합해 인권• 반전운동의 음악적 상징이 됐다. 미국의 대중음악은 물론 1960~1970년대 한국 포크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다.


▲ 【서울=뉴시스】한대수, 가수(사진=하얀나무) 2016-10-14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우리나라 1970년대 청춘 문화의 ‘영포크’ 역시 딜런의 영향을 받았다”며 “딜런은 장기간 활동하며 대중음악의 존재감과 무게감을 세상에 알리는데 공헌했다"고 말했다.

철학적이고, 저항정신이 강한 달런의 음악세계는 한국의 포크 1세대에 스며들었다. "밥 딜런같은 록스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건 혁명적"이라며 '한국의 밥 달 런이라고 불리는 나도 노벨문학상을 줬으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떠는 한대수 등 한국에서 '귀를 위한 시(詩)'를 부른 가수들을 꼽아봤다.

◇‘한국의 밥 딜런’ 한대수 '포크록의 대부'

“끝없는 바람 저 험한 산 위로 / 나뭇잎 사이 불어 가는 / 아 자유의 바람 저 언덕 위로 물결같이 춤추는 임”(한대수 ‘바람과 나’)

한국에서 딜런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가수는 한대수다. 어릴 때 미국에서 생활하며 그의 음악을 접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포크록의 대부’가 됐다. 

▲ 【서울=뉴시스】김민기, 가수(사진=뉴시스DB) 2016-10-14

‘한국 히피 문화의 선구자’로 통하는 그의 노랫말은 딜런의 그것보다 착하고 서정적이다. “장막을 걷어라 ‘ 나의 좁은 눈으로 / 이 세상을 떠보자 / 창문을 열어라 / 춤추는 산들바람을 / 한 번 또 느껴 보자”(한대수 ‘행복의 나라로’)라고 노래할 때 한대수의 얼굴은 그가 59세에 낳은 늦둥이 딸의 얼굴이 된다.

◇‘한국 저항 포크의 계보’ 김민기·양희은·서유석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양희은 ‘아침이슬’)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가 쓰고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은 1970년대 운동권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었다. 딜런은 김민기과 양희은을 필두로 이 시대 활약한 저항 포크가수들은 딜런의 자장 아래 있었다. 이 곡이 창작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정치적으로 해석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세상에 초연한 듯한 김민기의 태도와 정신은 오히려 저항의 기치를 높이 들어올렸다.

“두 손가락에 끼이여 삶과 죽음의 허무를 일으켰다”(서유석 ‘담배’)

▲ 【서울=뉴시스】윤형주, 가수(사진=뉴시스DB) 2016-10-14

‘가는 세월’의 구수한 음색으로 유명한 서유석은 한 때 ‘한국의 밥 딜런’으로 통하며 1970년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김민기, 한대수와 더불어 3대 저항 포크가수로 불렸다.

특히 유신 정권의 대표적인 금지 앨범 ‘서유석 걸작집’이 그를 상징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김용호의 시에 김기웅이 곡을 붙인 ‘담배’는 그 섬뜩함이 절정에 달한다.

◇‘딜런의 저항을 선망한 이들’, ‘쎄시봉’ 송창식·윤형주·이장희

사실 쎄시봉은 딜런의 저항 포크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에 놓여 있지는 않다. 화음 위주의 부드러운 포크의 이 팀은 딜런과 미국에서 같은 시기 활동한 ‘브러더스 포’의 감성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엄혹한 1970년대 딜런의 저항 정신이 이들을 완전히 비껴갈 수는 없었다. 당시 의대생의 모범적인 이미지의 윤형주는 특히 그에 대한 선망이 강했고 송창식과 활동한 ‘트윈폴리오’ 시절 딜런의 ‘블로잉 윈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를 ‘바람 속에’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부르기도 했다.

▲ 【서울=뉴시스】김광석, 가수(사진=뉴시스DB) 2016-10-14

◇‘딜런을 한국어로 부르다’ 양병집·김광석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 하늘로 나는 돛단배/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 있건만/”(양병집 ‘역’)

양병집은 1970년대 저항 포크를 이끈 한 축이었다. 그는 1973년 ‘전국포크송콘테스트’에서 딜런의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라이트’를 번안한 ‘역(逆)’이라는 노래를 통해 3위로 입상하며 가요계에 발을 들였다.

이듬에 발매한 앨범 ‘넋두리’에 이 곡을 실었는데 원곡 가사를 그대로 번역하는 대신 한국 시대상황을 풍자한 가사로 공감을 샀다. 이후 요절한 후배가수 김광석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라는 제목으로 다시 불러 큰 인기를 누렸다.

“그대 웃음소리 파도가 되어 / 어두운 바닷가 밤비가 되어 / 바위 그늘 밑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 거기에 있네”(김광석 ‘그대 웃음소리’)

‘가객’ 김광석은 1970년대 포크 선배가수들의 계보를 이어간 적자로 부를 만하다. ‘그대 웃음소리’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등 시적인 작사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그는 특히 견줄 수 없는 애끓는 목소리로 ‘음유시인’으로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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