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 ⓒ뉴스제주
 

한때 인사동 모 다방에서 세 사람의 기인이 늘 모여앉아 주고받는 대화가 제미있다고, 그 말을 들으려고 몰려드는 손님이 많이 있었다.
세 사람릐 기인이란, 천상병, 공초, 걸레스님이었다. 이들은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엇고 그저 떠들고 있으면 찻값, 술값을 대신 지불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야말로 돈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몇 년 전 나의 서울상대 선배인 천상병 시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착찹한 심정을 가눌 수 없었던 적이 기억난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라는 서로 유명해졌지만 선청성 장애를 갖고 있었다. 늦게까지 홀로 지내다 뒤늦게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가 싶었는데, 그도 오래가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귀천하신 것이다.
부인은 천상병 시인과 친하게 지내던 분들이 모아준 조의금 8백만원을 같이사는 친정어머니에게 맡겨두고 천상병 시인의 장례를 치르러 나갔다가 장례를 마친 뒤 집에 돌아왔다. 추운 겨울이라 냉랭한 방에 온기를 돋우기 위해 부인은 아궁이에 불을 때기 시작하였다.
한참 후에 친정 어미니가 외출에서 돌아와 보시고는 기정초풍을 하는 것이 아닌가. 친정어머니는 도둑이 염려되어 조의금 8백만원을 아궁이 속에 감추어 두었는데, 딸은 그것도 모르고 불을 지핀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살아 생전에도 돈과 인연이 없는 분이셨지만, 하늘로 가시는 길에서도 훌훌 털고 떠나신 셈이 된 것이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우리 가문의 장손이 총각시절에 저지른 사건이 생각났다. 4.3사건과 6.25 등으로 배고프던 시절 어느 여름날, 우리 가문 장손 총각은 목장에 가축을 돌보기 위해 나갔다가, 갑작스레 억수같이 쏟아진 소나기 비를 맞고 흠뻑 적은 몸으로 집에 돌아와 외양간에 있는 화로에 불을 지펴 몸을 녹이고 있었다. 그 때 외출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아들의 행동을 보더니만, “아이구!!! 돈!!!” 하고 외쳤다
어머니는 얼마전에 소 한 마리를 팔고 그 돈을 화로의 재속에 묻어 감추어 두었던 것이다. 마침 여름철이라 화로에 불을 지필 일도 없었고, 도둑도 무섭고 해서 나름대로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해서 화로의 재 속에 돈을 묻어두었는데, 아들은 그것도 모르고 화로에 불씨를 얹은 것이다.
어머니가 외치는 소리에 놀란 아들이 부지깽이로 불속릉 휘저어 돈을 찾으려 했더니, 오히려 불꽃이 더욱 활활 일어나, 돈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재로 사라져 버렸다. 소 한 마리 값을 고스란히 연기로 날려 버리고 두 모자가 허탈하게 얼굴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다.
한편 내가 감귤 과수원을 시작한 것은 1970년,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부터였다. 어린 묘목을 심고, 겨울 추위에 나무가 얼어 죽을까 걱정되어 경험자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한 가마니로 묘목을 싸주면 괜찮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제주시 동문로터리에는 내가 근무하는 기업은행 제주지점이 있었고, 그 옆에는 헌 가마니를 파는 상점이 있었다. 아침 일찍 찾아가 헌 가마니를 한 트럭 사서 과수원에 운반해 도고 출근을 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은행 업무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가마니 상점 주인 아저씨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아침에 우리 상점에서 가마니 사 가셨지에?(가셨지요?”)
“그렇습니다만.....”“그 가마니, 지금 어디 있수꽈?(있습니까?)”
“우리 과수원에 풀어 놓아신디예(놓았는데요)....무사 마씸?(왜 요?)”
“죄송하지만, 그 과수원에 같이 가 보게 마씸.(가 봅시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업무중이라고 곤란허난(곤란하니까) 업무 끝나거든 같이 갑주.(갑시다.)”
하고 은행 마감시간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주인의 행동이 매우 불안하였다. 상점 주인은 자기 가게에서 우리 은행사이를 수시로 들락날락하며 안절부절못하는 것이었다. 신경이 쓰인 나는 상점 주인을 불러 왜 그러시냐고 따져 물었더니, 가마니 묶음 속에 돈 천만원이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부인이 전날 늦게 수금한 돈을 도둑이 무서워 가마니 묶음 속에 숨겨두었고 남편은 그런 줄도 모르고 아침에 가마니를 통째로 팔아버렸다. 아침 늦게 상점으로 출근한 부인이 이를 알고 난리가 난 것이다.
그 분을 과수원에 데리고 가서 가마니 묶음 속을 일일이 뒤져 살펴보니, 비닐 봉지에 싼 천만원 돈다발이 나왔다. 돈을 찾은 가마니 상점 주인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기뼜다. 만일 전혀 연고를 모르는 사람에게 가마니를 팔아 버렸으면 영영 찾지 못할 뻔하지 않았는가.
천상병 시인의 미망인이나 우리가문 장손은 돈을 잃어 버렸지만, 이 상점 주인은 되찾아 좋아했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 모두가 도둑이 무서워서 빚어진 해프닝인 것이다. 돈도 태와사 자기 돈이 되는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