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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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민원실에서 호적등본을 신청하겠다고 했더니, 창구 여직원이 마치 외계인을 쳐다보듯이 하는 게 아닌가? ‘호적제도가 폐지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호적등본을 떼려는가? 라는 투로 말이다.
호적제도 폐지 논란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어느 TV토론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참가한 마당놀이 주연배우 윤문식 씨가
“요즘 개도 족보를 따지는 판에 사람의 족보인 호적을 없애겠다니 우리 사람이 개만도 못하단 말이오?”
라고 따지는 장면을 보면서 통쾌한 느낌을 받은 바 있다.
호적제도 개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호적제도가 일제에 의하여 처음으로 만들어진 잔재이므로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나는 얼른 아해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2천년 전 로마에서도 호적제도가 있었다는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성서에 의하면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던 이스라엘에서 요셉과 마리아 부부가 호적정리를 하기 위하여 머나먼 고향 베들레헴을 찾아 왔다가 사람이 몰려 여관방을 구하지 못하고 남의 외양간에 머물다가 예수님을 탄생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니, 호적제도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하여 처음 만들어진 우물이라는 것도 억지에 자나지 않다.
이제 호적제도가 개편되고 보니,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시절 말년에 우리 민족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일제는 우리가 갖고 있는 고유한 성씨를 말살하여 일본식으로 창씨개명하도록 강요했고, 이에 협조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로 불이익을 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김씨는 김본: 가네모도, 김춘 : 가네무라, 현씨는 연산 :노부야마, 덕원 : 도꾸하라 등으로 본성의 연고를 이으려고 대부분 노력했지만, 반면 일부 화가 난 사람들은 일부러 견자 : 이누꼬-개새끼, 송하 :마쓰시다-소나무 밑에서 태어난 자식등으로 창씨 개명한 사릴도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말다툼할 때 흔히 쓰는 말이 “내 말이 거짓이라면, 내 성을 갈겟다.”라고 내뱉는다. 집안에서 아들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어버이들은 “호적에서 파 버리겟다!고 야단치곤 한다. 우리가 ‘성을 갈겠다’ ‘호적에서 파 버리겠다’는 말은 굉장히 가혹한 표현인 것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발전된 족보제도를 보면서 감탄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우리 나라처럼 족보가 잘 갖추어져 있는 나라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자기 성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온 우리인데 이제 호적제도 개편으로 자기 성을 함부로 취급해도 좋은 세상이 되고 있으니, 이것이 잘 되는 일인지 잘못되는 일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며, 마치 창씨개명 때와 똑같다고 생각된다.
개편된 호적법으로는, 예를 들면 A라는 여성이 홀로된 후 김씨 성을 가진 아이를 데리고 박씨 성을 가진 이에게 개가를 하면, 아이는 자동적으로 김씨에서 박씨가 되어 버리고, 또 다시 그녀가 이씨 집으로 다시 개가하면 이 아이는 박씨에서 이씨로 성이 바뀌게 되었으니 이게 말이 된다는 것인가!
한편 이 아이의 본가 김씨 댁에서는 대를 이을 후손을 잃어버리는 셈이고, 이아이가 커서 내 본성이 무엇이냐고 찾으려 해도 소급해 찾아 올라갈 수 있는 기록이 없어 찾아가 방법이 없다고 하니 정말 개판이 되고 말았다.
내가 예전에 ‘뿌리(ROOT)'라는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잡혀온 미국 흑인의 자손이 자기 조상을 찾아 아프리카로 가서 서투른 아프리카 말로 족보를 찾아 헤메는 것을 기록한 영화였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자기 조상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자기설의 뿌리가 이렇게 흔들린다면 어찌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해방 후 북한에서는 호적제도도, 족보제도도 봉건주의 잔재라 하면서 없애버리고 가족도 동서로 분산해 살게 하고, 서로 연락할 주소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 형제도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이 제도가 잘된 제도인가? 창씨개명할 때 ‘개새끼’라고 창씨개명한 분의 울분을 알 듣도 하니, 내 마음도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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