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뒤 폐지돼도 제주도내 17개 고교 1학년생들은 3년간 국정교과서로 배워야
이석문 교육감 "피해 없도록 최선 다할 것" 밝혀

만일, 정말 만에 하나 국정농단의 중차대한 시국에도 불구하고 국정화 역사교과서가 채택돼 학교에서 이를 의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 결과적으로 밝혀두면, 제주도내 중학생들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유는 현재 제주도내 중학생들이 1학년 때 역사를 배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2009년에 교육과정이 바뀌고 난 이후부터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추정'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때부터 '교과 집중이수제도'가 채택돼 실시됐는데, 학교마다 역사 교과과정 편성을 달리해서다.

▲ 국정화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이 28일 공개됐다. http://historytextbook.moe.go.kr/main.html을 방문하면 국정교과서 검토본을 살펴볼 수 있다. ⓒ뉴스제주

교과 집중이수제도는 특정 과목을 특정 학년에 몰아서 배울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교육부나 교육청 등 상위 기관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해당 학교의 학교장이 정한다. 이를테면, 교과과정이 그다지 길지 않은 한문이나 미술, 음악 등을 2학년이나 1학년 때 몰아서 배우게 하는 방식이다.

역사의 경우는 학습해야 할 분량이 매우 방대하고 고입이나 대입을 대비하기 위해 주로 2, 3학년으로 교과과정을 편성하는 학교가 생기면서 이러한 사례가 늘게 됐다.

결국 언제부터인가 제주도내 45개 중학교는 모두 1학년 때 역사 교과과정을 편성하지 않게 됐다.

이 때문에 내년에 국정화 역사교과서가 채택돼 이를 의무적으로 가르친다고 해도, 1학년 중학생들은 국정교과서를 볼 수가 없다. 기존의 2, 3학년 중학생들은 기존 역사 교과서를 가지고 진도를 나가고 있었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면 1년 후인 2018학년도부터는 2학년에 진학하는 중학생들이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게 된다. 광주도 제주와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걸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 이유는 내년에 국정교과서가 채택된다해도 현재의 국정상태를 감안했을 때, 정권이 바뀔 가능성이 거의 100%다. 현재의 야당이 정권을 잡게 되면 이 국정교과서는 다시 폐기될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하다.

그 때문에 제주도내 중학생들은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우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 자신할 수 있게 된다.

▲ 공개된 국정화 중학교 역사교과서(왼쪽)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현장 검토본 표지. ⓒ뉴스제주

중학생은 그렇고, 고등학생들은 어떻게 될까.

제주도내 고교는 총 30개교가 있다. 이 중 현재 1학년 때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학교는 17곳이다.

국정화된 역사교과서가 채택되면 이곳 17개교는 의무적으로 이 교과서로 고교 1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렇지 않을 시 교육부로부터 제재를 받게 된다. 28일 검토본을 공개하면서 이미 공개적으로 '경고'를 해 둔 터다.

허나 광주교육청에서는 "결코 국정교과서로 가르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초강경 대응모드 태세로 단단히 벼르고 있다. 제주 지역도 '제주4.3' 사건이 너무 간략히 기술돼 있어 논란이 일고 있는터라 가만히 있지는 않을 심산이다.

게다가 고교 역사교과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한 곳의 지방교육청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 때문에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모인 '시도교육감협의회'는 법률 개정을 통한 방법까지 고려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물론 17개 시·도 가운데 울산시처럼 국정교과서를 찬성하는 지자체도 있다.

이러한 반발을 이미 우려해서인지 이준식 교육부장관(사회부총리)은 이날 국정화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공개하면서 "의견수렴을 받은 후 결정하겠다"며 일말의 협상 카드는 열어 뒀다.

이에 대해 이석문 교육감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교육감은 "내년 3월이 오기전에 법률적인 부분을 검토하면서 대응방안을 마련해 최대한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이 교육감이 말한 '대응방안'에는 국정교과서와 함께 검정교과서를 같이 발행해 학교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교육부에서 이를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그렇게 될 경우, 지방교육청과 교육부와의 싸움은 불가피해진다. 이 때문에 도교육청에선 다른 변수도 고려 중인 것으로 보인다. 허나 아직은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와 논의 중인 단계고, 내년 3월 이전까지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

▲ 이석문 제주특별자치도 교육감은 28일 공개된 국정화 역사교과서에 대한 우려로 기자회견을 자청한 뒤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뉴스제주

그럼에도 만일, 진짜 국정교과서로만 도내 17개 고교 1학년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면 그 후폭풍은 어떻게 될까.

보나마나 내년엔 반드시 정권이 바뀐다. 즉, 국정교과서는 1년 짜리의 시한부 생명인 셈인데, 국정교과서가 채택되고 난 후 폐지 또는 철회되더라도 법률에 의거해 고교 1학년생들은 이 교과서로 3년 동안 배워야 한다.

그래서 문제다. 그래서 이 교육감은 법률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백번 양보해서 사관(史觀)은 다양하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 누구나 안다는 객관적 '사실'을 기록한다해도 기술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게 역사다.

역사학계의 바이블과도 같은 그 유명한 책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H.Carr가 말한 진리에 가까운 주장이다. 그가 이러한 사실을 들으면 뭐라고 할까.

'역사'를 공부한 국정화 역사교과서의 집필진 31명은 이 책을 분명 읽었을거다.
물론 어떤 방식이든 역사를 기술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석문 교육감이 지적한대로 다양한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게 하지 않고 하나의 교과서만으로 가르치려는 태도에 있다. 잘못돼도 너무나 잘못됐다.

특성 사관에 의해 교과서를 만들 순 있다. 허나 그걸로만 배워야 한다는 건 파시즘적 사고나 다름없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다는 양반들이 '다양한' 생각을 못한다는 반증이다.

정권의 아귀다툼, 보다 더 정확히는 박근혜 정부의 어처구니 없는 역사관에 의해 죄 없는 학생들만 이리저리 휘둘리며 피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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