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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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 의하면 백화점 10층 물류창고에서 위탁받아 보관해 오던 물건이 오래도록 찾아가지 안하 혹시 위험물이 아닌가 생각하고 신고한 상자 2개에서 10억원의 현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200만원씩 보관료를 주고 관한 물건의 주인은 주민등록번호도 다르고, 휴대전화 연락도 되지 않는다 하니 이상한 일이다.
이 사건이 잠시 흥미를 끄는 사이, 이번에는 시골 마늘밭 땅속에서 110억원이 출토되었다고 야단법석이다. 무슨 문화재도 아니고, 시중에서 구경하기 힘들다던 5만원권 지폐가 땅 속에서 출토되다니....돈을 맡기고 보관하는 곳은 은행인데, 창고나 마늘밭 땅 속에 보관한다는 것은 분명 부정한 방법으로 긁어 모은 재산임에 틀림없다. 얼마나 부정한 짓을 저질러 모은 돈이기에 남의 눈을 피해 창고나 마늘밭 땅속에 묻어둬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한동안 마늘밭에 검질(김)메러 가서 눈먼 돈이나 봉그자고(줍자고)너도 나도 떠들고 야단이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가 있고 나서 1년쯤 지난 뒤, 서울 무교동의 어느 식당에서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친구가 알고 지내는 사람중에 을지로 입구에 있는 인삼전문매장 모 상회 주인은 개성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재력가였는데, 최근 그가 동생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부쩍 동생이 형의 가게에 나타나 차 한 잔을 마시다가 문득
“형님, 저에게도 좀 배려해 주시지요.”
하고 엉뚱한 말을 한 마디 툭 던지고는, 일어나 나가버리곤 한다는 것이다.
한 두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이런 일이 반복되니, 형은 도대체 동생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고민만 깊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이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니고, 복권에 당첨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단지 ‘혼자 잡수시면 안됩니다.’라고만 말하고 자리를 뜨는 통에 형은 영문 모른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회식자리에서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려준 내 친구는 회심의 미소를 띄며 자신은 그 동생은 왜 그러는지 짐작이 간다고 덧붙였다. 회식에 참여한 일행들은 모두 귀를 쫑끗 세우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청와대 경호실장 차 모씨 고향은 경기도 이천으로 개성과 거리가 가까웠고, 인삼매장 시장과는 평소부터 잘 아는 사이여서 차 씨가 형님집을 자주 드나드는 것을 그 동생도 알고 있었다. 차 실장은 비자금이 생길 때마다 금융기관에 예치하면 신분이 탄로날까과 형님을 찾아와 보관하곤 하는 것을 동생은 눈치 채고 있었다. 평소 믿고 있는 사이라서 차용증이나 현금보관증 한 장 없이 그냥 돈만 보관시켰다는 것을 동생이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던 차에 10.26사건으로 차 실장은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형님에게 보관된 돈을 찾으러 올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아무도 없게 되었다. 동생도 이 사실을 세상에 널리 공개하면, 형을 위해서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그냥 형님이 스스로 알아서 자신에게 일부 배려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일인지, 누군가 짐작으로 꾸며낸 것인지는 모르나 흥미진진한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당시 차 경호실장의 위력으로 보아 눈먼 돈이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큰 자금이 드러나지 않게 관리되기 위해서는 개인 사업을 하는 지인을 통하겨 그런 방식으로 현금을 보관하여야 했을 것이다. 그 뒤로 이 소문이 조용히 끝난 것으로 보아, 헛소문어었는지 아니면 형이 동생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미리 배려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직 대통령도 눈먼 돈을 동생에게 보관시켰다가 돌려 받지 못해 소송까지 하더니만 이번에는 사돈에게 맡겨둔 돈까지 찾아달라고 진정하는 사태에 이르렀고, 전직 박 모 장관도 이런 유사한 일로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을 보았다.
장관이나 대통령을 지내신 체통을 생각하면 동생이나 사돈에게 보관한 돈이 얼마나 되든 그들이 돌려주지 않거든 자기 혼자 속썩이고 말 것이지 기어코 돈을 찾으려고 법에 호소하며 온갖 창피를 당하는 꼴을 보면 인생이 불쌍해 보인다. 우리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인격자를 지도자로 생각했었으니 우리 백성이 더욱 불쌍해진다.
최근에 이르러 정치인들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르는 경우가 많고, 박연차 사건, 저축은행 비리산거 등을 보면 여전히 눈먼 돈이 많이 세상에 굴러 다니는 것 같은데, 눈 앞의 작은 이익만 보고 길고 긴 인생 앞길을 망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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