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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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매주 방송되는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저렇게도 다들 노래를 잘할까 하는 부러움을 느끼곤 한다. 하기야 거리를 걷다 보면, 한 집 건너 노래연습장이 있고, 일반 시민들도 저녁모임이 끝나면 의례 노래방으로 몰려 가 한 가락 불러야 성이 풀리고 있으니, 자연스레 노래를 부르게 된 모양이다.
음치인 사람도 노래방을 드나들다 보면 제법 노래가 익숙해진다고 자랑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음악에 소질이 없을 뿐 아니라, 음치여서 조처럼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성당 미사시간에 부르는 성가도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옆 자리의 아내가 옆구리를 툭툭 치지만, 내가 노래를 부르면 주변 사람들에게 소음피해를 줄 것 같아 꿋꿋하게 안 부르고 버틴다.
현직에 있을 때도 회식이 끝나면 2차, 3차로 가게 되는 노래방에도 안 가니, 모두가 이런 내 성격을 이해하여
“우리만 더 놀다 갈 테니, 먼저 들어가십시오.”
하고 나를 1차에서 보내 버리곤 한다.
그러나 나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은 무척 좋아해서 내 승용차에 언제나 KBS 클래식 음악 채널을 고정시켜 놓아 운행할 때마다 듣고 있다. 음치이고 노래부르는 것도 싫어하는 내가 클래식 음악듣기는 좋아하게 된 데에는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셨던 김종철 선생님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서울대학교 성과대학을 다니던 1956년, 그때에야 뒤늦게 군에 입대하신 김종철 선생님은 동부전선 29사단 정훈감실에 근무했고, 선생님은 매일 낮에 중앙일간지 신문을 가지러 서울에 출장나오는 일을 담당했다. 버스 운행시간 때문에 일찍 서울에 도착하게 되는 선생님은 신문이 나올 시간까지 따로 할 일이 없어 기다리는 시간 동안 혼자 음악다방인 『돌체』나 동아백화점 5층 음악실에 가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혼자 음악다방에 초라하게 앉아 있는 육군 사병인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해 본 나는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어 학교 강의시간을 조절해 가면서까지 선생님과 벗해 드리기로 결심했다. 음악다방에 나타난 나를 보신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쩐 일고?(무슨 일이니?)학교는 쉬는 날가?(날이니?)”
“선생님과 벗해 드리젠(드리려고) 와수다.(왔습니다.)”
“너는 음악에 소질도 없고, 취미도 없는 줄 아는데....음악다방과는 어울리지 않겠구나.”
하며 웃었다. 그 후로도 계속 음악다방에 나타나는 나를 본 선생님은 새로운 결심을 하셨는지
“너, 음악에 소질없다고 자포자기할 게 아니라, 부르지는 않더라도 듣는 것에 취미를 붙일 수는 있는 거다. 음악다방에서는 손님이 주문한 음악을 틀어주게 되었으니, 내가 쉬운 곡부터 차례대로 주문하여 들으며 설명해 줄 테니까 취미를 한 번 붙여봐라.”
하고 말했다.
나는 졸지에 음악 강의를 듣는 학생이 되어 버렸고, 되풀이하여 들으며 설명을 드다 보니 점전 재미가 붙었고, 나름대로 드는 귀도 생기는 것 같았다.
육군 사병으로부터 음악해설을 듣는 대학생인 나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온 지도 2년 가까이 흐른 어느 날 선생님은
“내일부터는 다른 사람으로 교대되어 이제는 서울에 더 이상 못 나오게 되었쪄.(되었다.)” 하셨다.
선생님과 못 만나게 된 것도 서운했지만, 음악 강의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 것도 너무 서운했다
우이독경이라는 옛 말이 있지만, 음악에 취미없던 내 귀에도 클래식 음악을 비롯하여 남의 노래를 듣는 것만큼은 들리게 되었으니, 내 귀는 분명 소귀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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