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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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말고기 식당이 인기를 얻고 있다. 말고기가 우리 몸에 좋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말고기 식당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몇 명이 한 조를 이루어 말추렴하는데. 특히 말뼈가 몸에 좋다고 하여 잡아먹는 말 값의 반을 말 뼈로 충당하기 때문에 싼 값으로 말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자랑한다. 옛날에는 황달걸린 사람은 말을 잡아먹고 말가죽을 뒤집어 써 있어야 좋다고도 했다.
말고기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나에게는 잊지 못할 옛 추억이 새삼 되살아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완전 종식되었다. 그 때 제주에는 만주(중국 동북 3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관동군 8만 여명이 들어 와, 제주도 산과 들뿐 아니라 각 마을에도 일본군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본군 장교들은 거의 말을 타고 다녔고, 수송수단으로 마차가 주로 화물을 실어 날랐다.
이러던 일본군이 천황의 항복으로 패전하게 되자 우리 땅에서 철수하면서 끌고 다니던 말들을 동네 주민들에게 주고 갔다. 우리동네 노형동의 조그만한 월량마을에도 일본군은 8마리의 호마를 주고 떠났다. 동네 어른들은 물려받은 말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의논을 했으나, 우리 농촌에서는 호마를 키우기에 알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호마는 먹이도 많이 먹을 뿐 아니라 촐(건초)을 잘 먹지 않아 보리나 콩을 먹이로 주어야 하는데, 우리 농촌에서 사람 먹을 곡식도 없는 판국에 말에게 식량을 주면서 키울 수는 없다는 것이고, 일도 조랑말처럼 부드럽게 시킬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결국은 “잡아먹자”로 의견 통일이 되어 10여 일 간격으로 한 마리씩 도살을 하였다. 어린 나는 도살현장에 쫓아가 어른들이 소주 안주에 말 간을 맛있게 썰어 먹는 것을 구경하면서 징그럽게 쳐다보았다.
『쓸개없는 말』이라고 옛 어른들이 말했고, 사람이 실없이 굴면 “쓸개없는 말 같이 왜 그래?” 하고 야단쳤는데 소나 돼지는 간이 네쪽인데 말은 이와 달리 간이 하나여서 켰고 쓸개가 간 한구석에 조그많게 형태만 붙여 있는 것을 그때 알았다. 고기 맛 보기가 어려웠던 그 옛날 초등학생 때 일본군 덕택으로 말고기를 실컷 먹었으니 이것이 내가 말고기 먹기의 시작이다.
뒤이어 터진 제주 4.3사건! 1947년부터 시작된 4.3사건은 1948년 늦가을부터 제주도 산간부락을 본격적으로 불태우기 시작했다. 우리집도 불타버려 갈 곳이 없어지자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한라산 속으로 피난을 갔으니 이것이 소위 한라산 폭도라는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한라산 속에는 실제 정부군에 대항하는 폭도들(무장대)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살기 위해 피난간 주민들이어서 한라산 폭도들과는 엄연히 차이가 있음에도 한꺼번에 폭도취급을 받게 되었다.
한라산의 겨울은 눈이 많이 오고 추운데, 먹을 것이 없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들은 야산에 방목하다 4.3사건으로 인해 돌보는 사람없이 버러지게 된 말고기는 기름이 없어 삶은 고기를 싸고 다니면서 먹을 수 있어 좋은 식량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을 눈치 챈 군인들이 말을 총살해 버려 그마저도 말이 씨가 말라 버렸다.
일본군 호마를 잡아먹기 시작하여 우리 조랑말 고기까지 먹고 자라서인지 여태까지 내 건강이 잘 유지되는 것이 혹시 그 덕분이 아닌가 싶다. 말고기 식당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며 잠시 옛 추억을 더듬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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