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지사, 선거구획정위 복귀 요청 빈축 사는 이유?
막다른길 몰려 '뻔한 대책-미사여구'...향방 안갯속

민선6기 제주도정이 표류하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원 선거구획정 작업에 대해 선거구획정위원회에 다시 공을 떠넘겼다. 사실상 막다른 길에 몰려 '독이 든 성배'를 건넨 형국이다.

사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근 한 달간 손을 놓고 있다가 '뻔한 대책'을 꺼내들었다는 점, 또 '조건 없는 수용'을 전제로 한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발언은 미사여구에 그친 수준이라는 점에서 비난을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원 지사는 20일 오전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원 사퇴 의사를 밝힌 선거구획정위원회의 복귀를 공식 요청했다.

그는 "선거구획정위원회 관리.운영 사무의 책임이 있는 도지사로서, 최근 선거구획정이 늦어지고 있는데 대해 도민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추후 선거구획정위가 제출한 획정안에 대해 조건 없이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는 더 이상 시행착오를 거칠 시간이 없다. 현재 상태에서 최대한의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지방선거 파행만은 막아야 한다"며 "사퇴서를 제출한 선거구획정위원회 위원 열한분에게 정중하게 복귀를 요청드린다"고 호소했다.

표면적으로는 선거구획정 작업이 파행을 빚은데 대한 사과와 함께 '백기 투항' 의지를 담은 발언이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정치적 부담을 떠넘기는 '허울 좋은 미사여구'에 그치고 있다.

   
▲ 20일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제주도의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의 복귀를 요청하고 있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뉴스제주

◇ 손 놓고 있다 이제서야?...미사여구 불과한 사과

우선 선거구획정 문제가 한 달에 이르는 시간동안 표류하고 있었음에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가 이제와서 뻔히 예상됐던 대안을 꺼냈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선거구획정위가 전원 사퇴 의사를 밝힌 지난달 24일부터 이날 발표에 이르기까지 제주도정은 선거구획정위에 직접적인 의사 타진은 커녕 사소한 접촉조차 갖지 않았다. 오죽하면 선거구획정위 자체적으로 "이대로는 안되지 않느냐"는 위기론이 오갈 지경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도정은 제주특별법 개정 작업의 성사 여부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 선거구획정위의 정상화는 더욱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럼에도 "오늘 발표했으니 이제부터 접촉을 시작하겠다"는 입장은 사안의 중대성을 깨닫지 못한 너무나 안일한 태도에 불과하다.

원 지사의 발언도 빈축을 사고 있다.

이날 원 지사가 발표한 '조건 없는 수용'은 애초부터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선거구획정위원회는 법률에 의거해 구성된 법정기구다. 그럼에도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국회의원 등 이른바 '3자회동'은 선거구획정위가 제출한 '의원정수 확대' 방안을 무산시켰다. 이제와서 마치 '통 큰 결단'을 한 것 마냥 표현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처사다.

서두에 밝혔듯이 제주도정은 특별법 개정 작업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부입법은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고, 의원 입법은 "도정에서 의원 입법을 하라 말라 할 수 없다"는 식이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곧바로 퇴장한 원 지사 대신 답변에 나선 유종성 특별자치행정국장은 의원정수 확대 등의 방안에 대해 "그것은 법개정 사안이고,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획정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라며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즉, 이번 선거구획정위의 복귀 요청은 '특별법 개정'과는 별개로 선거구획정 작업을 진행해달라는 요구라는 것이다.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선거구획정 방안은 기존의 29개 선거구를 재배치하는 방법 뿐이다. '조건 없는 수용'은 곧 29개 선거구 재배치 방안을 수용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 바뀐 것 없는 상황, 선거구획정위 수용할까

제주도가 공을 떠넘기면서 앞으로의 향방은 안갯속이다.

일단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제주도정의 '복귀 요청'을 받아들일지 부터 미지수다. 앞서 선거구획정위는 제주도정이 위원회의 권고안을 수용하지도 않고 정치적 부담을 떠넘기려고만 하고 있다는 판단으로 전원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당시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선거구획정위가 재차 복귀해 선거구획정 작업을 진행하게 되면 역시 엄청난 부담감을 떠안아야 한다. 그야말로 선거구획정 작업은 '독이 든 성배'로, 어떤 결론을 내려도 반발은 피할 수 없다.

선거구 조정 작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지난달 말 인구수 기준으로 제주도내 지역구 중에는 인구수가 미달되는 곳도 더러 있다. 이를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조정이 가능은 하다. 그러나, 제주지역의 특성상 단순히 행정구역 상의 편제로 선거구를 나누는 것은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 도로 하나 사이를 두고 지역적 특성이나 민심이 확연히 차이나는 마을과 마을의 생리를 단순 인구수만으로 나누기는 어렵다.

선거구획정위가 복귀 요청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제2의 위원회가 꾸려져야 한다. 이 또한 사안의 시급성을 고려할 때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선거구획정안은 관련법 상 내년 지방선거 6개월 전인 12월 12일까지 제출돼야 한다. 오늘을 기점으로 해도 석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새 위원회를 구성하랴,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랴, 더 큰 압박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우여곡절 끝에 획정안이 확정된다 한들 직접적인 당사자인 제주도의회가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하긴 이르다. 이미 꼬일대로 꼬여버린 실타래를 풀기에 이날 제주도정이 제시한 대안은 일차원적인 접근에 불과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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