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동주민센터 강민지

복지 상담을 위해 방문한 집에서 할머니께 귤 두 개를 받았다. 할머니는 주민센터에서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러 왔다며 상자 가득 있는 귤을 가리키며 가져가라고 하셨다. 요즘에 이런 거 받으면 큰일 난다고 거절하니 “내 딸 같아서 그래~ 커피 한 잔도 못 주고, 가면서 먹어” 라며 양손에 꼭 쥐어주신다.

맛있는 귤을 보니 예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복지 기관에 사업비를 지원하는 업무가 많았던 곳이었다. 연말연시가 되면서 사업이 마무리되고 결과 보고서를 받는 시기가 왔다. 기관마다 A4용지가 두툼하게 묶인 서류를 한 아름씩 안고 사무실을 오갔다. 책상, 회의실에는 서류가 차곡차곡 쌓여 산을 이뤘고 직원들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당시에 기관 담당자들은 사무실에 방문하며 친분이 있는 직원들에게 종종 빵이나 음료 등 간식거리를 사 오곤 했다. 그날은 한라봉 한 상자가 사무실에 왔다. 다들 바쁜 터라 누가 가져다 놨는지 몰랐고 사업 결과를 평가하는 때라 받을 수 없다며 한라봉 한 상자는 창고 한편에 놓였다.

결과 보고서 평가를 진행하기 위해 서류를 정리하는데 한 기관의 서류가 한참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제출했다고 하는데 어디에 있는지 담당자는 며칠 애를 먹었다. 찾는 걸 포기하려는 찰나 상자 하나가 생각났다. 주인 없는 한라봉 상자. 혹시나 하며 상자를 열어보았는데 그렇게 찾던 보고서가 거기 있는 게 아닌가. 직원들 모두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결과 보고를 잘 봐달라는 청탁의 한라봉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우리라면 고민하지 않고 보낸 사람을 찾고 반송했을 것이다. 몇 년 밖에 지나지 않은 일이지만 당시에는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몰라 지나쳤다면 이제는 부정청탁이라면 ‘아니오’라고 거절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몇 년이 흘러 지금은 삼양동주민센터 맞춤형 복지팀에서 사례관리사로 일하고 있다. 삼양과 봉개를 아울러 도움이 필요한 주민을 찾아가며 복지 상담을 하는 게 나의 일이다. 많은 분들을 만나다 보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힘써달라는 청탁(?)을 받곤 한다. 그럴 때면 공공 급여 기준에 벗어나는 경우 도움을 줄 수 있는 후원자나 민간단체를 알아보겠다고 말씀드린다. 옛날 한라봉 한 상자에 어쩔 줄 몰라 했던 신입직원이 아니다. 나의 양심을 지키고 직업의식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 그것이 청렴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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