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발표한 제주 제2공항 담화문 내용 살펴보니...
'사람, 자연, 환경'을 최우선 하겠다는 말, 경제논리 개발 앞에선 후순위

글은 다소 즉흥적으로 전하게 되는 말보다 훨씬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말은 한 번 뱉으면 주워담기 힘들지만, 글은 타인에게 보여지기 전까진 언제든 다시 고쳐 쓸 수 있어 그렇다. 상대방에게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를 고려할 때 작성되는 글은 그래서 더더욱 더 신중해진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한 사람의 혹은 어떤 기관이나 단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성명서 등의 발표문은 그것을 전하는 사람의 철학을 대변한다.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어떤 철학이 담겨있는지 그대로 드러난다.

▲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20일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 추진과 관련한 담화문을 발표했다. ©Newsjeju
▲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20일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 추진과 관련한 담화문을 발표했다. ©Newsjeju

제주 제2공항과 관련해 20일 발표된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담화문을 보면 그의 도정철학이 어떠한지 잘 알 수 있다.

큼지막한 글씨로 무려 A4 용지 13장에 걸쳐 써 내려간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에 즈음하여 제주도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배포된 담화문엔 제2공항을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제주도지사의 철학이 잘 담겨있다.

형식적인 면에선 내용이 길어 보이지만 원희룡 지사가 하고자 하는 말은 짧고 굵다.

'제2공항과 관련해 국토부가 오는 6월에 기본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니 그 전에 제주도가 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을 수합해서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골자다.

이 외의 내용은 이 명제에 따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따라오는 후속과제들에 불과하다. 반대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한 갈등해소나 예정지 주민에 대한 보상과 대책 마련, 제주국제공항의 포화상태 강조, 제주 경제지도를 바꿀 기회 등은 부연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날 원 지사가 밝힌 내용에선 그간 '도정비전'이라 누차 강조해 온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제주'는 없어 보인다.

"사람과 자연, 환경이 제주의 최우선 가치"라고 늘상 말해왔던 원희룡 지사임을 고려한다면, 이것이 정녕 원 지사의 도정운영 철학이라면 이날 담화문의 주된 내용은 제2공항으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된 사람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였어야 했다.

형식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구구절절하게 사업 대상지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땅을 국가에 내주고 떠나야 하는 것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가슴 아파하고 진심이 담긴 대책들을 제안했어야 옳다.

그것이 갈등 중재자로서, 제주도정 운영 최고 책임자로서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닌가.

물론 담화문을 그렇게 작성해 발표한다해도 제2공항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그러니 더 기본계획을 중단해야 하는 게 옳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해도 제주도지사라면 그러한 비난과 불만의 목소리도 다시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어루만져야 한다.

단지 글 서문에 "제2공항 입지발표 후 4년째를 맞는 동안 이와 관련한 갈등을 충분히 풀어내지 못해 안타깝고 죄송하다"는 한 문장으로 떼울 성격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와 관련된 내용이 구체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다뤄졌어야 했다.

원희룡 제주도정의 도정비전.
▲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도정비전.

사업 예정지 피해 주민들을 위한 글은 서두의 이 문장과 함께 전체 13장 중 단 1페이지에 그치고 있다.

담화문에선 "지역주민의 합당한 보상과 실질적 지원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곧바로 이어진 문장은 제2공항 추진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잔뜩 나열됐다. 그러면서 제주의 경제지도를 바꿀 사업이니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런 뒤에야 원 지사는 "제2공항이 제주도민을 위한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건설 예정지 주민에겐 주택, 토지 등 삶의 터전을 제공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최대한의 보상을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안마련을 정부에만 의지하지 않고, 제주도 차원에서 자체적인 연구를 통해 정부에 요구하고 제주가 시행할 건 시행하면서 이주와 그에 따른 보상, 소음문제에 대한 대책, 지역주민들의 안정적인 고용과 소득창출 방안 또한 지혜를 모아 정부와 협상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지역주민들의 아픔에 함께 하겠다는 도지사의 각오와 의지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피해 주민들을 위한 건 이 내용이 전부다. 동물 서식지 파괴나 대규모 산림훼손 등 자연환경에 대한 얘기는 아예 있지도 않다. 오히려 국토부가 밝힌 내용을 인용하면서 "오름 훼손도 동굴 훼손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머지 내용들은 제주국제공항의 힘든 현실과 넘쳐나는 관광객 수용력 한계, 입지 선정 과정 등 모두 제2공항 추진 당위성을 보좌해주기 위한 설명들로 가득하다.

원 지사는 "5조 원 가까운 재원이 투입돼 제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책사업이 진행되면 생산유발효과는 3조 9619억 원(전국 6조 7266억),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1조 7960억 원(전국 2조 7498억)에 고용효과는 3만 7960명(전국 4만 9619명), 취업유발효과는 3만 9784명(전국 5만 6326명)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늘어놨다.

이것이 원희룡 지사의 제2공항 철학이다. 제주의 경제지도를 완전히 뒤바꿀 것이라는 경제논리가 우선시되면서 '사람과 자연, 환경'은 자연스레 후순위로 밀렸다. 제주특별자치도청 간판을 그럴듯하게 꾸며놓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원희룡 지사의 민선 7기 제주도지사 취임사 일부.
▲ 원희룡 지사의 민선 7기 제주도지사 취임사 일부.

이 부분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건, 제2공항을 지어선 안 된다는 게 아니다. 당연하게도 제2공항은 '개발'의 논리가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허나 제주도의 비전이 '사람과 자연'에 있다고 공공연히 드러내놓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에 대해선 제2공항 추진 의지만큼이나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사전타당성 용역 재조사 검토결과에 대해 국토부가 만든 결과보고서로 판단하라는 원희룡 지사의 답변은 반대 주민보단 국토부 뜻을 따르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이래놓고서 새로운 각오로 반대 의견에도 더욱 귀를 기울이겠다는 그의 발언은 형식적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제주도정 입장에선 피해 주민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차후에 세울 계획이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제2공항 건설계획이 납득되지 않고 있는 반대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를 고려하면, 제주도정은 어떻게해서든 반대 측과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얘기다.

원 지사는 민선 7기 제주도지사 취임사를 통해 '도민'을 그렇게나 강조했다. 도민이 도정의 주인이고 목적이며 도정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제2공항 사안과 관련해선 그가 말하는 '도민'이 단지 제주도 전체 도민만을 말하는 거여선 안 된다. 그런 논리로 찬성 측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고 말할 게 아니라 제2공항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될 주민들을 우선 도정의 주인으로 여겨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지 않고선 이 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을터다.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인한 갈등 사태가 재연되는 꼴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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