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래의 질병, 기생충 여부, 잔류유기 오염물질, 해양쓰레기, 먹이분석 등 진행
소중한 연구자료 등으로 활용될 듯···골격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전시 계획

이른 아침부터 하얀색 천막 3동 사이를 칼과 쇠 지렛대 등을 손에 쥔 30여명의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녔다. 눈빛은 결연했다. "시작 합시다" 주동자의 비장한 외침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익숙한 손놀림이 한 곳으로 향했다.     

긴박한 상황이 연출됐지만 해양경찰관들은 방관자로 남았다. 삼삼오오 모여든 동네주민들은 두려움과 호기심이 공존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도 나서서 제지를 하는 이는 없었다. 주변에 역한 냄새가 퍼져나갔고, 이들의 눈동자는 커져갔다.  

▲  ©Newsjeju

3일 오전부터 험악한(?) 장면이 연출된 곳은 제주시 한림읍 한수리에 위치한 한림항 방파제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도 아니고, 사건 현장은 더더욱 아니다. 능숙하고 잽싼 몸놀림을 행한 이들은 참고래 부검을 위해 국내 곳곳에서 모여든 연구진 무리다. 

국내 첫 사례로 남게 된 참고래 부검과 연구를 목적으로 WWF(세계자연기금), 서울대학교, 제주대학교, 인하대학교, 한양대학교 소속 관계자들이 제주를 찾았다.

참고래는 길이 약 13m에 무게 12톤가량의 암컷으로, 부검을 집도한 세계자연기금 이영란 팀장은 1살도 채 안된 어린 고래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 약 40km 해상에서 발견된 고래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 약 40km 해상에서 발견된 고래

해당 고래는 2019년 12월22일 제주시 한림항 북서쪽 약 40km 해상에서 조업 중인 어선에 의해 죽어있는 채로 발견됐다. 

당시 제주대 연구팀은 '밍크고래'로 잠정결론 냈으나 DNA 감식 결과 '참고래'로 최종결론 났다. 유통이 가능한 밍크고래와 달리 참고래는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돼, 관련 법령에 따라 폐기대상이 됐다. 이번 부검 및 연구는 이 연장선에서 이뤄졌다. 

해양환경공단에 따르면 참고래는 포유류 중 두 번째로 크다고 알려졌다. 성인 참고래는 대략 24m~27m로, 갓 태어난 새끼 몸길이도 약 6m 내외다.

열대, 온대, 극지원 등 전 세계 대양에서 발견되며 수명은 100년 이상이다. 외형적 특징은 머리 오른쪽 아랫입술과 수염이 흰색인데 반해, 왼쪽은 흑색으로 비대칭을 이룬다. 

제주해역에서는 고래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김병엽 제주대학교 고래·해양생물보전연구센터장은 "제주해역 주변에는 큰 고래들이 많이 발견 된다"며 "추정해 보건데 어장이 잘 형성돼서 안정적으로 먹이 공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검 집도를 주도하는 이영란 세계자연기금(WWF) 해양보전팀장
부검 집도를 주도하는 이영란 세계자연기금(WWF) 해양보전팀장

이날 부검을 통해서는 죽은 참고래의 사망원인을 규명하게 된다. 일종의 고래에 대한 연구과정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참고래의 질병, 기생충 여부, 잔류유기 오염물질, 해양쓰레기, 먹이분석 등이 이뤄진다. 

부검을 주도한 WWF 이영란 팀장은 "(국내 참고래 부검이 처음이니) 참고래의 사망 경위 등이 확실치 않지만 외국 사례는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나 기생충으로 인한 감염 등이 존재 한다"고 말했다.

이어 "또 다른 외국사례는 경우는 기후변화에 따른 어장 형성 파괴로, 알래스카 쪽에 있는 고래들은 먹이를 먹지 못해 죽은 사례가 있다"며 "간혹 배에 부딪치거나 그물에 걸려 죽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영란 팀장은 또 "보통 고래들은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데 이번에 제주해역에서 죽은 참고래는 아마도 동중국해에서 먹이를 찾다가 떨어져 숨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하며, "해양생물학적으로 연구 가치가 높은 부검"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참고래 부검을 위해 제주대 등 5곳에서 합동으로 나섰다.
고래 외형을 확인하는 장면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참고래 부검을 위해 제주대 등 5곳에서 합동으로 나섰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참고래 부검을 위해 제주대 등 5곳에서 합동으로 나섰다.
참고래 가스빼기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참고래 부검을 위해 제주대 등 5곳에서 합동으로 나섰다.

부검은 숨진 채 뭍으로 올라온 참고래의 전체외형을 확인하며 시작됐다. 이윽고 고래 배 부위를 칼집 내 가스빼기 작업을 진행했다. 곧바로 역한 냄새가 주변을 에워쌌다. 

순차적인 절개부분을 결정해 빠른 손놀림들이 오갔고, 참고래 견갑골 제거와 복강·흉강 노출이 이어졌다. 일반 생선과 달리 크기가 대형급 고래인지라 두터운 살을 부분적으로 뜯어냈다. 척추 주변 근육 제거에만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 참고래의 위로 추정되는 부위에서 길이 1m 20cm 가량의 낚싯줄이 나왔다. ©Newsjeju
▲ 참고래의 위로 추정되는 부위에서 길이 1m 20cm 가량의 낚싯줄이 나왔다. ©Newsjeju

참고래의 위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길이 1m20cm 가량의 낚싯줄이 나오기도 했다. 연구진은 각 부위별 장기마다 샘플을 확보해 참고래의 질병이나 잔류유기 오염물질 등 분석에 나서게 된다. 

부검이 최종 완료되면 골격(뼈) 부위는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폐기물로 분류, 육지부로 반출된다. 골격은 추후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 보관·전시될 계획이다. 

이영란 해양보전팀장은 "장기 등 샘플링을 갖고가서 실험실에서 주요 검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참고래 사망원인 등) 결과는 한 달 정도 소요될 듯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참고래 부검에 앞서 돌고래보호 단체가 현장에 참석, 부검 전 참석자들과 함께 고래의 사망을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참고래 부검을 위해 제주대 등 5곳에서 합동으로 나섰다.
부검 전 애도의 시간을 갖는 모습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참고래 부검을 위해 제주대 등 5곳에서 합동으로 나섰다.
부검 과정을 지켜보는 김병엽 제주대학교 고래.해양생물보전연구센터장(가운데)
부검 과정을 지켜보는 김병엽 제주대학교 고래·해양생물보전연구센터장(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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