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방법원, "고유정, 전 남편 살인 잔인할 정도로 계획적으로 진행해"
"의붓아들 사망은 고유정 범행이라는 의심스러운 상황 병존하나...확실한 증거 없어 무죄"

▲ 20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정봉기 부장판사)는 1심 판결로 '전 남편 살인사건'에 대해 고유정에 '무기징역'을, '의붓아들 사망사건'은 혐의 불충분 무죄를 내렸다.    ©Newsjeju
▲ 20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정봉기 부장판사)는 1심 판결로 '전 남편 살인사건'에 대해 고유정에 '무기징역'을, '의붓아들 사망사건'은 혐의 불충분 무죄를 내렸다.    ©Newsjeju

'전 남편 살인사건'과 '의붓아들 사망사건'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이 1심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무죄'를 선고 받았다. 앞서 검찰의 사형 구형에 비해서는 낮은 형량이다. 

20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정봉기 부장판사)는 1심 판결로 '전 남편 살인사건'에 대해 고유정에 '무기징역'을, '의붓아들 사망사건'은 혐의 불충분 무죄를 내렸다.   

이날 재판부는 전 남편 살인사건과 관련해 그동안 고유정이 주장해왔던 '우발적 범행'을 받아드리지 않았다. 계획된 살인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고유정이 전 남편 살해를 위해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한 것으로 판단했다. 근거로는 ▲졸피뎀 성분이 포함된 약을 청주집에서 18km 가량 떨어진 병원에서 처방받고, 다음날 제주로 입도한 사안 ▲범죄 발생 팬션 내 국과수 혈흔 형태 분석 결과 고유정의 피해자를 여러 차례 찌른 내용 ▲사전에 인터넷 쇼핑 등으로 휴대용 가스 버너 및 범행도구 구입 내용 등이다.

특히 재판부는 "고유정은 전 남편 살해 전 인터넷으로 졸피뎀, 팬션 내 CCTV, 혈흔, 뼈 무게, 뼈의 강도 등 구체적인 내용을 검색해 봤다"면서 "사전에 구입한 도구들과 살인에 있어 대단히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고유정은 전 남편 살해 후 '성폭행 미수'로 고소하겠다는 문자를 발송하고, 같은 날 피해자의 문자를 조작해 '사과한다'는 내용을 만들었다"며 "이 역시 '의도적인 계획'이다"고 했다.

또 "전 남편이 면접교섭 끝에 2년 만에 친아들을 만나게 됐는데, '그 당시 성폭행을  피해자가 시도했다'는 고유정의 주장은 선듯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무기징역 양형 사유를 두고는 "졸피뎀을 이용해서 살인하고, 철저하게 사체를 은닉까지 하는 등 죄질이 대단히 불량하다"며 "이는 어떤 방법으로도 회복될 수 없는 참혹한 결과로 한때 가족이었던 고유정의 손에 피해자를 잃은 유족들을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또 "고유정은 피해자와 유족들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오히려 '성폭행하려고 했다'는 납득 불가한 변명을 하고 있다"며 "범행의 잔혹성과 피해자 유족의 슬픔, 사건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 등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 병합 등 변수 많았던 고유정, '마라톤 재판'으로  

고유정 사건에 대한 제주지법의 선고는 지난해 8월12일 첫 재판 시작 후 192일 만이다. 

'전 남편 살인사건'은 범행의 잔혹성과 대담한 수법으로 전국적인 이목을 끌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여기다 수사 중간에 현 남편의 아들이 숨진 사건이 다시 재조명되며,'의붓아들 사망사건'까지 더해져 고유정은 뜨거운 주목을 끌게 됐다.

실제로 고유정의 실물과 재판을 관람하고 싶은 문의가 잇따르자 제주지방법원은 두 번째 공판(2019년 9월2일)부터 방청을 원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진행했다.  

제주지법의 선고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고유정이 전 남편 살인사건과 관련해 '우발적 범행'을 주장, '계획적 범행'을 내세우는 검찰 측과 각자의 논리를 입증하는데 많은 시간이 할애됐다.  

재판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전 남편 살인사건의 수사를 진행했던 담당자들이 증인으로 나와 숨진 피해자의 DNA와 졸피뎀 등 계획적/우발적 범행의 연관성 공방을 이었다. 이 연장선으로 고유정의 오른손에 났던 상처가 '방어의 흔적'인지 '공격의 흔적'인지 여부도 쟁점으로 다뤄졌다.

2019년 9월16일 속행된 3차 공판에서는 재판부가 고유정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3차 공판에서는 증인 심문이 예정됐으나 앞선 두 차례 재판에서 진술기회를 침묵으로 일관했던 고유정이 돌연 발언기회를 요구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당시 변호인 측은 "(A4용지로 작성된 내용을 고유정이) 직접 낭독할 기회를 달라"며 A4용지 16장 분량을 재판부와 검찰에 각각 전달했다.

재판부는 "이미 법률상 진술의 기회를 줬었는데, '따로 할 말이 없다'고 하다가 (갑자기) 오늘 진술요구는 받아드리기 힘들다"며 "고유정이 아닌 변호인이 대리 작성한 것 같은데, 차라리 직접 자필로 작성해서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유정은 4차 재판(2019년 9월30일)에서 사건과 관련된 첫 말문을 열었다. 전 남편 살인은 '우발적' 범행이라는 주장의 연장선이다. 전 남편에 졸피뎀을 섞은 카레를 먹이지도 않았고, 남편의 추행을 거부하다가 사건을 저질렀다는 내용이다. 검찰 측은 즉각 고유정의 진술을 전면 부인했다. 

재판 진행과정 변수도 많이 존재했다. 당초 정해진 계획대로 재판은 흘러가지 않았다. 1심 결심공판은 당초 2019년 11월18일로 예정됐으나 고유정 변호인이 최후 변론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같은 해 12월2일로 한 차례 연기됐다. 

그러나 이튿날(11월19일) 충청북도 청주시 검경 등이 조사를 진행했던 '의붓아들 사망사건'이 '전 남편 살인사건' 재판과 병합 결정이 나며 마라톤 형사재판으로 확장됐다.

2019년 12월2일, '전 남편 살인사건·의붓아들 살인사건' 병합 후 첫 공판이 시작됐다. 고유정 재판은 해를 넘겼고, 2020년 1월20일 검찰 측은 고유정에 '사형'을 구형했다. 

올해 2월10일 고유정은 1심 마지막 공판에 나서 성추행에 따른 '우발적 범행'을 재차 주장하며 "청주 (의붓아들) 사건도 그렇고 저는 제 목숨과 아이를 걸고, 아닌 것은 아니다"며 "제가 믿을 곳은 재판부 밖에 없으니, '저 여자가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현명한 판단을 부탁 드린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 고유정은 전 남편을 왜 죽였고, 어떻게 치밀했나

고유정은 자신이 살해한 전 남편과 2013년 6월 결혼, 이듬해 11월 아들을 출산했다. 그러나 2016년 부부관계가 사실상 파탄에 이르렀고, 별거를 시작했다. 

2017년 6월 법원의 조정으로 전 남편과 이혼이 성립된 고유정은 같은 해 11월 현 남편과 혼인신고를 마쳤다. 2018년 6월부터는 현 남편과 청주에서 함께 생활 지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고유정은 지난 결혼생활 파탄 책임을 전 남편에게 전가하며 아들에 대한 면접교섭을 요구를 거부했다. 이 시점부터 고유정이 피해자 전 남편에 대한 적대감이 최고로 다다른 것으로 재판부는 판단했다. 결국 숨진 전 남편은 2018년 10월 법원에 '면접교섭권 이행명령' 신청을 제기했다.

고유정은 총 3회에 걸쳐 '면접교섭권 이행명령'을 거부, 법원으로부터 불응에 따른 과태료 처분을 받자 면접교섭을 진행키로 했다. 

제주도내 모 펜션에서 시작된 전 남편 살인의 비극은 바로 '면접교섭권 이행'에 따른 절차 과정에서 폭발했다. 

2019년 5월18일 전라남도 완도항에서 자신의 차량을 싣고 제주로 내려온 고유정은, 입도 일주일 후인 5월25일 전 남편과 아들과 함께 면접교섭을 진행했다. 이후 같은 날 저녁 자신의 이름으로 예약한 제주시 조천읍 펜션에서 전 남편을 살해했다. 

전 남편을 살해한 고유정은 대담한 행동에 나섰다. 사체를 훼손하고, 유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펜션 내부에서 피해자의 시신을 훼손한 고유정은 캐리어에 옮긴 후 5월28일 제주-완도 여객선 항로에 일부를 버렸다. 나머지 사체는 고유정의 친정이 소유한 김포시에서 훼손하고, 쓰레기분리시설에 나눠 유기했다. 

살인 및 사체 훼손과 함께 고유정은 경찰 수사를 방해하기 위한 치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고유정은 경찰 수사에 혼선 위해 제주를 떠나기 전인 2019년 5월27일 낮 119에 신고, 다친 것처럼 병원에 다녀갔다. 

같은 날 오후는 자신이 살해한 전 남편이 성폭행을 하려다 행방을 감춘 것처럼 알리바이를 조작하기 위한 목적으로, 피해자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미안하다'는 내용의 문자를 발송하는 등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또 고유정은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주장, 경찰은 초동수사 과정에서 고유정의 진술을 토대로 첫 검거까지 시간이 지체됐다. 제주경찰은 2019년 6월1일 고유정을 충북 청주 자택에서 긴급체포, 6월4일자로 구속했다. 

 

#. 의붓아들 사망사건 무죄, 왜 증거불충분?

현 남편의 아들이자 고유정의 의붓아들 A군(당시 6세)은 2019년 3월2일 오전 10시쯤 충북 청주시 상당구 현 남편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수사에 나섰던 청주 경찰은 A군의 사인을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판단, 고유정의 현 남편에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남편이 잠결에 몸으로 자신의 아들을 눌렀다는 판단이었다. 

'과실치사'로 결론날 것 같던 '의붓아들' 사건은 고유정의 전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 전국적인 사안으로 떠오르면서 재수사에 들어갔다. 결국 청주 경찰 등은 고유정이 의붓아들을 질식사 시킨 것으로 방향으로 틀었다. 

'전 남편 살인사건'으로 재판을 잇던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부장판사 정봉기)는, 2019년 11월19일 '의붓아들 사망사건'을 병합하기로 했다. 

20일 1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고유정이 의붓아들을 살해했다는 의혹은 병존하나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쟁점 공소사실은 고유정이 현 남편에게 수면제 성분이 들어있는 차를 마시게 하고, 현 남편이 잠이 든 사이 (고유정이) 의붓아들 등 위에 올라타 제압하고, 질식사하게 했다는 것"이라면서 "고유정은 수사 과정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유정이 의붓아들을 죽였다는 결론에 도달하려면 현 남편에 수면제 성분을 타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현 남편이 바로 앞 식탁에 앉아있는 상황에서 대담하게 넣었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며 "효능을 사전에 알아보지도 않았고, 전 남편 살인사건 경우 많은 인터넷 검색을 사전에 했던 점 등을 토대로 보면 '의붓아들 사망' 과정은 고유정의 치밀함이 떨어진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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