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행안부에 제출한 예산편성 기준 의견서 내용 살펴보니 '경악' 수준
세출효율화라는 명분으로 의회 심의 없이 예산 편성하겠다는 의견 제출

# 최승현 행정부지사 "그런 공무원 있다면 징계해야"

▲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특별자치도의회. ©Newsjeju
▲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특별자치도의회. ©Newsjeju

예산집행의 견제와 감시를 해야 하는 제주도의회를 원희룡 제주도정이 대놓고 무시하는 행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특별자치도 출범으로 '제왕적 도지사'라는 비판이 이는 것을 넘어 아예 의회의 기능을 무색케하려는 의견서가 행정안전부에 제출됐는데 그 내용이 심각한 수준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위원장 송영훈)는 19일 제383회 정례회 1차 회의를 열어 2019년 회계연도 결산안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김경미 도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이 원희룡 제주도정에 대한 충격적인 내용을 공개했다.

김경미 의원이 이날 공개한 내용은 제주자치도가 올해 3월 25일자로 작성한 '2021년도 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 제도개선 의견'이다. 예산담당관의 전결을 받아 행안부에 제출됐다.

우선 '행사 실비지원금 세출과목 해소 명확화라'라는 내용을 보면, 산업시찰 견학 참여 예산 편성기준이 모호하다며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음에도 의회가 증액한 사례가 빈번해 개정안으로 현행 실비지원을 아예 삭제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이런 의견엔 일정 부분 동의하는데 문제는 '포상금 세출과목 명확화'라는 내용에선 모범 공무원에 대한 산업시찰의 범위에 청원경찰과 무기계약 근로자까지 포함시켰다"며 "이 부분 역시 형평성 차원이라는 점에서 이해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은 "허나 민간 부분에선 의회가 증액한다는 이유로 전액 삭감시켜 놓고서는 공무원들에겐 포상금과 상여금을 줄 수 있고 산업시찰을 보낼 수 있다고 명시했다"며 "이런 내용으로 행안부에 제주도가 의견을 보냈는데, 이거 알고 있느냐"고 최승현 행정부지사에게 물었다.

▲ 김경미 제주도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Newsjeju
▲ 김경미 제주도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Newsjeju

최승현 부지사가 모른다고 답하자, 김 의원은 또 다른 사례를 꺼내 들었다.

김 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제주자치도는 출연금 과목에서 지방의회로부터 심의를 받지 않고 예산을 편성·집행할 수 있는 항목을 만들었다. ▲예산편성이 타당할 시 ▲재난재해 시 ▲예비비 또는 국비 지원분에 대해선 사전에 의회 동의 없이 예외 규정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이를 두고 김 의원이 "결국 이건 재난재해 시엔 의회 심의를 안 받겠다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자, 최 부지사는 "공무원이 그런 의도로 의견서를 냈을까 의문"이라며 전혀 알지 못했다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또 다른 예시를 꺼냈다.

김 의원은 "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규칙 개정안은 더 무섭다"며 "종전의 예산편성 10가지 규칙에 11조를 첨부했는데, 11조 내용은 '지방자치단체장은 재정운영상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경상경비 등 지방예산 절감을 위해 지역경제 활력화 사업에 투입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며 "결국 이건 세출효율화라는 명목으로 세출구조조정을 지방의회 심의의결 없이 자치단체장이 독단적으로 집행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내용이 한층 더 심각해지자, 최 부지사는 "지적한대로 의회를 무시하는 의도로 작성했다면 그 공무원은 징계를 해야 한다"며 김 의원의 지적에 동의했다.

그럼에도 김 의원은 "더 있다"며 멈추지 않았다. 

김 의원은 "보조금 예산편성에서 계속 사업의 경우, 예산편성 시 지방보조금 심의 대상은 전년 예산 대비 30% 이상인 경우에만 심의한다는 내용을 담아놨다. 이러면 30% 이상 증액된 사업만 보조금심의를 받고 30% 이하인 사업은 도청에서 그냥 증액해서 집행하겠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또한 김 의원은 "의회 심사 시 증액된 보조사업은 공모 절차 제외 대상인 경우라도 증액된 부분까지 지원하려면 교부금 결정 전 교부금 심의를 받아야 한다고 지난 5월 1차 추경안 심사 때 이를 지적해 감사위원회에 회부한 바 있다"며 "그런데도 제주도정은 30% 이상 증액된 사업만 심의를 받고 그 이하는 심의를 안 받고 하겠다는 거냐. 대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추궁했다.

▲ 최승현 제주자치도 행정부지사. ©Newsjeju
▲ 최승현 제주자치도 행정부지사. ©Newsjeju

당황스러움을 느낀 최 부지사가 그 문건이 누구 전결로 나간 것이냐고 묻자, 김 의원은 직접 문서를 들어 보였다. 옆에 있던 제주도 관계자가 작은 목소리로 '예산담당관'이라고 최 부지사에게 알려줬다.

김 의원은 "내년도 본예산 편성할 때 행안부가 이 의견을 듣고 지침을 내릴텐데, 시도의장단협의회에선 이를 두고 심각한 행정편의주의라고 지적까지 했다. 창피하지도 않느냐"고 꼬집었다.

최 부지사는 "매년 제출하는 거라고 하던데... 글쎄요. 의회 보고를 안 하는 사안이라 할지라도 미리 알려드려야 정상적"이라며 "저도 그렇지만 도지사도 그 문장을 봤다면 그렇게 쓸 수도 없었을 것이다. 문건을 작성한 공무원이 이상하다"고 답했다.

즉, 행안부에 제출된 의견서가 부지사나 도지사를 거치지 않고 과장 전결에 그친 뒤 곧바로 제출됐다는 얘기다.

김 의원은 "이렇게 제주가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제왕적 도지사라는 말을 정말 많이 쓰고 있는데 이건 아예 의회 기능을 죽이자는 것"이라며 "담당자 이름도 다 적혀있다. 예결위에 명확히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한 가지 내용을 더해 집행부의 잘못된 관행과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김 의원은 "예산의 '이용'은 도의회 의결 사항이다. '전용'은 도지사의 결제사항이지만 의회 보고사항이다. 보조금심의위원회 수당이 '이용'됐는데도 의회 의결을 받지 않았다. '전용'을 한 경우는 도지사 결제도 없었고, 의회 보고도 없었다. 이게 5000만 원이나 된다"고 공개했다.

최 부지사가 "예산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고 얼버무리려 하자, 김 의원은 "그러면 2차 추경에 올라왔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없다"며 "이렇게 의회를 경시하고 존중하지 않고 있는 건 도민의 대의기관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으로 심각한 문제다. 바로 잡아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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