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주년 광복절 행사서 또 드러난 '내로남불' 스타일
정치적 권모술수만 가득해 보이는 언행들... '진심'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김명현 기자. ⓒ뉴스제주
김명현 기자. ⓒ뉴스제주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의 대권 도전이 이 정도면 수난기에 가깝다.

보통, 대개 제주 출신 인물이 대통령이 된다고 하면 어느 제주도민이 이를 반겨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설령 정치적 견해가 다르더라도 역사상 첫 '제주 출신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은 모든 갈등을 씻어낼 수도 있는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일 터다.

허나 원희룡 제주지사에게만큼은 그런 기대감이 단 1도 들지 않는다. 공부를 잘해서? 능력이 뛰어나서? 제주 출신 처음으로 사법고시를 수석 졸업했다는 후광 효과 수명은 진즉에 끝났다.

혹자에겐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세배를 올릴 때부터, 혹은 제주4.3에 무관심했던 서울 양천구 국회의원 시절 때부터, 아니면 쳐다도 안 보던 제주도지사 선거에 나설 때부터 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그 후광 효과로 재선까지 해먹었으니 능력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니, 그보단 제주도가 어느샌가 보수 세력이 TK에 버금간다고 아니 할 수가 없는 지역이 됐다는 점 때문일까.

하지만 제주지역 총선에서 민주당이 20년 동안 독점하다시피 한 걸 보면 그것도 아니다. 무소속 출신으로 당선이 많았던 걸 보면, 당이 아닌 인물따라 갔고, 이는 그간 '줄 세우기'로 형성된 카르텔이 크게 작용했음을 누구라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만큼 도지사 라인에 잘 서야 퇴직하고나서도 뭔가를 계속 영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그런 카르텔을 형성했을터다. 이를 보면 과거 '제주판 3김 시대'나 지금이나 별다른 게 없는 정치 지형이다.

지난 15일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가한 원희룡 제주도지사.
지난 15일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가한 원희룡 제주도지사.

최근 원희룡 지사의 행보는 정말 대권을 향해 가는 것인지, 아니면 차차기 대선을 향한 초석 다지기인지, 혹은 도지사 3선 도전을 위한 밑밥 뿌리기인지 아리송하나 이 셋을 다 염두해 두는 것 같다.

이 셋 모두 특정 지지자들만이 아니라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특히나 대권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사 논란은 어떻게 보면 참 시의적절한 그의 권모술수로 비춰진다.

보통 대선 후보주자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 이를 수습해야 하건만, 그건 지지율이 어느 정도 나오는 주자에 대한 얘기로 한정된다.

대선 주자들로 불리는 후보군 중 지지율이 2%에 불과한 원희룡 제주도지사에겐 오히려 논란을 키우는 게 이득인 셈이다. 그래서 이번 제75주년 광복절 행사는 그에게 있어 정치력을 끌어 올리기 위한 '도구'처럼 비춰진다. 때마침 광복회의 기념사가 자신의 발언에 정당성을 안겨 줄 절호의 찬스로 여겼을 거다.

발언에 대한 논쟁을 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일단 김원웅 광복회장의 주장은 보수 세력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원 지사가 지적한 것처럼 또 국민분열을 조장하는 기념사라고 비판할 수 있다. 원희룡 지사가 그 점을 짚긴 했으나 논점을 벗어나 논란을 의도적으로 확대시킨 부분이 분명히 있다.

친일청산이 일제시대 때 어쩔 수 없이 일본 편에 섰다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 때 독립을 위해 애썼던 국민을 돕지는 못할 망정 독립투사들을 처단한 국민들이 있었고, 땅을 빼앗아 부를 축적해 나라의 경제성장에 이바지한 이들 중 일부가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는 건 잘못된 것이 맞다. 그걸 이장하고 파묘하자는 주장이었고, 원 지사를 비롯한 보수세력은 이를 '또 다른 국민분열'이라는 단어로 확대시켰다.

어쨌든 결국 논란은 벌어졌고, 원희룡 지사는 제주 모든 언론의 1면 탑을 장식했다. 허나 그 뿐,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 파장이 너무 커 여야 정쟁으로 번졌고 원희룡 지사의 경축사 논란은 제주에서만의 논란으로 그쳤다.

이 상황에서 제주에선 후속기사들로 계속 문제가 불거지자, 제주자치도는 좌남수 의장과 이석문 교육감을 모시는 의전팀에게 '4.3 추모배지'를 달지 말자고 제안한 것이 송종식 총무과장이 단독으로, 자체적으로 판단해 벌인 일이라고 해명에 나섰다. 정말 이 말을 믿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 준비해뒀던 경축사 대신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를 비판하고 있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Newsjeju
▲ 준비해뒀던 경축사 대신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를 비판하고 있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Newsjeju

송종식 총무과장은 4.3 동백꽃 배지가 경축 분위기와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체 판단을 내려 제안한 것이라고 둘러댔다. 만일 그렇다면 송종식 총무과장이 원희룡 지사에게도 이를 건의했을테고, 원 지사가 수용했기에 좌남수 의장과 이석문 교육감에게도 전달이 됐을 게 아닌가.  

원 지사는 지난해 광복절 때에도, 최근에도 항상 4.3 동백꽃 배지를 달아 왔다. 그런 태도에서 돌연 갑자기 왜 태세를 바꿨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본인이 직접 생각해 낸 게 아니라, 부하 직원의 제안으로 결정했다는 게 더 부자연스럽다. 총무과장이 독심술을 지녀 원 지사의 마음을 헤아렸다는 말인가. 만일 그렇다 할지라도 원 지사가 제주4.3에 '진심'을 담고 있었다면 총무과장의 제안을 왜 받아들였나를 묻지 않을 수가 없는 지점이다. 

이러니 자연스레 원 지사가 광복회의 기념사를 사전에 미리 파악하고서 이런 준비를 취한 게 아니었겠느냐는 합리적 의구심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대해 제주도정은 아니라곤 하지만, 도지사의 재가가 있지 않고선 도의회와 교육청에게 요구할 수 없는 일이란 건 당연하다.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를 정치적 공세라고 비판한 원희룡 지사의 이날 언행도 정치적이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내로남불)'이라는 식의 그의 태도는 이날도 여전했다.

게다가 광복회에 대한 집행 제한으로 경축식 행사를 보이콧하겠다는 원희룡 지사의 협박성 발언은 결단코 '큰 그릇'이 돼야 할 대통령의 재목감이 아니다. 제주녹색당이 비판한 것처럼 정말 유치하다 아니할 수가 없다. 국민 혈세로 집행돼야 할 공공 행사가 '도지사'가 아닌 '원희룡' 철학에 맞춰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말 안 들면 나가' 이건가.

틈만 나면 온갖 권모술수가 가득한 정치적 언행으로 나서고 있는 원희룡 지사. 이번 광복절 경축사 논란처럼 제주4.3이나 제주도민들도 그에겐 단지 '대권'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일 뿐인 것인가. 과연 그에게 '진정성'이란 게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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