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정의 꼼수 '보조금 심의' 이젠 못한다
제주도정의 꼼수 '보조금 심의' 이젠 못한다
  • 김명현 기자
  • 승인 2020.09.23 16: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정안전부, 제주도감사위 모두 
지사가 동의한 의회 증액 의결 예산, 재심의는 적절치 않다고 판단

# 행정안전부 회신 받아도 숨기기 급급했던 제주도정

제주특별자치도가 그간 보조금심의위원회를 통해 제주도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증액을 다시 심의해왔던 관행을 이젠 못하게 됐다. 행정안전부와 제주도감사위원회가 그간 제주도정이 잘못해 왔다고 판단해서다.

예산 편성은 집행부의 고유 권한이나 의결은 의회의 고유 권한이다. 예산을 제주도정이 편성했다 하더라도 의회에서 의결 해주지 않으면 집행할 수 없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도의원들이 일명 '지역구 챙기기'로 집행부가 계획했던 예산 일부를 감액하고 지역구 사업에 증액을 할 경우에 발생한다.

도의원들은 자신의 공약사업이나 지역민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대의기관에 해당되기에 의원들의 예산 증액 요구는 일면 타당하다. 허나 이로 인해 당초 계획했던 집행부의 예산 집행 계획이 차질을 빚기 때문에 종종 갈등을 빚어왔다. 

이 때문에 과거 제10대 도의회에선 집행부와 의회 간에 물고 물리는 '예산전쟁'을 한바탕 치르기도 했었다. 과거엔 과도하게 증액요구가 횡행해 왔으나, 예산전쟁을 계기로 많이 줄어들었다. 허나 의원들의 예산 증액 요구는 여전했고, 의결 없인 집행할 수 없었던 제주도정은 개정된 지방재정법을 빌미로 '보조금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이곳에서 모든 민간 단체에 지원되는 보조금을 심의하기로 했다.

제주특별자치도청.
제주특별자치도청.

의회에서 증액된 예산은 반드시 지방자치단체장이 '동의'를 해야만 의결할 수 있다. 동의하지 않으면 집행부는 예산을 다시 손질해야 하고, 의회는 다시 심의해야 한다. 이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해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법정 다툼까지 가게 된다. 다음 년도 예산을 집행해야 할 시기에 이 사태가 빚어지면 엄청난 행정력 낭비가 초래된다.

반면, 도지사가 동의하면 그대로 집행된다. 문제는 여기서 다시 벌어졌다. 도지사가 동의한 후 의결된 예산안을 제주자치도 보조금심의위원회에서 다시 심의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제주도정은 예산 편성 시 심사 외에 공모절차에 따른 심의 과정에서 교부세법 시행령에 따라 모든 보조사업은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내세웠다. 이렇게 되자, 의원들은 의결까지 거친 예산안을 다시 심의하는 건 '옥상옥' 문제가 발생한다며, 행정안전부와 제주도감사위에 법령 위반 여부를 해석해달라는 질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게 올해 6월께였고, 행안부는 8월에 답신을 보내왔다. 허나 제주도정은 재차 국민신문고를 통해 이 건을 문의했고, 그 답변이 지난 9월 8일에 나왔다. 제주도의회가 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제주도정은 정보공개법을 들먹여 두 번이나 연장하면서 이를 거부해왔다.

그러다 23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위원장 이상봉)가 이날 제387회 임시회 제4차 회의를 진행할 때, 질의답변이 오가면서 그간 제주도정이 이를 공개하지 않고 숨겨왔던 이유가 드러났다.

제주도정의 판단이 틀렸기 때문이었다. 행정안전부나 제주도감사위원회 모두 지방자치단체장이 동의해 의결된 예산안을 다시 심의해선 안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도감사위는 이를 두고 제주도정에 기관 '주의'를 통보했다.

이를 두고 제주도의원들은 "이게 과연 '주의'로 그칠 문제냐"고 일제히 호통쳤다.

▲ 제주도정의 잘못된 판단을 지적하고 있는 강철남, 고현수, 이경용 의원과 이상봉 행정자치위원장. ©Newsjeju
▲ 제주도정의 잘못된 판단을 지적하고 있는 강철남, 고현수, 이경용 의원과 이상봉 행정자치위원장. ©Newsjeju

# 여전한 솜방망이 처분으로 독립성 지위 못 갖추는 도감사위
# 의회 의결권 무시하고 시간낭비 초래 지적에 기획조정실장, 공식 사과
# 기조실장 사과에도 예산담당관은 애매한 표현으로 도의원들 심기 긁어

명백히 제주도정이 그간 잘못해왔다는 점이 드러난 것인데, 제주도감사위는 이를 그저 '주의' 정도로만 그쳤다. 이유가 있었다.

당시 보조금심의위원회를 관장하는 예산담당관이었던 강만관 정책기획관이 최근 인사단행으로 제주도감사위원회 사무국장으로 발령됐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제주도정은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는 비난을 이날 업무보고 자리에서 또 들어야 했다.

이를 두고 고현수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은 "이게 과연 주의 처분으로 끝낼 문제인거냐"며 "법적, 제도적 근거 없이 의회의 의결권을 무시하고, 무력화시켰고, 서로 행정력을 낭비시킨 사태에 대해 제주도정이 도의회와 도민에게 정식으로 사과해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질타했다.

이에 현대성 기획조정실장은 "보조금을 투명하게 집행하고자 한 의도였었는데 결과적으로 도지사의 동의를 얻고 증액한 예산을 다시 심의받도록 한 부분에 대해 안 받아도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집행부가 면밀히 검토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사과를 드린다"고 답했다.

허나 고현수 의원이 "사과 내용이 명확치 않아 보인다"고 지적하자, 현대성 실장은 다시 "의회 의결권을 존중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의회의 지적이 맞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사례가 없도록 의회 의결을 존중하겠다"고 거듭 사과 의사를 표현했다.

하지만 정작 안우진 예산담당관은 "사과한다"라는 표현 없이 "어쨌든 의회 심의 의결권을 존중하겠다"라는 답변으로 의원들의 심기를 더 자극했다. '어쨌든'이라는 단어 선택 때문에 기조실장의 사과가 무색해진 셈이다.

이상봉 위원장이 "결국, 보조금심의위를 소집한 예산담당관실에서 문제가 벌어진 일이다. 법적 문제가 있었다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안우진 담당관은 "보조금심의위에선 법률적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여진다"며 "다만, 의회에서 심의 의결된 것 중 증액된 부분에 대해 집행과정에서 투명하게 이뤄지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해 이 위원장의 화를 더 돋궜다.

이 위원장은 "그게 무슨 말이냐. 이번 일이 한순간의 해프닝이었다는 거냐. 기조실장은 사과하는데 담당관은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이냐"고 질타했다. 그럼에도 안우진 담당관은 또 다시 "법령 해석 상에 논란은 있었지만 '어쨌든' 행안부와 감사위 결과를 존중해서 의회 심의 의결권을 존중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고현수 의원은 "애매모호한 단어로 의회를 농락시키고 있다"며 정회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자 현대성 실장이 다시 나서 "제가 총괄하는 입장에서 다시 한 번 더 사과드린다"며 "향후 이런 일이 없도록 적극 협력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이 위원장은 "조직은 같이 움직여야 한다. 예산담당관실에서 문제의식이 없다면 변화되거나 발전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정중히 사과를 해야만 보조금심의위에서도 제 역할을 할 게 아니냐"고 꼬집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