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돌며 각계각층 소외된 이웃에 행복 바이러스 전파 콤비 등장 
팔도 누비는 배우 이환과 개그맨 김진의 '행복 택시' 
"유명한 연예인이 아니라 죄송합니다"···"봉사활동 만큼은 우리가 유명인 될 것"

▲ 배우 이환(왼쪽)씨와 개그맨 김진(오른쪽)씨가 서귀포시 장애인복지회관을 찾아 코로나19로 마음이 지친 시각장애인들에게 웃음 꽃을 안겨주고 있다. ©Newsjeju
▲ 배우 이환(왼쪽)씨와 개그맨 김진(오른쪽)씨가 서귀포시 장애인복지회관을 찾아 코로나19로 마음이 지친 시각장애인들에게 웃음 꽃을 안겨주고 있다. ©Newsjeju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노랫말을 익살스럽게 뱉어내며 두 명의 남성이 강의실에서 트로트 메들리를 불러댔다. 어르신들은 박수를 치며 가사를 따라 불렀다. 어깨는 들썩거렸고,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개했다. 중간 중간 두 남성의 적절한 만담은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전문가 같은 내력이 느껴졌다. 

"어르신들 건강하세요. 나중에 유명해져서 꼭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뒤로 한 채 이들은 다음 행선지로 발길을 돌렸다. '유명해져서 다시 온다', 끝인사가 비범했다.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니 TV에서 한 번쯤은 봤던 것도 같은데 또렷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들을 'MM' 이라고 소개했다. 'MM'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무명이라 죄송해요."였다. '무명'의 초성 'ㅁㅁ'을 영어발음 'MM'으로 칭한 것이다. 무명이라는 자연스런 소개에 연예인 세계 속 설움을 견뎌낸 그들의 내공이 전해졌다. 

사실 이들은 20대부터 본격적으로 다수의 영화나 TV에서 활동한 사람들이다. 무명이라는 표현을 스스로 쓴 이유는 역시나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 이환(39)씨는 KBS <그래도 푸르른 날에. 김정국 역>, MBC <구암 허준, 석구 역>, 웹드라마 <범인은 이 안에 있다, 임 과장 역>, KBS 사극 <대왕의 꿈, 연개소문 아들 남산 역> 등에 나왔다. 또 다수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또 다른 한명은 개그맨 김진(36)씨다. KBS 공채 개그맨 20기 출신인 그는 최근 폐지된 장수 예능프로 <개그콘서트>를 필두로 <폭소클럽>, <스탠드업> 등에서 활동했다. 20기 공채는 <개그콘서트> 황금시대를 이끈 기수기도 하다. 동기로는 신봉선, 유민상, 박휘순, 노우진, 윤형빈 등이 있다. 

소개를 듣고서야 앞전 트로트와 만담 속에서 단단한 내력이 느껴진 이유에 대한 해답이 풀렸다. 스스로를 MM(무명)이라 칭했지만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였다. 

대화를 이어갈 틈도 없이 이들은 건물 2층에 마련된 실내 '모커리' 커피숍으로 향했다. 중증장애인 7명이 바리스타와 서빙 등을 도맡고 있는 커피숍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찾아나섰다. 

▲ 건물 입구부터 비상구 계단을 세 시간 동안 깨끗히 청소하는 배우 이환씨 ©Newsjeju
▲ 서귀포시 장애인복지회관 건물 입구부터 비상구 계단을 세 시간 동안 깨끗히 청소하는 배우 이환씨 ©Newsjeju

이환·김진 씨가 찾은 이 건물은 서귀포항 인근에 위치한 '서귀포시 장애인회관'이다. 지난해 6월7일 준공식을 진행, 첫 선을 보인 장애인회관은 71억원의 복권기금으로 조성됐다. 지상 6층, 연면적 2770.1㎡의 규모로 장애인단체 사무실, 프로그램실, 체력단련실, 대강당, 카페 등이 갖춰져 있다. 회관은 차별과 편견 없는 장애인들을 목표로 한다.

두 명의 연예인이 제주를 찾은 까닭은 소외된 이웃들에게 행복과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10월5일 입도 이튿날인 6일부터 이틀 차 '서귀포시 장애인회관'을 찾아 두 팔을 걷어붙였다.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팔도를 돌아다니며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는데, 특징이라면 개인택시를 타고 움직이다. 공공장소에서 청소를 시작으로 재능기부, 일손 돕기 등 잡다한 일들을 모두 찾아서 해결한다. 택시는 무료로 어르신들의 발이 돼 준다. 제주는 일곱 번째 봉사활동지로 앞서 서울을 시작으로 전북 부안, 충남 대천, 충남 삽시, 광주, 목포 등을 거쳤다. 

개인택시는 이환 씨 소유다. 왜 개인택시를 운전하느냐는 물음에 이환 씨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배우를 계속 꿈꾸고 싶어서요."

사연은 이랬다. 유명인이 아닌 상태로 배우를 꿈꾸기엔 직접적으로 생계가 위태했다. 무명인들은 누구나 공감할 문제라고 이환 씨는 담담히 말을 뱉어냈다. 매번 오디션을 보고, 어쩌다 배역이 들어와도 늘 생활고에 시달렸다. 이 과정에서 꿈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고도 했다.  

계속해서 배우의 길을 잇고 싶은 이환 씨는 생존해결을 고민했고 연장선으로 이색 자격증도 많이 취득했다. 대표적으로 '임산부 재활운동전문가 자격증', '대한장애인 사이클연맹 심판 자격증', '화물운송 종사자격증' 등이다.

여러 직업들을 다양하게 경험했지만 때마다 가장 큰 문제는 가까스로 배역을 따냈을 때였다. 마냥 좋아할 법한 일이지만 생존을 위한 직업 활동으로 촬영 날짜를 조율하기가 어려웠다. 고심 끝에 내린 이환 씨의 결정은 개인택시였다.

▲ 개그맨 김진 씨가 7년의 공백을 깨고 올해 방송 활동을 재개했던 KBS '스탠드업' / 사진출처 - KBS 유튜브 영상 갈무리 ©Newsjeju
▲ 개그맨 김진 씨가 7년의 공백을 깨고 올해 방송 활동을 재개했던 KBS '스탠드업' / 사진출처 - KBS 유튜브 영상 갈무리 ©Newsjeju

바리스타 중증장애인들이 있는 '모커리 커피숍' 봉사활동은 유리창 청소로 시작됐다. 신문지를 이용해 깨끗이 닦으면서도 커피숍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메뉴를 추천해주는 여유도 부린다. 김진 씨는 특유의 넉살로 직원들에게 오래된 친구처럼 다가갔다. 단순히 개그맨이기 때문에 나오는 직업적 정신이라는 편견을 갖는다면 오산이다. 김진 씨는 누구보다 장애인들의 마음을 헤아렸다. 가볍게 던지는 농담 속에도 섬세한 배려가 느껴졌다. 

"저는 누구보다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요. 사람들의 차별적인 시선을 삶을 살아오면서 개인적으로 많이 겪었거든요. 개그맨의 옷을 벗어던지고 김진 씨는 평범한 한 사람의 아픔을 끄집어냈다. 

김진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틱 장애(tic disorder)를 겪었다고 했다. 틱이란 순간적으로 눈 깜빡임, 얼굴 찡그림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약 29년 정도 겪으면서 학창시절에는 왕따와 학교폭력도 당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중간 어느 지점에서 늘 표류했다. 그 과정 속에서 김진 씨는 누구보다 아픔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꿈꾸던 개그맨이 된 후에도 장애의 벽은 존재했다. KBS <인간극장> 프로 출연 후 벽은 더욱 높아져버렸다. 김진 씨의 출연 결심 배경은 틱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방송 후 '불쌍한 연예인'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겨버렸고 시선을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 했다.

방송이 나간 다음에는 "틱 장애가 있는 너를 보고 아이들이 흉내를 낼 것"이라는 방송 관계자의 발언으로 한 프로그램에서 자진하차까지 하게 됐다. 지금은 명백한 차별이지만 그 시기에는 인식개선이 턱없이 부족했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김진 씨는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우울증까지 겪으며 방황의 시기를 보냈고, 7년 만에 올해 KBS에서 방영된 <스탠드업> 프로에 모습을 비추며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현재는 서울시 장애인협회 광진구지회 홍보대사에 이름을 올리며 '인식 개선'을 외치고 있다. 

▲ 김진 씨와 이환 씨가 봉사활동을 마친 후 서귀포항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Newsjeju
▲ 김진 씨와 이환 씨가 봉사활동을 마친 후 서귀포항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Newsjeju

이환·김진 씨는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그동안 도움을 많이 받아왔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자신들에게 찾아온 기회를 살리지 못해서 지금처럼 '무명' 연예인으로 지낸다고 멋쩍어했다. 전국을 돌며 스스로 찾아가는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는 그동안 주변인들에게 받았던 고마움들을 타인들에게 돌려주고 싶어서다. 

"처음에는 봉사활동도 엄두가 안 났어요. 유명해져야 사람들도 반기고, 그래야만 자격이 주어진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우린 무명이라서 스타들에 비해 행동이 자유롭잖아요. 인식을 전환하니 오히려 편하게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겠다. 아,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실천해보자. 그리고는 무작정 시작하게 됐죠."

더불어 두 명은 자신들의 봉사활동 모습을 유튜브를 통해 기록으로 남겨놓기로 했다. 혹시나 자신들의 영상을 보고 '타인을 돕는 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선한 바이러스가 전파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앞선 희망이지만 만일 수익금이 발생하면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기부하겠다는 포부도 던졌다. 

양소은 시각장애인연합회 서귀포시지회 사무국장은 "코로나 여파로 장애인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폐쇄를 맞았다가 이달 6일부터야 다시 소규모 채널을 재개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시국에) 비장애인들은 집 안에서 인터넷이나 TV를 보면 그만이지만 장애인들은 상대적으로 우울증이 많다"며 "이틀 간 이환·김진씨가 봉사활동과 이벤트 등으로 활력소를 불어넣어줬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사진왼쪽부터 - KBS 20기 공채개그맨 김진(36), 배우 이환(39)씨 / 두명의 연예인은 개인택시를 이용해 전국을 돌며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왼쪽부터 - KBS 20기 공채개그맨 김진(36), 배우 이환(39)씨 / 두명의 연예인은 개인택시를 이용해 전국을 돌며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김진 : 갈수록 사람들이 개인주의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곧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진다는 것인데 이럴수록 소외된 계층들에 대한 시선도 줄어들죠. 제가 많이 아파봤고 극복하고 보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쓰임이 되는 도구가 되고 싶었어요. 마음 속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버티고 이겨내야 하는지에 대한 강연도 하고 싶고, 훗날에는 ‘틱 장애협회’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이환 : 배우의 꿈을 꾸면서 혹은 개인적인 문제로도 아픔을 많이 겪었죠. 그 과정을 겪으면서 타인들과 함께 웃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도 분명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줬을 것이고, 그런 과오들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전국을 택시로 돌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돼 있을 것 같습니다.  

배우 이환과 개그맨 김진의 선한 영향력 좌충우돌 봉사일지는 이달 말쯤부터 유튜브 채널(투파파. twopapa)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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