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Newsjeju
▲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Newsjeju

새가 운다. 짙게 깔린 어둠을 뚫고 구슬프게 운다. 어디서 어떻게 생긴 녀석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내 귓가에 아주 가까이 맴돌았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마을에서 본 그 아이의 목소리와 같았다. 그러나 함께 목을 놓을 수 없었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한번씩 바짝 당기는 줄에 양팔은 무기력하게 흔들거렸다. 어디로 가는 걸까, 물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점점 더 사방은 어두워져만 갔다. 어렴풋하게나마 보였던 바다조차도 사라졌고, 어느새 머리 위로 나무들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밤은 여기서 묵어야겠다.”
걷는 내내 침묵했던 몽골 군사가 말을 세웠다. 나무들 사이로 나와 마을 사람들을 하나씩 묶었고, 몽골 군사들은 가운데 자리를 잡고 주저앉았다. 말들도 그 옆에서 잠시 얼굴을 바닥에 갖다대었다. 우리는 줄을 나무에 너무 바짝 묶인 상태라 앉을 수도 그렇다고 제대로 일어설 수도 없었다. 구부정하게 하거나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몸도 몸이지만 목이 탔다. 갈라진 입술에서 흘러나온 핏물도 이제는 완전히 말라 버려 뭐든 마셔야만 했다.

“기어이 살고 싶은 게냐?”

몽골군사는 자신이 마시다 남은 물을 건넸다. 정말 딱 한 모금, 그마저도 시큼떨떨하여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럼에도 목구멍으로 물은 그대로 넘어갔다. 하지만 오히려 갈증이 더 생겼다. 물이 아닌 무엇이라도 목으로 넘기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팔을 깨물었다, 있는 힘껏. 끈적한 것이 입안에 감돌았다.

“뭣하는 것이냐!”
바닥에 쓰러졌다. 줄은 끊어졌고, 조금 전 물었던 팔에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나를 쓰러뜨린 몽골군사가 자신의 옷을 찢더니 팔을 감쌌다. 그럼에도 솟아난 피는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입술은 점점 메마르고, 눈앞이 어지러웠고 온몸에 힘이 점점 더 빠지기 시작했다. 찢어질 듯 몰려오던 팔의 통증도 점점 무뎌졌다. 찬바닥에 머리를 대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모든 것이 멈추어버렸으면 좋겠다, 더 이상 시간의 흐름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탐라에 당도한 이후 지금까지 직접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일들, 분명 시간이 흘렀지만 너무나도 생생하였다. 당장 손으로 기록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돌아가면 이 모든 것을 남겨야 할 터.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의 갈증마저도 감당하지 못 한 내가 말이다. 들이마시도 내뱉는 숨조차도 온몸을 떨리게 하였다.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몸의 떨림을 진정시켜주었다. 얼굴에 차가운 것이 떨어졌다. 한두 방울이었다가 이내 쏟아지기 시작했다. 몸이 축축한 바닥에 착 달라 붙어갔다. 줄이 양팔을 잡아당겼다. 점점 젖어가는 내 몸은 쉬이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죽지 않으려면 움직여야 할 것이야.”

몽골 군사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몇몇이 다가와 송장을 치르듯 들더니 이내 바닥에 내팽개쳤다. 자기들끼리 그냥 놔둬야 한다는 둥, 목은 베고 가야한다는 둥 억지로라도 끌고 가야 한다는 둥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사이 비바람은 점점 더 거세어졌다.

“자리를 옮겨야겠다. 저놈은 여기에 놔두고.”

내 팔을 묶었던 줄이 완전히 풀렸다.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말울음이 점점 귓가에서 멀어져 희미해질 때쯤, 그제야 쏟아지던 비는 그쳤다. 입도 적시고 온몸도 충분히 적셨지만 여전히 목이 말랐다. 타오르는 나의 갈증. 이것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순간, 지슬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쯤 어딘가에서 나를 찾고 있지 않을까? 막연했지만, 확신이 들었다. 나와 같은 생각이라면 지금 아주 가까운 곳에 찾아헤멜 것.

내가 이대로 쓰러져 완전히 숨을 멈추지 못 할 것이라면, 어떻게서 일어나야만 한다. 탐라의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할 자는 누구도 없었다. 승자의 기록이 아닌 온전히 보아왔던 그 기록. 나의 기억만으로도 부족하다. 이 땅에 살아온 지슬이 반드시 함께해야만 한다. 그것이 하늘이 나와 지슬을 지금까지 살려준 것이 아닐 터. 소리없이 쓰러져간 혼들의 목소리는 분명 남겨야만 할 것이다. 이를 꽉 깨물고 몸을 일으켰다. 살아야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계속)

▲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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