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정 & 도의회, 강정마을회 삼자간 화합식 가졌으나,
정작 공동체 파괴 피해의 산증인들은 자리하지 못해... 진정한 상생화합엔 물음표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31일 개최된 강정마을·제주도·도의회 상생화합 공동선언식에 참석한 이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31일 개최된 강정마을·제주도·도의회 상생화합 공동선언식에 참석한 이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제주해군기지, 다른 말로는 민군복합형관광미항. 이를 둘러싼 오랜 갈등이 5월 31일 '상생화합 공동선언식'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아니, 서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이날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강정마을회와 함께 강정크루즈터미널에서 3자간 상생화합 공동선언식을 개최했다. 3곳을 대표하는 리더인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좌남수 제주도의회 의장, 강희봉 강정마을회장이 뜻을 모은 자리다.

화합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서인지 세 명은 드레스코드도 맞췄다. 똑같이 핑크색 타이를 메고 이날 선언식에 참석해 서로의 화합을 기원했다.

원희룡 지사는 제주해군기지 입지 선정에 문제가 있었고, 심지어 제주도정이 '불공정하게'라는 단어까지 곁들여가며 개입했다고 시인했다. 사과를 할지언정 행정의 잘못을 잘 시인하지 않았던 그였기에 의외의 단어 선택이다. 제주도민에게 올인하겠다던 말을 뒤집었을 때도 자신의 발언이 잘못됐음을 시인하지 않았던 그였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구럼비 바위 발파 이전의 시대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니, 강정마을 주민들의 분노를 삭일 수 있다면 제주도정의 치부를 부정적으로 묘사한들 어떠냐는 태도로 읽힌다. 더구나, 지금은 대선을 노리는 시점이 아니던가. 원희룡 지사에겐 그 무얼 해도 용인할 수 있어야 하는 때인 셈이다.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 측이 31일 오전 10시 강정크루즈터미널 앞 주차장에서 진행된 '강정마을·제주도·도의회 상생화합 공동선언식' 행사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자 행사장에 진입하려하자, 이를 저지하려는 행사 주최 측과 실랑이가 빚어지기도 했다.
▲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 측이 31일 오전 10시 강정크루즈터미널 앞 주차장에서 진행된 '강정마을·제주도·도의회 상생화합 공동선언식' 행사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자 행사장에 진입하려하자, 이를 저지하려는 행사 주최 측과 실랑이가 빚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원희룡 지사의 사과는 딱 거기까지였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직접 부딪히며 온 몸에 생채기를 냈던 범법자로 낙인찍힌 강정마을 주민들이다. 그들은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아니, 초대받지 못했다. 단 한 명만 빼고.

이날 행사는 현 강정마을회가 주도 하에 이뤄진 것이라고 제주자치도가 밝혔다. 강정마을회는 실제 이들도 행사에 참석시키기 위한 명분으로 강동균 전 강정마을회장에게만 초대장을 우편으로 보냈다. 그것도 '등기우편'으로. 명백히 면피용인 셈이다. 이에 강동균 전 회장은 분노를 표출했다.

반대주민들은 이날 행사에 참석한 강정마을회나 노인회, 청년회, 부녀회, 어촌계 관계자들에게 "돈으로 사과를 받으니 좋으냐. 너네가 어떻게 이  자리의 당사자들이 될 수 있느냐"고 날선 발언들을 퍼부었다. 이는 곧 또 다시 주민들간의 싸움으로 번졌다. 주변 사람들이 말려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상생화합은 꽤나 더 멀어보였다.

초대장을 받았다는 확인을 할 수 있는 우편물을 보냈으니 강정마을회는 자신들의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진 몰라도, 원희룡 지사는 최선을 다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 이젠 강정마을 주민들과 상생화합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씌여진 캘리그라피 퍼포먼스. 오른쪽 하단에 이 글을 쓴 김소영 캘리그라퍼의 낙관과 원희룡 지사, 좌남수 의장, 강희봉 강정마을회장의 낙관이 찍혀 있다. ©Newsjeju
▲ 이젠 강정마을 주민들과 상생화합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씌여진 캘리그라피 퍼포먼스. 오른쪽 하단에 이 글을 쓴 김소영 캘리그라퍼의 낙관과 원희룡 지사, 좌남수 의장, 강희봉 강정마을회장의 낙관이 찍혀 있다. ©Newsjeju

원 지사는 이날 공동선언식 인사말을 통해 "오늘 이 자리에서 약속드린다"며 "강정마을이 예전처럼 화목하고 풍요로운 마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공언했다.

늘 그의 이런 약속은 표현, 그 자체만으로는 참 좋다. 늘 그렇지만 영혼이 없다고 해야할까. 빈수레에 공기만 가득 싣고 와서 이제 제대로 숨 쉬라고 생색내는 것처럼 비춰진다.

확실한 건, 그의 말처럼 강정마을이 화목하고 풍요로운 시절로 돌아가려면 반대주민들에게도 손을 내밀어야 할 터인데 그는 이제 곧 제주를 떠난다는 점이다. 그러면 무얼 어떻게 노력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달릴 수밖에 없고, 이는 자연스레 형식적인 겉치레로 불과해 보인다.

물론 원 지사는 후속조치를 위해 아직까지도 특별사면을 받지 못한 강정주민들을 위해서 정부에 추가 사면 절차를 즉각 진행해달라는 요청을 하겠다고는 했다. 그간 253명이 기소됐고 248명이 판결이 확정됐으며, 그 중 39명만이 특별사면을 받았다. 만일, 정말 만에하나 원 지사가 대통령이 된다면 나머지 전원 특별사면 해주실건가. 

실제 그럴 능력이 있다면 달콤한 말로 지금 하지 못함을 면피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날 공동선언식 행사장 밖에서 목이 터져라 외쳐댔던 반대주민들에게 다가가 악수라도 건넸어야 하지 않았나.

원 지사는 이날 공동선언식이 갈등 해소의 끝이 아니라 완전한 해결을 위한 시작이라고 표현했다. 제주4.3사건에 대한 그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드러내게 했던 과거 사건들을 돌이켜보면, 지키지도 못할 '완전한 해결'이라는 말을 너무 남발하는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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