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9일 제주 찾은 연인 관광객···이튿날 새벽 음주 단독 교통사고
여자친구 A씨 병원 치료 받다가 2020년 8월 사망
경찰 '위험운전치상', '음주운전' 혐의 적용···검찰 '살인' 혐의로 바꿔
변호인 "검찰의 판단은 '예단'···사망하게 할 이유 없어" VS 검찰 "벨트 여부 확인 후 의도적 과속"
제주로 여행 온 연인이 단독 렌터카 교통사고를 냈다. 2년 후 사고는 사건으로 번져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을 펼치고 있다. 운전대를 잡은 남자친구는 살고, 여자친구는 숨진 사건을 경찰은 단순 처리했지만 검찰에서 '살인' 혐의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9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모(35. 남)씨 두 번째 공판을 진행했다.
재판은 당시 교통사고 분석을 진행한 제주경찰청 교통조사계, 도로교통공단 제주지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 등 증인 신문 시간으로 주로 할애됐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김씨는 숨진 전 연인 A씨와 2019년 11월9일 오후 제주를 찾아 머스탱 오픈카를 대여했다.
같은 날 밤 곽지해수욕장 노상에서 술을 마신 후 제주시 귀덕리 모 숙소까지 음주운전을 하고 돌아갔다. 해수욕장에서 숙소까지 거리는 약 2.1km로, 처음 운전대는 숨진 A씨가 잡았다.
사고는 차량이 숙소에 도착 후 촉발됐다. 숙소로 귀가를 하지 않은 둘은 재차 렌터카를 몰고 운전을 나섰다. 이때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피고인 김씨다. 사건 발생 시점은 11월9일에서 다음날인 10일 새벽으로 넘어갔다.
이날 재판에서는 당시 머스탱 오픈카 차량 내 설치됐던 블랙박스 녹화 영상과 현장음이 부분 공개됐다.
영상은 어두컴컴한 도로의 모습과 '띵띵' 거리는 안전벨트 미착용 알람소리가 담겼다. 또 피고인이 숨진 A씨를 향해 "안전벨트 안 했네"라는 말과 함께 차량 속도를 올리는 과속소리까지만 공개됐다. 상세한 영상물은 다음 증거조사 과정에서 추가로 공개될 예정이다.
오픈카 차량은 편도 2차선 도로를 과속 후 인도로 돌진, 연석과 돌담 및 세워진 경운기를 들이받았다. 보조석에 탑승했던 피해자 A씨는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오픈카 차량 밖으로 튕겨 나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2020년 8월 끝내 숨졌다. 당시 경찰이 조사한 김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18%로 나왔다.
당초 제주경찰은 김씨에게 '특정범죄 가중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위험운전치상)'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 두 개를 적용했다. 그러나 검찰 단계에서 혐의가 '살인 등'으로 변경됐다.
검찰이 교통사고를 '살인' 사건으로 보는 이유는 사고의 의도성 여부다.
사고 전 오픈카에서 경보음이 울리자 김씨는 A씨에게 안전벨트 미착용 여부를 직접 묻고는 고의로 속력을 높여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즉, 여자친구를 숨지게 할 목적으로 피고인이 과속을 했다는 주장이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검찰의 판단을 '예단'이라고 받아쳤다. 두 사람이 다툼은 있었지만 결혼을 약속했던 사이인 만큼 의도적으로 사망하게 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안전벨트 안 했네"라고 물어본 의도는 벨트를 착용하라는 취지의 발언이라고도 강조했다.
증인신문에서는 살해 고의성 여부를 입증하기 위한 검찰과 변호인의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피고인과 숨진 A씨의 숙소에서 사고 지점까지는 대략 500m 정도 거리의 편도 2차선이다. 이 구간의 평균속도는 50km지만 사고 당일 머스탱 오픈카의 최대 속력은 시속 114km까지 나왔다. 약 500m의 거리는 크게 직진 후 회전이 작은 곡선 구간, 곡선이 큰 구간, 주행 구간 등으로 나뉜다.
검찰과 변호인은 증인들에게 차량 출발 후 첫 속도와 사고 직전 속도 및 브레이크와 엑셀까지 세부적으로 나누면서 교통사고 관련 데이터를 분석한 증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각 구간별로 주행 중인 차량의 속도와 브레이크 제동 등은 제각각 달랐다. 양측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질문을 던져 나갔다.
다만 데이터를 분석한 증인들은 조사된 내용은 단순 수치일 뿐 운전대를 잡은 피고인의 고의성 여부까지는 알 수 없다는 잠정적 결론을 도출했다.
제주지법 제2형사부 재판부는 오는 9월13일 오후 4시30분 재판을 속행키로 했다. 다음 재판은 여러 증거조사와 유족 측이 증인으로 채택돼 공방을 펼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