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실 관계 명확, 배심원 나서도 문제없어"
피고인 "검찰이 나를 범인으로 단정하는 수사했다"
재판부, "복잡한 사건인데···" 국참 신중한 입장
다음 공판준비기일, 국민참여재판 여부 결정키로

제주지방법원.
제주지방법원.

제주판 미제 사건으로 약 20년간 잠들었던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관련 피고인이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피고인은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지만, 검찰은 자신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있다고 재판부에 호소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기소를 위해 수사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도 "법원은 투명한 백지상태로 나설 것이다"고 우려를 불식시켰다. 

6일 오후 2시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살인' 등의 혐의가 적용된 김모(55. 남. 전직 조직폭력원)씨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검찰의 공소사실 요지에 따르면 김씨는 1999년 8월~9월 불상자의 지시를 받아 A씨(2014년 8월 사망)와 이승용 변호사 살인 계획을 공모했다. 

이후 같은 해 11월5일 새벽 3시15분에서 6시20분 사이 제주시 제주북초등학교 인근 노상에서 흉기로 피해자의 가슴과 복부를 3회 찔러 피해자를 살해한 것으로 판단, 기소했다. 검찰은 김씨에 공모공동정범 법리를 적용해 살인죄 혐의가 성립된다고 했다. 

제주지법은 오래된 사건이라 앞으로 재판에서 필요한 중요한 사안들을 정리하는 공판준비기일로 진행했다. 준비기일을 통해 재판부는 쟁점들을 하나씩 정리해갔다. 

이날 공판준비기일의 큰 쟁점은 피고인 김씨와 검찰 측이 요청한 '국민참여재판(이하 국참)' 여부와 공소시효 문제, 공소사실 완성 여부 등을 살폈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의해 2008년부터 시행된 '국참'은 국민들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석하는 것을 칭한다. 배심원이 된 국민은 법정 공방을 지켜본 후 피고인의 유무죄에 관한 평결을 내리고, 적정한 형을 결정할 수 있다. 재판부는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내린 평결을 참고해 판결을 선고에 나서게 된다. 국민참여재판은 1~3일 안에 재판을 마치도록 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과 피고인 등에 국참 신청 의사 유효함을 물었다. 피고인의 요청으로 수면 위로 떠 오른 국참을 검찰 역시 받아들였다. 증거에 입각한 사실관계가 명확해 배심원을 통해 유·무죄를 판단해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 검찰 측의 입장이다. 

재판부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이번 사건은 1999년 발생해 장기간 미제로 남았던 만큼 시간이 오래 소요됐기에 다툴 부분이 많은데, 단기간 내 결론 도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또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될 배심원들이 복잡한 사건의 연장선으로 잦은 재판 참석이 이뤄진다면, 비밀유지 문제와 일정 조정 난관에 봉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고심을 전했다. 국참 여부는 다음 속행 공판준비기일까지 양측이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소시효 문제도 화두로 떠올랐다. 2015년 7월31일 개정·시행된 '형사소송법' 제253조는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공소시효는 정지된다고 명시됐다. 

'살인' 혐의 등을 적용, 기소한 검찰은 피고인 김씨가 2014년부터 도피 목적으로 해외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법정에 출석한 피고인은 "도주 목적으로 단 하루도 외국으로 가지 않았다"고 반박하면서 향후 법정에서 치열한 다툼이 벌어질 일종의 예고전을 선포했다. 

1999년 발생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교사범이 캄보디아에서 붙잡혀 8월18일 경찰과 함께 제주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돼 들어와 조사를 받고 있다.
1999년 발생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교사범이 캄보디아에서 붙잡혀 8월18일 경찰과 함께 제주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돼 들어와 조사를 받고 있다.

검찰이 내세운 공소사실인 범죄를 모의한 '공동공모정범' 법리에 관해서도 피고인은 방어권을 행사했다.

변호인 측은 "검찰이 요청한 10여명의 증인들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만 근거로 했다"며 "아주 오래된 기록을 증거 제시해 피고인의 방어권에 무리가 있어 일단 모두 부동의 한다"고 말했다. 

검찰의 내세운 10여명 증인들의 법정 출석 여부도 국참 연장선에서 다뤄졌다. 평범한 국민들이 배심원으로 서게 되는 국참인지라 많은 증인과 같은 날 일정을 조율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다. 

현재 국선변호사가 선임된 피고인은 사선변호사로 재선임을 원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다음 속행 준비기일까지 선임 여부를 알아보고, 쉽지 않다면 현재 변호인에게 사건을 맡기겠다고 했다.

피고인은 헌법 제27조에 명시된 무죄추정의 원칙을 꺼내며 검찰이 확정 수사를 하고 있다고 재판부에 호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제가 한국에 송환되고, 지금껏 수사기관에서 진행된 절차를 봤을 때 공평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며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지만, 검찰은 제가 '살인범'이라고 확정을 하면서 수사를 했다"고 말했다. 또 <그것이 알고싶다>의 방송은 왜곡과 과장 및 거짓이라는 취지를 내세웠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은 기소를 위해 범인으로 단정하고, 판단을 할 수 있다"며 "수사기관과 법원은 다르다. 재판부는 1999년 당시 변호사가 살해당한 사실만 알고, 나머지는 백지 상태로 재판에 나설 것으로 염려하지 말라"고 피고인을 향해 답했다. 

제주지법 제2형사부는 11월3일 오후 2시 공판준비기일을 속행하기로 했다. 오는 속행 기일에서는 국민참여재판 여부와 증거 동의 절차 등이 다뤄진다. 

한편 약 20년간 미제로 먼지가 쌓이던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은 지난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루면서 재수사가 이뤄졌다. 

방송은 자신을 과거 제주 조직폭력배 '유탁파' 조직원으로 소개한 김씨가 자신이 변호사 살인을 교사했다는 인터뷰가 담겼다. 당시 김씨는 "조폭 두목의 지시를 받고, 조직원 중 한 명에게 변호사의 살인을 교사했다"고 주장했다.

인터뷰에 나선 김씨는 당시 수사당국의 용의선상에 포함되지 않은 인물로, 검찰과 경찰은 방송 인터뷰를 토대로 재수사에 돌입했다. 2020년 7월1일 자로 김씨를 입건하고, 올해 4월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 적색수배에 나섰다.

캄보디아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숨어있던 김씨는 올해 6월23일 현지 경찰관에 잡혔고, 8월18일 추방돼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로 들어와 구속수사가 이뤄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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