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민 작가의 장편 연재소설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너무나도 차가웠다, 이곳이 공기가 아닌 나를 향한 눈빛들이. 손끝부터 냉기가 깊게 서렸다. 반면 이마는 뜨거워지더니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니, 저놈은!”

수많은 눈빛들 사이에 날카롭게 내 귓가에 다가온 목소리, 분명 처음은 아니었다. 성큼성큼 발소리와 함께 눈앞으로 등장한 건, 바로 김통정과 가장 가까이했던 부장이었다. 삼별초와 함께 움직였을 때 직접 챙겼던 자이기도 했다. 

“어째서 여기까지 온 것인가!”

그의 입김은 뜨거웠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대로 침묵을 지킬 수만 없을 터. 여기까지 온 연유에 대해 내놓았다. 살아서 나가야 한다는 것, 고려군과 몽골군의 눈을 피해서. 조정까지만 갈 수 있다면, 그 이후 정말 생사를 다시 한 번 고려해볼 수 있다는 것도 덧붙였다. 그러나 돌아온 건 사방에서 터진 웃음이었다.  

“어째서 농락하는 것인가.”

웃음이 멈춤과 동시에 그의 묵직한 목소리가 나를 내리눌렀다. 그사이 김통정은 어떤 말도 내놓지 않고 허공만 올려다볼 뿐이었다.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전체적으로 어두웠지만 점차 사람들의 얼굴 윤곽은 눈에 들어왔다. 얼굴부터 전체 몸통까지 메마른 나뭇가지와 같았다. 스치는 바람에도 부러지고 가루가 되어 날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또 하나, 냄새가 심상치 않았다. 피비린내 너머로 풍기는 썩은 내,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악취를 그 이상의 통증까지 몰고 왔다. 머리가 아픈 원인이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찌푸리고 있자, 내 앞에 선 자의 손이 다가와 멱살을 움켜잡았다. 아무리 바짝 마른 손일지언정 힘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순식간에 목이 조여왔고 얼굴이 터질 듯 뜨거워졌다.  

“멈추어라.”

드디어 김통정이 시선을 나에게로 돌렸다. 조였던 목이 풀리면서 숨통을 틀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아무런 말도 없이 쳐다만 보았다. 그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주위를 감싼 살기는 비단 나에게만 향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저들이 눈빛은 김통정에게 더 강했다. 직접 내뱉진 않으나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들리는 저들의 목소리. 위협이 느껴졌다. 내가 아닌 김통정의 목으로 겨눠질 저들의 칼날이. 목을 가다듬고 저들에게 소리쳤다. 이제 곧 이곳은 고려군이 들이닥칠 것이라고. 

갑자기 주변 움직임이 소란스러워졌다. 구석구석에서 숨어있던 자들도 나타났고, 서로 넘어뜨리더니 뒤엉켜 바닥을 구르는 모양새까지 드러났다. 곳곳에서 쇳소리가 새어 나오더니 급기야 비명까지 터져 나왔다. 

“그만, 그만, 그만!”

김통정은 소리쳤지만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심지어 내 멱살을 잡았던 그 조차도 자신에게 접근하는 자들을 밀어내기 분주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달려드는 그림자 하나를 보았다. 목표는 명확했다, 김통정. 주변을 살피는 그의 뒤를 향해 달려가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몸을 내던졌다. 머리부터 어깨까지 통증이 올라왔지만 이내 달려드는 그림자에 일단 몸을 옆으로 피했다. 그것도 잠시 다시 얼굴로 내리치는 그의 발바닥이 보였다. 

“이놈이!”

그러나 김통정의 호령과 함께 그림자는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그가 내민 손을 붙잡고 얼른 몸부터 일으켰다. 잠시 그의 눈빛을 살펴보았다. 흔들렸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내 어깨를 툭 치고 돌아서는 그의 어깨가 축 처져있는 것만 같았다. 뒤엉키는 사람들 사이에 비집고 나아가는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다른 이와 부딪칠 뻔했으나 가까스로 피하고 등뒤로 날아든 돌멩이도 애써 외면하며 들어선 곳은 작은 구멍이었다. 이곳으로 들어설 때보다 더 좁은. 보이는 건 거의 없었다. 바닥에 돌가루가 많다는 것, 앞서나가는 그의 발바닥 정도가 전부였다. 몸을 완전히 구겨넣으며 앞으로 나아가자, 이젠 내 발바닥 쪽으로 닿는 낯선 사람의 손길이 느껴졌다. 닿을 듯 닿을 듯 잡히진 않았으나 그 역시도 계속 따르고 있었다.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김통정에게 물었다. 지금 뒤따르는 자가 있다고.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나아가야 하네.”

얼굴에 그가 지나간 가루들이 잔뜩 묻었다. 일단은 달리 무엇을 할 새가 없이 계속 나아갔다. 점점 좁아지는 통로는 이내 가슴팍과 등을 위아래로 잔뜩 조였다. 또 한 번 몸을 밀어 넣었고 오로지 양팔의 힘으로만 앞서나갔다. 점점 숨이 막혀오려고 할 때, 어렴풋하게 찬 공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그러나 힘이 점점 빠지더니 앞에 팔로 바닥을 긁어낼 수가 없었다. 얼굴도 바닥에 묻어버리고 할 때, 머리채를 붙잡힌 채 끌려 나왔다. 아팠지만 소리도 칠 수 없었고, 그대로 구멍 밖으로 나와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일어나시게! 어서!” 

그의 외침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제법 큰 바위로 구멍을 막는 그의 등을 받쳐주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라는 말도 차마 나오지 않았다. 등으로 그의 등을 받친 채, 다리로 하나씩 바닥을 밀어냈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나도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옆에서 거친 숨을 내쉬는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막혔군.”

깊게 한숨을 내쉬는 그의 얼굴엔 땀이 계속 흘러내렸다. 괜찮으냐고 물어보았지만 답은 하지 않았다. 그저 바깥의 바람이 차갑게 뺨을 간질일 뿐이었다. (계속) 

소설가 차영민.
소설가 차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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