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법, 피고인에 살인 혐의 '무죄' 선고···협박만 유죄 실형
"도피 목적 해외 체류 등 의심 대목 많지만, 법률적 판단으로 무죄"

1999년 발생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교사범이 캄보디아에서 붙잡혀 8월18일 경찰과 함께 제주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돼 들어와 조사를 받고 있다.
1999년 발생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교사범이 캄보디아에서 붙잡혀 8월18일 경찰과 함께 제주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돼 들어와 조사를 받고 있다.

1999년 제주도에서 발생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공모 공동정범 법리가 적용된 50대 전직 조직폭력배에 대해 법원이 '협박' 혐의만 유죄로 인정, 실형을 선고했다.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은 또다시 미궁으로 빠지게 됐다. 

17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살인'과 '협박' 혐의로 기소된 김모(55. 남)씨 선고공판을 진행했다. 법원은 변호사를 살해한 혐의는 '무죄'를, 방송국 관계자를 협박한 내용은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이번 재판의 가장 큰 쟁점은 사건 범행의 '공소시효'와 검찰이 적용한 '공소사실'에 피고인의 가담 여부였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피고인 김씨는 1999년 당시 제주 유탁파 조직폭력배 행동 조직 격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해 8월~9월 사이 성명불상자로부터 "골치 아픈 문제가 있으니 이승용 변호사를 손 봐줘야겠다"는 지시를 받은 피고인은 현금 3,000만원을 받고, 범행 결정권을 이임 받았다. 

이후 같은 조직폭력배 친구인 A씨(2014년 8월 사망)와 공모에 나선 피고인은, 이승용 변호사가 검찰 출신으로 상해만 입힐 경우 자신들의 범행 은폐가 어렵다고 판단해서 살인하기로 마음먹었다. 

1999년 11월5일 새벽 3시15분에서 오전 6시20분 사이, 이승용 변호사는 제주시 제주북초등학교 인근 노상에서 가슴과 복부를 A씨 흉기에 3회 찔려 숨졌다. 검찰은 김씨에 공모 공동정범 법리를 적용해 살인죄 혐의가 성립된다고 했다.

살인 용의자를 찾지 못해 미제로 남은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은 2019년 10월 피고인이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 접촉하면서 다시금 수면 위로 드러났다. 

방송국 측은 2020년 피고인 김씨의 인터뷰 내용을 내보냈다. 내용은 김씨가 변호사 살인을 교사했다는 것이다. 당시 김씨는 "조폭 두목의 지시를 받고, 조직원 중 한 명에게 변호사의 살인을 교사했다"고 주장했다. 방송을 시청한 피고인은 제작진에게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두 차례 전송해 '협박죄'도 추가됐다. 

재수사에 돌입한 검경은 2020년 7월1일 자로 김씨를 입건하고, 지난해 4월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 적색수배에 나섰다. 

캄보디아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숨어있던 김씨는 2021년 6월23일 현지 경찰관에 잡혔고, 8월18일 추방돼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로 들어와 결국 구속기소 돼 재판을 이어왔다. 

제주지방법원 사진 자료
제주지방법원 사진 자료

'공소시효'는 일정 기간이 지난 범죄에 대해 국가가 형벌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다.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공소시효가 15년이었다.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25년으로 늘었고, 2015년을 기점으로 살인사건 경우는 공소시효 제도가 폐지됐다. 

검찰은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공소시효가 2014년 11월5일 완성됐어야 하는데, 그 이전부터 해외에 출국한 사실을 주목했다. 범죄 도피 목적으로 장기 체류를 했다는 판단이다. 

원래대로라면 피고인은 공소시효가 완료됐지만, 형사소송법상 '형사처벌을 면할 목적으로 해외 도피 경우 공소시효가 정지'라는 예외 조항을 검·경은 끄집어냈다.  

이날 선고에서 재판부도 피고인의 공소시효는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사유는 종전에도 피고인은 마카오 등 해외로 출국한 기록이 있는데, 체류 기간이 짧았다는 점도 살폈다. 그러다가 공소시효를 앞전에 둔 상황에서 김씨가 해외로 출국한 뒤로는 1년이 넘게 머물러 범죄 도피 목적이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이 피고인에 살인(공모공동정범) 혐의를 적용한 '공소사실'은 합리적 의심이 없어야 한다는 법률적인 판단 끝에 무리라고 결론 내렸다. 

제주지방법원.
제주지방법원.

피고인은 경찰과 검찰, 재판에 이르기까지 진술을 계속해서 번복해왔다. 

진술번복은 크게 네 가지로 ①"내가 윗선 사주를 받았고, 실행은 갈매기(다른 조폭)가 했다" ②"윗선의 사주를 받은 것도, 범행 실행도 갈매기다"③"나도 갈매기도 범행에 관여를 안 했고, 나는 '리플리 증후군'이다" ④"윗선의 사주를 받은 것은 갈매기다. 나는 사건 발생 10년 후에 들은 내용일 뿐이다" 등이다. 

피고인은 경찰과 검찰 수사 과정에서 ①, ②, ③번 발언을 수시로 해왔다. 그러다가 재판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④번 주장을 내세웠다. 

진술의 흐름을 살펴보면 ①-②-③-①-③-①-③-②-④으로, 번복과 재번복을 거듭하다가 결국은 "나는 전혀 몰랐고, 사건 10년 후에 들었다"로 법원에서 입장을 바꿨다. 

검찰 측은 "피고인은 공범 갈매기와 공모해서 장기간 계획 끝에 계획 살인을 했고, 피해자를 살해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살해를 지시한 배후 등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공소장을 본 피고인이 범죄 가담 혐의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으로 판단, 결국은 '10년 후에 들은 말'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자기 생각과 달리 사건이 재수사 되자 범행을 갈매기에게 책임 전가했고, 수사 과정에서도 오로지 자신의 형사처분을 면하기 위한 부분만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범죄 구성 요건은 공모공동정범"이라며 "불상자 지시 여부 등은 피고인 진술밖에 없고, (피고인이)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살인을 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고 했다.

이어 "공소시효를 앞두고 도피한 정황은 범행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라면서도 "증거 상당 부분은 가능성에 관한 추론 뿐으로,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고 무죄 사유를 설명했다. 

판결 선고 후 재판부는 "무죄는 법률적인 판단으로 내렸다"며 "이상의 설명은 안 하겠다"고 재판을 마쳤다. 

1심 재판부의 살인 '무죄' 판결로 약 20년간 잠들었던 제주판 미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됐다.

선고 재판을 방청한 당시 이용승 변호사 사무장 B씨는 "피고인은 악을 저질렀고. 그 벌을 받아야 함이 마땅함에도 법률적인 판단 이유로 무죄 선고받은 것이 통한스럽다"며 "검찰이 항소에 나서서 유죄를 입증해 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제주지검은 "피고인이 언론 인터뷰를 자청해 범행을 자백하는 임의성 있는 진술을 했고, 그 밖에 여러 관련자의 증언과 물증 등 제반 증거와 법리에 비춰 범죄사실이 충분히 입증되는 것으로 판단해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심 판결문 전문을 면밀히 검토한 후, 항소심을 통해 범죄사실을 충분히 입증할 것"이라며 "범죄에 상응하는 형사처벌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올해 1월10일 진행된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을 향해 무기징역을 구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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